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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문화의집·성남학아카데미

성남학아카데미 - 2012년 1분기 제4강 - 일본 에도시대 미술-지미령 박사

2012년 2월 1일 10:00~12:00

성남학아카데미 제4강

에도시대의 미술

- 지미령 박사 -

 

*우키요에~ '에도에' 즉 '에도 그림' 이라고 불리곤 한다.

1. 초기풍속화.............유곽의 여인들, 찻집의 여인들 그린것

2. 칸분미인

3. 육필화

4. 미다테 그림..............옛날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림,  그림에 2가지 뜻을 가진 그림

5. 니시키 그림...............비단

6. 카츠시카 호쿠사이

7. 우타가와 히로시게

 

*일본의 에도시대는 한국의 영정조 시대로 단원 김홍도와 신윤복이 등장...일본도 이 시기에 서민문학이 발달

 

<교재>

^^^에도시대~ 문화사, 미술사에서 도요토미씨가 멸망한 1615년부터 1867년 도쿠가와막부(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돌려준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에도시대 미술의 전개는 모모야마 미술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면이 보다 민중적인 차원에서 전승되어 강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가와 무가의 지배계층에서 피지배계층인 도시의 서민들이 일상생활의 장에서 창조성을 발휘해 미술의 민중화를 이룬 점은 에도미술의 최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동시대의 세계의 미술을 상황을 조망해 보아도 정치권력과 관계가 없는 입장에 서서, 해외로의 도항을 금지당한 도시의 주민들이 이만큼의 고도한 미술을 스스로 생활의 장소에서 육성시켰다는 예는 찿아볼 수 없다.

에도미술의 전개는 쿄우호우 년간(1716~36)을 경계로, 크게 전기와 후기로 대별할 수 있다.

 

간에이 미술(전환기)- 전기

 모모야마시대에 폭발적인 전개를 달성한 장식미술의 열기가 보다 세련된 서민미술로의 탈피과정

겐코쿠 미술- 중기

 서민과 농민을 포함한 폭넓은 계층이 미술에 참가

후기의 미술

 봉건사회의 퇴폐를 반영시켜 미술전체의 성격이 말초적 경향을 띠어갔다.

 

1. 조닌

 도쿠가와 이에야스(1534~1616)가 쇼군의 자리에 올라 1603년 에도(현 도쿄)에 바쿠후를 설립한 때를 보통 에도시대의 시작르로 본다. 이에야스의 바쿠후를 떠받치기 위해 상공업자들이 에도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조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의 도쿄와는 달리 당시의 에도는 바다에 면해 있었기에 조닌의 거주지는 바다를 메워 만든 땅위에 지어졌다.

에도가 일본의 중심도시가 된 뒤로도 덴노는 쿄토에 머물렀기에 명목상의 수도는 여전히 쿄토였고, 갓 태어난 에도는 문화적으로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다. 에도 사람들은 쿄토에 대해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는 한편 쇼군이 직접 다스리는 땅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품기도 했다.

신흥도시이기 때문에 에도 사람들은 축적된 전통의 무게에 짓눌릴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를 향유했다. 또한 조닌들은 지배계급인 사무라이들과는 다른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조닌들은 장군 가문이 직접 다스리는 토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늘 신변 가까이에서 무사 문화와 대결해야 하는 상화에 직면해 있었다. 따라서 조닌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를 싹틔우려 할때, 의식적으로 무사 문화의 영향을 거부했으며 오히려 그에 강하게 반발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에도시대의 도시 성장은 부유한 조닌들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미술 분야에 대해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에도, 쿄토, 오사카 부유한 상공업 계층이 소유하고 있었던 경제력은 미술에 대한 쇼군의 지배권을 약화시켰으며, 이들은 스스로의 미적 선택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다양성을 이룩했다.

 

2. 가부키와 유곽

에도시대에 탄생하고 발전한, 일본을 대표하는 연희인 가부키는 이즈마 지방 출신의 무녀 오쿠니가 1603년 쿄토의 한 강변에서 판자로 가설극장을 만들고 간진 흥행의 형식으로 춤과 촌극을 공연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17세기 말이 되면서 에도를 중심으로한 관동지역과 오사카와 쿄토를 중심으로한 관서지역에서 각각 독자적인 가부키 양식이 탄생했고, 다양한 연기와 연출유형이 확립되었다. 당시 가부키는 서민과 함께 호흡하는 소박하고 역동적인 유희였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바쿠후를 열고 도시 건설이 착착 진행되면서 에도에는 매춘업소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신흥 계획도시인 에도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 점을 노리고 쿄토에 있던 매춘업소들이 에도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매춘업소들을 한곳에 모은곳이 요시와라로, 요시와라는 기본적으로 유곽이었지만 달마다 공연이나 전시회등의 행사가 있었고, 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에도에서는 유녀들이 유행을 선도했기 때문에 요시와라를 통해 유행하는 복식과 화장법 등을 알 수도 있었다. 또한 요시와라는 당시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이는 일종의 살롱 구실도 했다.

