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5월 12일 월요일[(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홍] 성 판크라시오 순교자
입당송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본기도
저희가 이 세상에서 파스카 신비를 경축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1,1-18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이토록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셨으니
기쁨에 가득 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영원한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지난 성 목요일입니다. 주님의 만찬 미사가 있던 날입니다. 심장마비 증상이 있는 형제님이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자성사를 준비해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형제님은 증상이 심하게 오지 않았고,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예전에 신장결석 때문에 통증이 심했는데, 이번 증상은 그때보다 더 심했다고 하였습니다. 차량 봉사 자매님과 오며 가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매님은 봉사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봉사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웃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전날에도 형제님 병원 입원 절차를 도와주면서 새벽까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은 별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반짝이는 신앙인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자매님은 성 목요일 만찬 미사를 마치면 그동안은 밤을 새워 기도했다고 합니다. 보통은 구역별로 1시간씩 정해서 기도하는데, 자매님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많아서 밤을 새웠다고 합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힘도 들어서 1시간만 기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나는 1년 365일 너와 함께 있는데, 너는 고작 하루 그것도 밤을 새우는 것인데 그것이 그리 힘이 드느냐!” 자매님은 아직은 건강이 허락되니 이번 성 목요일에도 밤을 새워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더 늦기 전에 밤을 새워 기도해 보자!” 본당 교우가 밤을 새워 기도하는데, 본당 신부도 일 년에 하루인데 그 정도는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전에 몇 시간은 해 보았지만 밤을 새워보자는 마음은 처음 먹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구역과 인사하고, 새로 오는 구역을 맞이했습니다.
좋은 사제가 좋은 교우를 만들고, 좋은 교우가 좋은 사제를 도와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해 시대에 프랑스에서 외방 선교회 사제들이 들어와서 사목했습니다. 신부님들은 낯선 곳에서 힘들게 사목하였고, 기꺼이 순교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5대 교구장인 다불뤼 주교님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박해가 심해지면서 공소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전국에서 교우들이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교우들은 몇 날 며칠을 걸어왔고, 발은 퉁퉁 부었습니다. 그렇게 교우들은 눈물의 고백성사를 보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습니다. 주교님은 그런 좋은 교우들이 있기에 순교할 때까지 교우들을 위해서 사목하였습니다. 주교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이 됩니다. 하오니, 주님, 전부인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당신께 온전히 소유 당한 자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우리 삶은 늘 바쁩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피곤함도 쌓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이런 물음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는데, 너는 하루조차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몰입(flow)’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몰입은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만든다. 몰입의 순간에 인간은 가장 인간답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가장 인간답습니다. 그분과 함께 숨 쉬고, 그분께 마음을 드리고, 그분께서 나를 채워 주시는 순간 우리는 새로워집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우리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오늘도 묻습니다. “너는 나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느냐?” 그 물음 앞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그분께 드릴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전부를 얻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가 서로의 길에 신앙의 빛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깨어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0,1-10
아버지이자 형제인 사목자, 온유하고 참을성 있으며 자비로운 사목자를 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꽤 강경합니다.
양 우리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두 부류라고 하십니다.
도둑이나 강도가 있는가 하면, 목자가 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는 양들을 훔쳐 가는 사람들이지만,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양들을 살찌우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님 당신은 착한 목자인 동시에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과하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나는 과연 양들을 안전하게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영적·육적으로 살찌우는 목자인가,
양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삯꾼인가, 성찰해봅니다.
오늘 주님 말씀은 우리 사목자들을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양들을 구원의 문으로 안내하기보다
멸망과 죽음으로 몰고 간 거짓 사제들을 향한 교부들의 경고 말씀이 신랄하고 강경합니다.
“신분으로 사제인 자는 많으나 행동으로 사제인 자는 적습니다.
자리가 사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자리를 만듭니다.
장소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장소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모든 사제가 다 거룩한 것은 아니지만 거룩한 이는 모두 사제입니다.
