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눈으로 본 한국선거판
한국 정치판에서도 월스트리트처럼 아랍인보다 피라니아의 생존 경쟁력이 뛰어나다. 어제 술좌석에서 동지에게 털어놨던 비밀이 오늘 검찰 소환장을 받는 꼬투리가 되고, 고민을 들어주던 정치 멘토가 살을 몽땅 뜯어먹는 '인간 피라니아'로 돌변해 나타난다.
정치 극장의 배우들만 월스트리트를 닮은 게 아니다. 그들이 의존하는 무대 소품, 그들이 믿는 신앙, 그들을 지탱해주는 관객들까지 쌍둥이 보듯 구별하기 힘들다. 골드만삭스가 한때 최첨단 컴퓨터 기술로 1000분의 3초 만에 거래 체결을 완료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정보를 듣더라도 남보다 빨리 계약을 끝내면서 큰돈을 벌었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인물은 '투자의 귀재(鬼才)'로 추대됐고,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채권의 귀재' '전환 사채의 귀재'들이 속속 탄생했다. 트위터 같은 걸로 대박을 터뜨린 정치인에게 '소통의 달인(達人)'이라는 작위를 수여하는 우리 정치판과 비슷했다.
초고속 거래용 컴퓨터 시스템이나 트위터는 투자와 정치 활동을 도와주는 소품이건만 그걸 선점한 인물은 귀재와 달인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월가의 귀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죄인으로 몰리고 있다. 초고속 거래가 범죄는 아니지만 남의 계약을 방해할 수 있는 새치기 기법이어서 시장 혼탁을 부추겼다고 비판받고 있다. '트위터의 달인'에 불과한 우리 정치인들이 언제까지 '정치의 달인' '소통의 달인'인 듯 뻐길지 두고 볼 일이다.
민주당의 어느 최고위원은 공천 물갈이를 말하면서 "시민의 집단지성(知性)을 믿으면 된다"고 말했다. 자기가 최고위원이 된 것도 '집단지성의 발현(發現)'이라고 했다. 유권자들이 워낙 현명해 훌륭한 정치인을 뽑아줄 것이라며 평범한 시민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였다.
월스트리트가 30여년간 떠받든 신앙도 이것이었다.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고, 항상 현명하며, 항상 효율적인 결론을 찾는다고 믿었다. 신자유주의나 시장경제 이념의 출발점은 인간은 본디 합리적이라는 시각이다.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총명해 돈을 풀어 자극을 주면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시장 움직임에 맡겨두면 경제집단의 이성적 판단 덕분에 경기(景氣)흐름이 자동 조절된다고 보았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추락하고 유럽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요즘, 그 절대 신앙은 깨졌다. 인간이란 때론 감정적이고 때론 멍청하며, 탐욕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이 무리를 형성하면 그 허약함이 감춰지기는커녕 더 무서운 탐욕과 격정에 휘둘리고, 그 허점을 파고들어 자기 잇속을 챙기는 큰손의 작전세력이 활개치는 현실도 알게 됐다.
월가의 금융 회사들이 타도 대상으로 지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주입한 신앙을 믿고 따랐더니 99%는 이용만 당한 후 빈곤층으로 떨어졌다는 분노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인들은 '집단이성'을 넘어 '집단지성'을 숭배(崇拜)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월가의 사고방식에 비판적인 정치인일수록 정체 불명의 사이버 집단을 떠받드는 신앙심이 더 강하다.
그들은 진정 인간 집단의 지성을 100% 믿는 것일까. 유권자 집단이란 감정에 휩싸이기 쉬운 존재여서 감성적 선동에 약하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트위터의 달인들은 젊은 집단이야말로 사소한 자극에도 죽음의 계곡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가는 아프리카의 얼룩말 무리 같아서 언제든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닐까.
월스트리트에는 숱한 위기를 거치면서도 클수록 죽지 않는다(too big to fail)'는 법칙이 살아남았다. 미국인들은 금융회사와 그 경영인들을 욕하면서도 세금을 투입해 살려냈다. 이 법칙은 범법자가 영웅으로 등극하고 불법·탈법을 일삼던 사람들이 '새 정치'를 내걸고 등장한 우리 정치권에서도 살아남을 듯하다. 이미 거물로 성장해버린 '정치 피라니아'들이 아무리 짓궂은 행패를 부려도 우리는 그들을 퇴출시키지 못한 채 꼬박꼬박 혈세(血稅)를 바치며 뒷바라지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출처: 조선일보 2012.2.10]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인간 '피라니아(piranha)'라는 말이 있다. '피라니아(piranha)'는 아마존의 육식 물고기지만 식인(食人) 물고기로 알려지면서 월가에서는 상대방이 죽든 말든 인정 사정 없이 물어뜯는 흉폭한 인간으로 통한다. 이런 말도 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고민을 결코 털어놓지 말라. 90%는 듣지도 않을 것이고, 경청해주는 10%는 당신의 고통을 즐거워할 거다."
월스트리트에는 숱한 위기를 거치면서도 클수록 죽지 않는다(too big to fail)'는 법칙이 살아남았다. 미국인들은 금융회사와 그 경영인들을 욕하면서도 세금을 투입해 살려냈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월스트리트처럼 피라니아의 생존 경쟁력이 뛰어나다. 어제 술좌석에서 동지에게 털어놨던 비밀이 오늘 검찰 소환장을 받는 꼬투리가 되고, 고민을 들어주던 정치 멘토가 살을 몽땅 뜯어먹는 '인간 피라니아'로 돌변해 나타난다. 범법자가 영웅으로 등극하고 불법·탈법을 일삼던 사람들이 '새 정치'를 내걸고...이미 거물로 성장해버린 '정치 피라니아'들이 아무리 짓궂은 행패를 부려도 우리는 그들을 퇴출시키지 못한 채 꼬박꼬박 혈세(血稅)를 바치며 뒷바라지해줘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 소비자가...유권자가... 반드시 지혜롭고 현명해야 한다...^-^
- 2012년 2월17일 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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