 

3. 출판계

당시 일본 서민들의 오락은 주로 그림을 넣은 각종 이야기책을 읽는 것이었다. 기뵤시, 샤레본, 곳케이본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삽화를 많이 넣어 문자나 한시문의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책이었다. 이 책들에 그려진 삽화는 모두 검정 한 가지 색으로 목판 인쇄된 것이었는데, 이러한 흑백 인쇄의 판화를 '스미즈리에'라고 한다. 삽화를 넣은 이야기책이 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출판업자들은 우수한 에시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출판을 꾀하기 시작했다. 우수한 에시를 고용한 출판업자들은 이야기책에 점점 삽화의 비중을 늘려가, 문장은 상단에 조금 있고 하단에 그림을 크게 넣어 마치 그림책과 같은 이야기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문장이 없는 감상하기 위한 한장짜리 그림으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즉 이야기 책속의 삽화가 한 장의 그림으로 독립하여 서민들은 책속에서가 아닌 순수한 감상용 그림으로서 즐기게 된 것이다 

 

4. 우키요에

우키요에는 '에도에' 즉 '에도 그림'이라고 불리곤 했다. 그 별명대로 우키요예는 에도 시대(1603~1867)에 '에도'에서 제작된 풍속화이다. 우키오예라는 말이 나타난 것은 17세기 말경이다. 이 무렵에는 이하라 사이카쿠(1642~1693)가 쓴 소설<호색일대남>(1682)을 시작으로 우키요조시라는 새로운 소설장르가 등장했는데, 우키요조시는 인정이나 풍속세태, 거기서 전개되는 인간의 기쁨과 애환을 담은 서민들의 읽을거리로, 오락성이 짙고 삽화가 그려져 있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우키요조시와 더불어 유행한 그림 형식이 우키요에이다.

우키요에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부세회'가 된다. 즉 '부세(浮世)'를 그린 그림이다. 애초에는 '부세(浮世)'를 '우세(憂世)'라고 썼는데, 말 그대로 근심스러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내세의 극락정토와 반대되는 슬프고 끔찍스러운 현실을 의미했다. 무로마치 시대가 저물 무렵 전란이 잦아들고 사회가 안정되자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며 에도시대에 접어들어서는 향락적인 풍조가 확산되었다. 현세가 부질없고 고통스러운 찰나일 뿐이라면, 즐겁고 신나게 사는게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우세(憂世)'는 '부세(浮世)- 뜬구름 같은 세상'으로 바뀌었다.

조닌들이 좋아했던 우키요에는 어디까지나 민간예술로, 공식적인 예술이 아니었고, 가노파 회화와는 거리가 먼, 현실세계의 향락을 담은 것이었다. 당시에 우키요에는 고상한 예술품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우키요에 중에서도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들이 직접 붓으로 그린 육필화(肉筆畵)는 다이묘나 부유한 상인의 주문을 받아 제작된 고가품이었지만, 양적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우키요에 판화는 질과 쓰임새가 천차만별이었다. 조닌이 차분하게 감상하려고 구입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때그때의 생활과 유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힌 것이었다. 조닌들은 유곽과 가부키 극장 등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중요한 도로변 풍경이나 에도 안팎의 유명한 지역을 담은 우키요에를 보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교재 끝>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도를 에도(현 도쿄)로 이전... 외국문물 못 들어오게 봉쇄정책 씀... 그 동안의 고대 전통 문화 재창출 하는 시기... 기존의 화파가 천황 중심에서 민간인 중심으로 바뀜...

*에도시대 초기에 '린파'가 발달...집단 형성, 단지같이 모여 살았음...그림 그리고 싶어 모인 것 임...쿄토에서 가장 싼 지역, 현 금각사 있는 지역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음 

- 북쿄?대학 근처 김일성 학교 있음...검정치마 흰저고리 입고 김일성 만세 김정일 만만세 플랭카드 붙이고 북한노래 부름...요즘엔 플랭카드는 안 보이긴 한다...

- 이 학교 근처, 옛날 블랙마을인 이곳에 현재 레스토랑이 있다. 가격이 꽤 비싼 곳이다.

 

- 에도시대  '린파'의 그림 소다치 <마츠시마도> 그림~ 국보임, 입체감 전혀 없음... 대각선 구도..."마츠시마여, 마츠시마여'' 라고 시를 읊었다는 그림...

