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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6월 2일 월요일[(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6월 2일 월요일[(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홍]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

입당송

사도 1,8 참조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알렐루야.

본기도

주님,
성령의 힘을 저희에게 주시어
주님의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거룩한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9,1-8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8(67),2-3.4와 5ㄱㄷ.6-7ㄱㄴ(◎ 33ㄱㄴ)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하느님이 일어나시니 그분의 적들은 흩어지고, 원수들은 그 앞에서 도망치네. 연기가 흩날리듯 그들은 흩어지고, 불길에 밀초가 녹아내리듯, 악인들은 하느님 앞에서 사라져 가네. ◎
○ 의인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
○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시네. ◎

복음 환호송

콜로 3,1
◎ 알렐루야.
○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 알렐루야.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흠 없는 제사로 저희 죄를 씻어 주시고
저희 마음에 천상 생명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또는>
<주님 승천 감사송 1 : 승천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광의 임금님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로서
(오늘) 천사들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 세상의 심판자,
하늘과 땅의 주님이 되셨나이다.
저희 머리요 으뜸으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4,18; 16,2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리니, 너희 마음이 기뻐하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7주간 월요일

 

꾸르실료 봉사자들과 함께 휴스턴엘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휴스턴에서 중남부 여성 제15차 교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정의 집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피정의 집은 깨끗했고, 시설도 좋았습니다.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먼 여정이었습니다. 그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 5시에 모여서 기도하고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도 묵주기도를 함께했습니다. 빗길에 조금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성령께서 보호하시어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가고 오는 길에 성가를 듣고, 신앙의 체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 마치 피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그치고 밝은 태양이 비추니, 모두 감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기 위해서는 어두운 땅속에서 양분과 물을 찾는 뿌리의 노고가 있어야 하듯이, 중남부 제15차 여성 꾸르실료 교육이 잘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여정을 떠올리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은 땅 위에서 피지만, 그 꽃을 떠받치는 건 땅속 깊은 뿌리입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꽃의 미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의 고요한 노고가 있습니다. 이번 꾸르실료가 많은 이에게 은총의 꽃을 피워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봉사자 여러분의 눈물 섞인 헌신과 기도 덕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리고 바오로가 성령의 힘으로 열두 사람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로 꽃이 피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바오로는 그 후에도 석 달 동안 담대하게 하느님 나라를 설교합니다. 환난이 있어도 진리를 향한 여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습니다.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고난 속에서도 진리를 사유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봉사, 우리의 여정도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빗속을 달렸지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확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평화를 얻었습니다. 세상이 흔들어도, 믿음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의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누군가는 무대에 서지만, 누군가는 그 무대를 기도로, 봉사로, 희생으로 떠받칩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꽃을 지탱하는 뿌리의 사랑은 더 깊고 더 숭고합니다. 오늘도 봉사의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가 되어주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듣고서 큰 위로를 받았던 성가가 있습니다. 제목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입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외로워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새로운 한 주간입니다. 나 혼자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짐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누군가 날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에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려고 왔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복음요한 16,29-33

 

언제 어딜 가든지 스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장, 32)

 

한때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이 매료되어 삶을 바꾼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생계 수단인 직업마저 뒤로하고 스승님의 인류 구원 사업 여정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스승님을 위해서라는 목숨까지도 바치겠다,

절대로 스승님을 배신하거나 떠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나약함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시련의 때, 곧 당신께서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게 될 때, 세상 모든 사람들, 제자들마저 당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당신 홀로 남게 될 것임을 명확하게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로부터 버림받는다 할지라도 결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늘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아버지의 현존을 확신하시며, 아버지와 긴밀히 소통하고 일치하시는

예수님의 강한 믿음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강을 건너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믿음입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다 할지라도 아버지만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강한 믿음 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

 

참으로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인 제자들이었는데, 부활 예수님을 체험한 후의 환골탈퇴합니다,

말이지 삶의 방식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갖은 고통과 박해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외아들이며 구세주이심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있어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용맹하고도 담대한 복음 선포자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급격한 변화의 배경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딜 가든지 스승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강렬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 안에 일종의 파스카 체험을 이루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오늘 바로 우리에게도 필요한 체험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산란케 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유혹과 박해가 우리를 힘겹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실망치 말고 제자들처럼 확고한 주님 현존 의식으로 무장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용기를 내라.”는 예수님의 따뜻한 격려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복음요한 16,29-33

 

<‘그분 안에서’ 평화를 찾는 일>

 

그동안 부활시기 내내, 우리는 예수님의 고별담화인 요한복음 13장 후반부부터 14장, 15장, 16장의 다락방에서의 유언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지막 장면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질 때가 올 것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요한 16,32)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의혹에 휩싸이고 혼동에 빠질 것입니다.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약하고 더듬거리고 무지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강함은 우리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지탱합니다.”

(루돌프 스테르텐브링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33)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란, 그 어떤 곤란과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란 단순히 갈등이나 시련이나 고통이 사라진 상태, 분열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그 어떤 낙담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요한 16,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것은 ‘당신이 주시는 평화’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만드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좋은 환경이나 자기 만족에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 안에서’ 얻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데서나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는 ‘마음의 평화’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분 안에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당신 안에’ 마련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사실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주는 평화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이제 ‘그분이 주신 평화’로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주님!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옳고도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죄마저 뒤집어쓰고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지는 무능이 이기는 전능임을 알게 하소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이 이기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6.1.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사도1,1-11 에페1,17-23 루카24,46-53

 

가슴 뛰는 승천의 삶, 승천의 여정

“제자리, 희망, 승리”

 

어제 깨달은 진리에 감사했습니다.

최고의 건강비법 때문입니다.

