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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5월 10일 토요일[(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5월 10일 토요일[(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콜로 2,12 참조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믿는 이들을 세례의 물로 새로 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저희를 지켜 주시어
저희가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충실히 간직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4-15.16-17(◎ 12)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또는
◎ 알렐루야.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2 <그리스도의 새 생명>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7,20-2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위하여 비오니, 이들이 우리 안에 하나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 설명: “타비타, 일어나시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성유 축성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는 공지가 되지 않아 교우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주보에 미리 공지가 되었고, 많은 교우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병자 성유, 예비자 성유, 축성 성유를 축성하며, 교구장 주교님은 사제단과 신학생, 교우들과 성가대에 따뜻한 감사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냥 음악이 아니라, 그 속에 머무름의 헌신과 기름 부음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은 단지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하느님의 향기를 품은 사람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겉에 모인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병자들을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건강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희망입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희생과 봉사 그리고 겸손과 나눔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들 손에 넘겨져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던 베드로는, 비록 주님을 배반하고 무서워 떨었지만, 다시금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치유하고, 죽은 사람까지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그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무너졌던 그가, 이제는 생명을 일으키는 사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변화의 비밀은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을 떠나지 않은 선택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기욤 마르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무름이란 도피하지 않는 선택이며, 관계를 끝까지 감당하겠다는 인간의 존엄한 태도다.”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않는 것, 그 안에는 사랑이 있고, 신념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관계를 끊고, 장소를 바꾸고, 마음을 닫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신앙은, 끝까지 머무는 신앙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힘도, 바로 그 머무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제자였지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탁월함이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안에서 태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유 축성 미사에서 그 진리를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성유는 단순한 기름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교회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분들,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이 기름 부음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몸은 교계제도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을 따르려 한다면 이미 주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의 삶을 외면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꽃의 삶을 추구한다면 역시 주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 머물겠느냐?” 신앙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눈앞에 기적이 없어도,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께 머무는 사람들, 떠나지 않는 증인들입니다. 성유의 향기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사랑이 오래도록 스며들기를, 그리고 베드로처럼 살리는 말, 일으키는 손, 머무는 마음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행전 9,31-42       요한 6,60ㄴ-69

 

내가 육적인 인간인지, 영적인 인간인지 알아보는 법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에 관한 긴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성체에 관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이해하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고,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가면

육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가리옷 유다처럼 남아있다고 해서 다 영적인 것도 아니고, 지금 믿지 못한다고 해서

완전히 육적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이며 생명에 관한 것인데, 육적인 사람은 이 말씀을

육적으로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투덜거리고

다 떠나가지만,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주님 곁에 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수준 때문에 말씀이 곧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당시에 그곳에 있었다면 제자들처럼 예수님 곁에 남았을지, 아니면 떠나갔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영적 인간인지, 육적 인간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에 한 여자와 남자의 나체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체 그림이고 매우 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것은 그 그림을 어린이들은 돌고래들로 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메슬로우는 망치를 손에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시각과 이해력은 나의 욕구에 의해 좌우됩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을 먼저 찾습니다. 

따라서 길을 지나가는 여자를 볼 때, 남자들은 나체의 모습을 상상하고 여자는

여자의 모자와 옷, 핸드백이 얼마짜리인지를 스캔합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아무리 영적인 말씀을 하셔도 육체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가리옷 유다를 뽑았습니다.

그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도둑이라고 말하고 오늘 복음에서는 더 심하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사람이 악마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의 정체성을 바꿔야 합니다. 나를 육체로 본다면 그 사람은 육체적 행복만을 추구할 것이고,

나를 영혼으로 본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기쁨을 추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 앞에 소개하실 때, “나는 나다!”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행복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육적인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한 서커스 단원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다

강철 줄을 걸어 놓고 거기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손에 땀을 쥐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히 이리 건너오고 저리 건너가고 하면서 시종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사람들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타겠습니까? 내가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건너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 소년이 “저요!”하고 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소년을 어깨에 태우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겁나지 않든?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지?”