그러므로 사악한 사제는 자신의 사제직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을 것이며, 사제직에서 오는 영예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거짓 사제들은 철저하게 이중적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게는 그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고 극도로 엄격한 삶의 규율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는 그다지 엄격하게 굴지 않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엄격하고 준엄한 재판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온화하고 관용을 베풀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눈과 심기를 거슬렀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보인 눈꼴 사나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입고 다니던 요란한 옷에 성구갑을 넓게 만들어 매단 것, 그리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어트린 것입니다.
그렇게 웃기는 짬뽕 같은 옷차림을 하고는, 어딜 가던지 거들먹거리면서 상석에 앉고 싶어 혈안이 된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참 제자들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요란스러운 의상이나 장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내용과 본질에 충실했기에, 외적인 것, 부차적인 대상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손에 묶은 유일한 장식은 선행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가르침을 묵상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영혼의 눈으로 볼 때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며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옷자락 술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예수님의 덕행이었습니다.
“사목자들! 우리에게는 진정한 사목자들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이자 형제인 사목자, 온유하고 참을성 있으며 자비로운 사목자를 원합니다.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가난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즐기는 사목자를 찾습니다.
만일 한 사목자가 군주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행동한다면,
우리 교회에 그보다 더 큰 악몽은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0,1-10
<‘주님의 양’에게 주어지는 소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도둑의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에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7)
여기에서,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수평적 이동의 통로로서의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늘과 땅이라는 수직적 이동의 통로서의 문이기도 합니다.
곧 이 '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에게 내려오고, 인류의 사랑이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그러니 생명과 구원의 문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가는 문으로서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간다.”
또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성경이 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며, ‘말씀의 문’을 통해 생명이 드나듦을 말합니다.
그 드나듦은 오늘 복음에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동행하는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임을 밝혀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우리가 '드나드는 문',
곧 당신을 통해 들어가고, 또한 당신을 통해 나가는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드나들고 있는가?
혹 들어가는 문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들어가면 나갈 필요가 없는 문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사실 예수님이라는 ‘문’은 다시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요한 10,3)
그러니 우리가 ‘양 우리’ 안에 머물러 편안하게 자기만의 안식을 누리고자 한다면, 목자를 따르지 않는 ‘양’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요한 10,4)
그렇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밖으로’ 이끌어 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주와 편리로부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그처럼 ‘성문 밖’으로 나가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요한 10,9)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문을)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양’에게 주어지는 소명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교회의 사명을 이런 말씀으로 일깨우셨습니다.
“안락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길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손에 흙을 묻힌 더러워진 교회가 되기를 나는 꿈꾼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9)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당신 풀밭에서 생명의 풀을 뜯게 하소서.
당신 기쁨이 차오르고 당신 사랑에 깃들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당신의 집에 저의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5.11.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사도13,14.43-52 묵시7,9.14ㄴ-17 요한10,27-30
성소聖召의 여정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삶”
봄비 촉촉히 내렸던 어제는 약속대로 반세기전 초등학교 6학년때 제자들이, 지금은 환갑나이의 제자들 여러명이
수도원을 방문하여 작은 동요음악회를 열어줬습니다.
10년째 해마다 5월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까이 날을 잡아 오는 참으로 고마운 제자들입니다.
어제는 스승의 노래, 섬집아기, 어린이날 노래, 과수원길을 정성껏 불러줬고, 스승의 노래에서는 스승이자
착한목자 예수님을 더 닮아야하겠다는 각오도 새로이 했습니다.
오늘은 계속되는 파스카의 축제 계절, 성모성월 5월에 맞이하는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예전에는 착한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여전히 신록의 기쁨, 파스카의 기쁨으로 빛나는 축제같은, 우리의 성소를 확인하는 귀한 날입니다.
끊임없는 부르심과 응답의 '성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찾는 열정에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우리의 참나의 성소는 퇴색되지 않고 신록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도 주님의 성소자로서 우리의 신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떼라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 주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양떼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물음이라면 주님은 답입니다.
