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궁·산성·조선왕릉

헌인릉(2008.10.28)

 

헌인릉 입구 1

 

헌인릉 입구 1

 

헌인릉 안내도 1

 

헌인릉 안내도 2

 

헌인릉 재실 1

 

헌인릉 재실 2

 

헌인릉 재실 3

 

헌인릉 재실 4

 

헌인릉 재실 5

 

인릉 안내문- 조선 제 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조선 순조 인릉 상설도

 

인릉(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정자각과 비각 복원공사중 1

 

인릉(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정자각과 비각 복원공사중 2

 

인릉(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1- 곡장 능침 혼유석 문석인 무석인 마석 장명등  있고 망주석은 문석인에 가려져 1개만 보이고 난간석은 윗부분만 보인다.

 

인릉(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2- 위의 사진과 비교해 망주석2개보이고 혼유석이 보다 잘 보이고 장명등이 무석인에 가려졌다.

 

인릉(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3- 위의 사진과 비교해 문석인 무석인 마석 크게 상세하게 곡장 혼유석 망주석 1개 보인다.

 

인릉에서 헌릉 가는 길

 

헌인릉 산책길 안내도

 

헌릉 안내문- 조선 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 이다.

 

조선 태종 헌릉 상설도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홍살문 참도(신도, 어도) 정자각 비각과 멀리 2개의 능침이 보인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위의 사진의 확대- 홍살문 참도(신도, 어도) 정자각 비각과 멀리 2개의 능침이 크게 보인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참도(신도, 어도)와 정자각, 멀리 2개의 능침이 보인다.- 홍살문 비각이 안보인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참도(신도, 어도)와 정자각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정자각 지붕 클로즈업 했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정자각 후면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정자각 후면과 비각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 정자각 정면과 비각- 참도(신도,어도)와 2개의 능침 보인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지방 등을 태우는 예감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비각 정면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비각 측면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안내문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신비- 숙종 21년(1695년) 새로이 만들어 구비 옆에 설치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구비- 병화로 처음 건립(1424년)된 비에 새긴 글씨가 떨어져 나가 새로이 만들어 우측에 신비를 설치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곡장 능침 난간석 혼유석 망주석 양석 문인석2 마석 장명등 있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곡장 능침 난간석 혼유석 망주석 양석 문인석2개 마석 장명등 있다- 윗 사진에 비해 장명등이 문석인에 의해 약간 가려졌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능침 혼유석 양석 마석 망주석 장명등 문인석2개, 무인석2개 있다  위의 사진과 비교하여 곡장 안보이고 무인석2개 보인다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능침 혼유석 양석 마석 망주석 장명등 문인석2개, 무인석2개 있다 위의 사진과 비교하여 곡장 안보이고 무인석2개 보인다

 

헌릉에서 인릉 가는 길

 

헌릉 2008-10-28 참빗살나무 열매 1

 

헌릉 2008-10-28 참빗살나무 열매 2

 

헌릉 2008-10-28 참빗살나무 열매 3

 

헌릉 2008-10-28 참빗살나무 열매

 

 헌릉 2008-10-28 아그배나무 열매 1

 

 헌릉 2008-10-28 아그배나무 열매 2

 

 헌릉 2008-10-28 아그배나무 열매 3

 

 헌릉 2008-10-28 칠엽수 단풍

 

헌릉 2008-10-28 주목 열매

 

헌릉

3대 태종(太宗) 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릉

위치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42

지정번호 : 사적 제194

조성시기 : 1420(세종2) 9 17 (원경왕후 하관일)

능의구성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릉이 같은 언덕에 조영된 쌍릉 형식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병풍석의 규모와 확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초기 조선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헌릉의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은 1쌍이고 양석, 호석은 각각 4, 문무인석과 마석은 각각 2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며 조선시대에서는 가장 웅장한 배치 방법이다. 헌릉이 지닌 조선 초기 왕릉으로서의 특성을 두 가지 꼽자면 소전대와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를 들 수 있다. 정자각 북서측에 있는 소전대라고 하는 석물은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지방을 불사르는 시설로 태조 건원릉과 이곳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석물이다. 한편 봉릉 앞 상석 아래에 놓인 고석의 개수가 5개인데, 이와 같이 고석이 5개인 능은 태조의 건원릉, 태종의 헌릉으로 모두 조선 초기 상설제도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헌릉에는 불교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법석은 물론, 원찰의 설립을 금하였다.

능의역사

원경왕후가 1420(세종 2) 7 10일 수강궁(창경궁) 별전에서 태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같은 해 9 17일 대모산 기슭에 건좌손향으로 왕후의 능을 조영했는데, 억불정책으로 원찰을 세우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22(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아들 세종은 같은 해 9 6일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봉릉을 따로 만들어 아버지를 모시고 난간으로 연결하여 쌍릉을 조성하고 곡장을 둘렀다. 능원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손상된 원래 신도비와, 1695(숙종 21) 하나 더 증설하여 세운 것이다. 왕릉의 신도비는 태조의 건원릉, 정종의 후릉, 태종의 헌릉, 세종의 영릉 때까지 세웠다가 그 이후에는 완전히 폐지했는데, 현재 왕릉의 신도비는 건원릉과 헌릉에만 볼 수 있으며 세종의 영릉 신도비는 서초구 내곡동 원래의 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73년에 발굴하여 현재의 청량리 홍릉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입구에 있다.

 

인릉

23대 순조(純祖)와 비 순원황후의 합장릉

위치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13-1

지정번호 : 사적 제194

조성시기 : 1856(철종 7) 10 11

능의구성

인릉은 조선 23대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혼유석을 하나만 설치하여 단릉과 같은 형식이다. 인릉의 능역에는 곡장 3, 난간석 12, 석양 2, 석호 2, 혼유석 1, 망주석 1, 장명등 1, 문석인과 석마 각 1, 무석인과 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과 재실 등이 있다.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 12칸만을 둘렀으며, 기타 상설은 『국조상례보편』의 제도를 따르고 있다. 장명등은 조선 초기의 팔각등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무석인은 생동감 있는 표정과 힘차고 활달한 조각 기법, 이목구비의 표현 등이 매우 사실적이어 조선 후기의 석물조각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릉의 비각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최초의 조영 당시의 것이고, 하나는 고종 때 순조숙황제로 추존되면서 세운 것이다.

능의역사

순조는 1834 11 13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승하하여 1835 4 19일 파주 교하 구후(舊後) 장릉(長陵) 국내에 안장하였고, 능호를 인릉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풍수지리상의 불길론이 대두되어 천장을 결정하게 되었다. 『철종실록』1855(철종 6) 1 18일의 기사에는 "인릉의 능침을 봉안한지 21년이나 되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외의(外議)가 서로 논쟁하고 있다고 하니, 나의 마음이 송구스럽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머님께서도 이런 내용으로 하교하셨지만, 일이 지극히 중차대한 데에 관계되므로, 경 등과 상의하여 결정해서 행하려 한다.”로 시작하는 내용의 인릉의 천장에 대한 논의가 기록되어 있다. 논의가 있은 다음해인 1856(철종 7) 10 11일에 인릉은 현재의 위치인 서초구 내곡동 헌릉 서쪽 언덕으로 천장되었다. 1857(철종 8) 8 4일에는 창덕궁 양심각에서 순원왕후 김씨가 승하하여 같은 해 12 17일에 인릉에 합장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헌릉관리소 / heonin.cha.go.kr]

 

사진 : 니콜라이

글    :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