그 소년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분이 제 아버지거든요!”

 

어떤 사람의 말을 믿으려거든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 정립되어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고,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더욱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먼저 믿지 말을 먼저 믿지 않습니다. 관계가 먼저이고 말이 그 다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오늘 남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믿을만한 분임은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 자신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적인 행복은 추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육적 욕망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더욱 영적인 인간이 되면 그렇게 될 때 말씀을 더 믿게 되고 더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임을 명심합시다.

육적인 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육체, 즉 자아가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규정됨을 명심합시다.

 

우리 안에는 성체로 들어오시는 “너는 나다!”라는 분이 계심을 명심합시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을 수 있으면 이미 영적인 인간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3. 이영근 신부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행전 9,31-42       요한 6,60ㄴ-69

 

오늘 복음은 그동안 우리가 들어오던 요한복음 6장의 끝부분입니다. 

앞 장면에서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임을 선포하시자, ‘유대인들’은 서로 수군거리고(41절) 말다툼(52절)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도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하고 투덜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 6,61-63)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이 생명의 빵’일 뿐만 아니라, 이제 당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씀' 안에 진정한 생명이 있고, 또한 '영'인 말씀을 통하여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곧 ‘말씀이신 분’은 말씀을 발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발설한 말씀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이를 성 그레고리우스는 “말씀은 읽는 이 안에서 자란다.”고 표현합니다. 

이토록 성령께서는 <에제키엘서>(37,1-14)에서 보여주듯이, 죽은 문자인 마른 뼈들에 생기를 돋게 하고 뼈와 살이 붙게 하고, 문자를 성체가 되게 하며 우리가 받아먹을 수 있도록 하여, '말씀의 영성체'를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은 “생명을 주는 영”(로마 8,2)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신비롭고 놀랍게도, 참 생명이 영으로 말씀이 되시어 육화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령으로 도유된 독서’(lectio untionis)라 일컬어지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가 생겨나게 됩니다.

성령께서 '말씀의 동반자이며 해석자'가 되시어, 성경을 읽는 이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계시헌장>(12항)과 <가톨릭교회 교리서>(111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이므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속내를 꿰뚫어 읽어야 한다. 

그러기에 성령을 통해서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가고, 예수님께서는 남은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하시며, 자유로운 응답을 요청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8-69)

그렇습니다. 

참 제자가 되는 길은 정보나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생명이신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먹음으로 실행하게 하소서. 
저희가 무엇을 하더라도 당신 말씀과 함께 하고, 말씀 속에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요한 6,67)

주님!

제가 떠나야 할 것은 당신이 아니라 제 자신이오니, 저 자신을 떠나게 하소서.

나아가, 떠나온 자신마저 떠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당신 장막에 머물고,

흔들림 속에서도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 희망에 매달려 있고,

흔들릴수록 더욱더 뿌리 깊게 내리는 믿음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5.5.9.부활 제3주간 금요일                                                                   

사도9,1-20 요한6,52-59

 

회심의 여정, 회심의 일상화

“성체성사와 회심”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Habemus Papam”(새교황이 오셨다)

마침내, 오늘 2025년 5월 9일 새벽 2시쯤(한국시간) 콘클라베서 이틀 만에 제267대 새 교황이 선출되어

바티칸시티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 흰연기가 올라왔고 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명품 천주교회에 마침내 새 명품교황이 탄생한 것입니다.

 

 제 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새 교황 레오 14세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맡고 있던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으로 한국시간 새벽 2시 35분 바티칸 광장에 운집한 신자들에게

“모든 이들에게 평화”, 첫 강복을 주었습니다.

 

얼마전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은 우리가 믿는 천주교가 진짜 명품종교라는 사실입니다.

명품종교 천주교를 잘 믿을 때 명품신자에 명품인생이겠습니다.

명품신자에 명품인생을 살았던 가톨릭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이요 오늘 사도행전의 사울이 참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로 일컫는 사울의 전격적 회심과정을 알려줍니다.