잘 먹어서, 운동 잘 해서 건강이 아니라 날마다 “가슴 뛰는” 삶이, “참 좋은 관심사”를 지닌 삶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육신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1945년생 80세, 유명한 보수 논객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서 깨달은 진리입니다.

 

“대한민국!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저는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설레임의 하루하루가 최고의 건강 비법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하루하루가 가슴 설레는 기쁨과 깨달음의 연속입니다.

 

어제는 지금은 61세가 된 48년전 초등학교 6학년때 두 제자가 방문했는데, 한 제자는 제가 혼인미사주례할 딸과

사윗감을 데리고 왔고, 한 제자는 제 여름 모자를 선물로 사왔으니, 이 또한 저를 가슴 뛰게 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요즘 해를 향해 오전, 오후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활짝 핀 금계국꽃들이 주님 얼굴 찾는 기쁨을 연상케 하여

자주 눈길 갈수록 신기함에 가슴이 뜁니다. 

 

5월 성모성월이 끝나면서 새로 시작되는 예수성심성월 6월이 또 저를 가슴 뛰는 행복에로 이끕니다.

주님 승천(昇天)이란 말마디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가, 또 세상을 떠났을 때

소천(召天)이란 말마디가 연상되어 또 가슴 뛰게 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진리 말씀도 가슴 뛰게 합니다.

 

“전미개오(轉迷開悟; 껍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중심을 세워라”)라는 불가의 말마디가,

“인생의 시험은 매일 반복된다. 바로 어제 일으킨 마음을 오늘도 계속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도전이다”<다산>,

“중(中)은 지극히 선한 것이고, 용(庸)은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선하면서 오래 할 수 있으면 중용이다”<다산의 심경밀험>란 말마디를 통한 깨달음이 또 가슴 뛰게 합니다. 

 

오늘 6월 예수성심성월 첫날이자 주님 승천 대축일은 홍보주일이기도 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1월24일 생전시 발표한 제59차 홍보주일 담화문 내용도

참신함이 가슴 뛰게 합니다.

일부 요지만 나눕니다.

 

“허위 정보와 양극화가 특징인 우리 시대에 이웃에 대한 책임을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두려는

용기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은 말로 비수를 꽂고, 인위적으로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담긴 메시지를 보냅니다.

타인을 적으로 삼고, 타인의 독자성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고방식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다하십시오’(1베드3,15-16).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되돌려 퍼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온유함과 친밀함이 어우러진 것이어야 합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가슴 뛰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워즈워즈 시인의 “무지개만 봐도 가슴이 뛴다”는 싯귀도 생각납니다.

이래야 참으로 깨어 있는 건강한 삶이요 바로 이런 삶이 승천의 삶, 행복한 승천의 여정을 살게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슴 뛰게 하는 분은 하느님이자 예수님이요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이 가슴 뛰게 합니다.

세 측면에 걸쳐 ‘승천의 삶’을 위한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제자리에 충실한 삶입니다.

승천의 삶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땅에서 하늘을, 지상천국을 사는 삶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못살면 앞으로도 저 세상에서도 못삽니다.

사도행전에서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 대한 꾸짖음은 그대로 우리를 향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은 이미 내 삶의 자리 갈릴래아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은총의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그리워만 할것이 아니라 아예 하늘을 담아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오래전 '하늘'이란 자작시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

 

또 하나의 예전 ‘민들레꽃’ 자작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삶의 제자리 꽃자리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사는 이들이 승천의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둘째, 그리스도께 대한 생생한 희망을 지닌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오늘 지금 여기서 승천의 역동적인 삶을, 가슴 뛰게 하는 삶을, 낙천적이고 명랑하고 유쾌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살게 합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서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이심을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되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께 희망을 둘 때 좌절함이나 절망함이 없이 그대로 오늘 지금 여기서 “승천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이 영적승리의 삶에 대한 빛나는 표징이 됩니다. 

“환호소리 높은 중에 하느님 오르시도다. 하느님 오르시도다.”

날마다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교회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때, 또 주님의 강복에 감사하며 찬미의 기쁜 삶을 살 때

영적승리에 빛나는 승천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는 교회요, 이런 교회의 사람으로 살면서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깊어질 때

그대로 영적승리의 충만한 삶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승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강복하셨고 제자들은 강복의 은총으로 예수님을 경배한 후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줄곧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강복에 응답하여 내 삶의 자리에서 찬미와 감사의 기쁨으로 살아갈 때

날로 하늘에 가까워지는 승천의 삶이자 영적승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제자리에 충실하면서 가슴 뛰는 희망과 기쁨으로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지상 천국의 삶을, 영적승리의 삶을, 승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6/2(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전에 듣고서 큰 위로를 받았던 성가가 있습니다. 제목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입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외로워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사랑했던 제자들로부터 버림받는다 할지라도 결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늘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아버지의 현존을 확신하시며, 아버지와 긴밀히 소통하고 일치하시는

예수님의 강한 믿음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강을 건너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믿음입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다 할지라도 아버지만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강한 믿음 말입니다.(양승국 신부)

 

3.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지탱합니다.”(루돌프 스테르텐브링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33)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주님!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옳고도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죄마저 뒤집어쓰고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지는 무능이 이기는 전능임을 알게 하소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이 이기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5월 성모성월이 끝나면서 새로 시작되는 예수성심성월 6월이 또 저를 가슴 뛰는 행복에로 이끕니다.

주님 승천(昇天)이란 말마디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가, 또 세상을 떠났을 때

소천(召天)이란 말마디가 연상되어 또 가슴 뛰게 합니다.(이수철 신부)

 

6/2(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주님!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옳고도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죄마저 뒤집어쓰고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지는 무능이 이기는 전능임을 알게 하소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이 이기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6월2일(월) 12시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