성소주일이면 생각나는 유다인 랍비 여호수아 헤쉘의 말과 김춘수의 꽃이란 시입니다.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주님께 불림받음으로 비로소 무명과 익명의 존재가 아닌 존재감 충만한 참나를 살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대로 주님께 불림받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꽃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께 불림받아 사랑받으며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인간 누구나의 근원적 갈망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참나의 성소에 우선적으로 확인할 것이 착한목자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고백처럼 우리의 모든 갈망을 충족시켜 주는 착한목자 주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알아갈수록 참나를 알아감으로 자존감 높은 참나의 삶입니다.
이런 주님은 나의 운명이자 사랑이 됩니다.
이런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헛것의 유령같은 삶일 수 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의 의미이자 중심이신 주님없이 어떻게 거칠고 험한 광야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그러니 우선적인 것이 착한목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이런 착한목자 예수님이 아니고 어디서 이런 목자를 만날 수 있을런지요!
가짜 목자는 얼마나 많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주시어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도 더욱 우리를 용기백배하게 합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온 세상, 온 역사의 시간이, 또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수중에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하나인 예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참 자유로운 참 행복한, 참 부유한 삶입니다.
그러니 날로 주님과의 깊어가는 일치의 우정이 제일입니다.
둘째, 제자리, 꽃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책임을 다하는 삶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참나를 깨닫게 하고 마르지 않는 샘솟는 열정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삶을 보면 그가 얼마나 주님과 깊은 관계에 있는지 담박들어납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복음선포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담대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참 좋은 모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일치의 삶에서 샘솟는 다음과 같은 확신에 넘친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복음선포의 사명을 다하다가 박해로 쫓겨나면서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자기 고유의 몫의 사명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은 기쁨과 성령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십니다.
막연한 추상적 사랑이나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셋째, 늘 내적 시선은 천상을 향해야 합니다.
지상 순례여정중의 삶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됩니다.
궁극의 희망을 천상에 둘 때 결코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탐욕의 유혹이나 수렁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상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존엄한 품위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음도 천상에 궁극의 희망을 둘 때 가능합니다.
바로 제2독서 묵시록에서 천상 성인들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바로 이런 천상 현실에 내 희망의 닻을 내릴 때 주님의 전사로서 백절불굴, 천하무적,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묘사하는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천상성인들은 어떤 분입니까?
다음 말씀 꼭 마음에 담아 두시기 바랍니다.
“저 분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분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되었다.”
결코 온실같은 안락한 세상을 살았던 분들이 아니라, 크고 작은 무수한 고난을 겪어 낸,
순교적 삶에 항구했던 성인들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분발케하는 성인들입니다.
위 말씀에 근거한 다음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저녁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은
제가 자주 즐겨 노래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도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불림받은 성소자들입니다.
참으로 각자 주님께 불림받은 삶의 자리에서 제몫의 사명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때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존엄한 품위의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천상에 희망을 두고 성소의 여정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12(월)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우리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오늘도 묻습니다. “너는 나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느냐?” 그 물음 앞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그분께 드릴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전부를 얻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가 서로의 길에 신앙의 빛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깨어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조재형 신부)
2. “사목자들! 우리에게는 진정한 사목자들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이자 형제인 사목자, 온유하고 참을성 있으며 자비로운 사목자를 원합니다.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가난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즐기는 사목자를 찾습니다.
만일 한 사목자가 군주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행동한다면,
우리 교회에 그보다 더 큰 악몽은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양승국 신부)
3.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요한 10,4)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9)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당신 풀밭에서 생명의 풀을 뜯게 하소서.
당신 기쁨이 차오르고 당신 사랑에 깃들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당신의 집에 저의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도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불림받은 성소자들입니다.
참으로 각자 주님께 불림받은 삶의 자리에서 제몫의 사명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때
거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존엄한 품위의 삶입니다.(이수철 신부)
5/12(월) [(백)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요한 10,4)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9)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당신 풀밭에서 생명의 풀을 뜯게 하소서.
당신 기쁨이 차오르고 당신 사랑에 깃들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당신의 집에 저의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아멘.
- 2025년 5월12일(월) 12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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