사울의 회심도 순전히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데 광분한 사울을 찾아 오신 부활한 예수님입니다. 

부활한 예수님과 사울이 극적으로 만나 이뤄지는 회심 장면은 언제 읽어도 새롭고 감동적입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자, 사울은 땅에 엎어집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울의 내적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지요!

아마 이 순간 전격적 회심이 이뤄졌을 것이며 이 결정적 회심의 체험은 평생 사울의 회심의 여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단 한번의 회심이 아니라 평생 여정의 회심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의 유일한 정자의 명칭도 ‘회심정’이요, 회심정에 머무는 이들에게 회심의 은총이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박해를 받는 당신의 제자들과 하나된 부활한 예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 제자들 안에 현존하시며 제자들에 대한 박해는 바로 주님께 대한

박해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믿는 이들과 하나되어 사신다는, 형제들 하나하나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이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환시중에 당신의 제자 하나니아스를 부르시어 사울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자세한 지침을 주십니다.

마침내 하나니아스는 사울을 안수하고 그에게 자초지종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이어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고,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세례를 받음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으니 결정적 회심이 이뤄집니다.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동안 함께 지낸후 곧바로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선포합니다.

회심의 여정과 함께 가는 복음 선포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과 더불어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이제부터 명품신자에 명품인생을,

명품성인의 진짜 참삶을 살게 된 사울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회심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죽는 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회심의 은총이 바로 명품신자. 명품인생, 마침내는 명품성인을 만듭니다.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강조될 인간 마음의 고질적 무지의 병의 치유에도

유일한 처방은 끊임없는 회심의 은총뿐입니다.

회심과 더불어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의 주님을 닮아감으로 참나의 명품인생의 실현입니다.

바로 여기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오늘 복음에서 소개하는 성체성사입니다. 

 

회심의 여정에, 회심의 일상화에 평생 매일 계속되는 성체성사 미사은총은 얼마나 감사한지요!

천주교를 명실공히 명품종교로 만드는 명품미사입니다.

다음 요한복음이 성체성사의 핵심적 진리를 밝혀줍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바로 이런 성체성사의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끊임없이, 한결같이 ‘회심의 여정’과 더불어 ‘회심의 일상화’를 이뤄주고,

일상의 모두에서 주님과의 일치를 날로 깊이해 줌으로 우리 모두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2,20).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10(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 머물겠느냐?” 신앙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눈앞에 기적이 없어도,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께 머무는 사람들, 떠나지 않는 증인들입니다. 성유의 향기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사랑이 오래도록 스며들기를, 그리고 베드로처럼 살리는 말, 일으키는 손, 머무는 마음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 자신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적인 행복은 추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육적 욕망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더욱 영적인 인간이 되면 그렇게 될 때 말씀을 더 믿게 되고 더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임을 명심합시다.(전삼용 신부)

 

3.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계시헌장>(12항)과 <가톨릭교회 교리서>(111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이므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속내를 꿰뚫어 읽어야 한다. 

그러기에 성령을 통해서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요한 6,67)

주님!

제가 떠나야 할 것은 당신이 아니라 제 자신이오니, 저 자신을 떠나게 하소서.

나아가, 떠나온 자신마저 떠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당신 장막에 머물고,

흔들림 속에서도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 희망에 매달려 있고,

흔들릴수록 더욱더 뿌리 깊게 내리는 믿음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바로 이런 성체성사의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끊임없이, 한결같이 ‘회심의 여정’과 더불어 ‘회심의 일상화’를 이뤄주고,

일상의 모두에서 주님과의 일치를 날로 깊이해 줌으로 우리 모두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이수철 신부)

 

5/10(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요한 6,67)

주님!

제가 떠나야 할 것은 당신이 아니라 제 자신이오니, 저 자신을 떠나게 하소서.

나아가, 떠나온 자신마저 떠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당신 장막에 머물고,

흔들림 속에서도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 희망에 매달려 있고,

흔들릴수록 더욱더 뿌리 깊게 내리는 믿음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10일(토) 6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