*소다츠의 <마츠시마도>~ 국보임. 소나무가 섬보다 큰 구도법?? 섬있고 파도치고 포말그린 마츠시마도

 소다츠의 또 다른 그림 <사슴>~ 색을 입힌 한지를 붙인 그림, 대각선 구도의 기법 쓰고, 색을 번지게 해 구름처럼 그림을 그림

*코에츠 <홍백매화도>~ 그림을 종이로 붙였음. 가므강 중심으로 매화 2그루 양옆에 그림. 젊은 매화와 늙은 매화 배치, 시간은 무상하되 강은 여전히 불변하다는 메세지

 - 쿄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 4명 나왔으나 도쿄대는 안 나왔음. 이유는 쿄토대가 교수와 제자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하므로 가능한것 아닌가?

 - 강사는 외국인 유학생협회 주최 글짓기 대회에서 '쿄토와 홍백매화도' 제목의 글을 써서 2만엔 상금 받았음

*오카타코린의 제비붓꽃 그림~ 보스턴미술관소장~ 모든 배경이 생략, 4개의 섹션으로 분리 가능...학생들에게 그림을 보고 느낀점 말하라고 하니 3.3.7 박수가 생각난다고 함...리듬감 있고 대각선 구도이므로 운동감을 줌

 오카타코린의 또 다른 그림...다리도 그리고, 붓꽃도 그리고, 글도 써있음...헤이안 시대의 남녀 사랑이야기를 쓴 것임

 오카타코린의 '팔교도병풍'~ 메트로폴리탄소장~ 문양처럼 나누어짐

- 오카타코린은 포목점 최고 갑부의 아들임...주색에 빠져 10년안에 망함...6명 부인 두고 6남1녀 자손 둠...막대한 유산 역시 받은 그의 동생은 점잖았으나 사업하다 망함...빚을 갚기 위해 그림을 그렸음...죽을때 까지 빚 갚으려고 그림을 그렸다고 함

- 오카다코린의 도자기, 에도인의 모습 그림,기모노의 그림, 벼루함상자문양~꽃그림, 풀벌레가 우는듯한 문양, 마끼에 벼루함, 마끼에란 나전칠기와 옻칠공예 합친듯한 것을 말함

 

 

*운현궁 사거리의 일본문화원에서 <우키요에전>했음

 

- 초기 풍속화 사진~ 일본유곽안에서의 그림~ 소상팔경도그림 보면서...사미센 치고...

- <유락도>~ 조닌계급이 돈 많아지면서 그림 수집

- <유나토>~ 목욕탕여자들 그림으로 매춘 끝난후의 사진, 훨씬 풀어진 모습의 여인 그림...그러나 칸자한(중국최고선승)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 최고나 최하가 같다라는 풍자의 메세지 보이는 그림...?

- <분츠가이도>~ 여자가 작업걸고/ 남자가 작업거는 모습의 그림

- <노래하는 비구니>~ 칸분미인 그림

- <뒤돌아보는 여인>~ 히사가와모노로부 그림, 판화창시자,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인상, 뒷목선과 옆목선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보여줌...?

- <사미센을 치는 여인>

- 스즈끼하루노부의 그림~ 손목 발목 가늘음, 여성적인 남성 그림, 신윤복의 달밤그림 비슷한 그림으로 화투의 12월 손님 있는 것 같은 그림, 중국고사의 학그림 비슷함...?

  **신윤복의 그림도 여성적 남성 모습의 그림 보여줌...?

- 우타마루 주로 여자를 그렸는데 9등신 여인 그림...눈을 작게, 살짝 올라간 여우눈의 미인

- 에도 3대미인도~ 오히사(찻집 넘버원), 토요히사(가부키유명배우), 오키타(술집넘버원)~ 오키타는 주로 부채 들은 모습, 토요히사는 눈이 좀 더 찢어진 모습??

 

*사라쿠~ 단원 김홍도가 순조시기에 행발불명 됨, 이때 사라쿠 등장, 그가 혹 단원 아닌가? 설 있었으나 현재는 '아니다' 가 정설임... 사라쿠의 여인 그림은 우타마루와 다름, 좀 더 매부리코이고 눈도 조금 큼...?

 

*우키요의 그림으로 도자기를 사서 서양으로 보냄~ 유럽- 프랑스 인상파화가에 영향을 줌~ 고흐에 영향을 주고, 마네에게 영향을 줌

- 마네가 그린 일본 '우키요에' 그림

- <해군과 게이샤> 그림~ 오페라 나비부인 영향...

- <조선통신사의 초상화> 그림

 

*<청명한 날의 후지산> ~ 호쿠사이 그림 ~ 호쿠사이는 유명했는데 히로시게는 40이 넘도록 무명 상태 였음

*<금고루 다리위의 불꽃놀이>~ 히로시게 그림

- 히로시게의 눈오는 밤의 그림~ 눈 오는 밤에 떠나는데...달빛도 없고... 인사도 없이 떠나는 그림...가장 외로운 그림 아닌가....??

- 혹사이는 풍경을, 히로시게는 풍경에 사람의 마음- 외로움, 고독을 느끼게 그림, 히로시게가 비로호의 8경을 그렸음, 판화로 그렸음...??

 

 

사진 · 글 :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