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구비문화를 통한 삶의 기쁨
한춘섭(성남문화원장, 국문학자)
*****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문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비(口碑) 전승의 문화였다. 그러한 구전문학은 문자가 만들어져 글이 쓰여지고 책으로 나오는 세상이 된 이후에도 존속되는데, 언어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현실과 음악으로 표현되는 등의 예술로 승화된 형태가 지니는 매력이 없지 않다.
옛날 이야기를 대개 ‘설화(說話)’라 하고, 이것을 크게 신화 ∙ 전설 ∙ 민담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설화에는 민족적 정서를 품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활감정과 풍습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다시 문자로 정리되어 소설의 모태가 되기도 하고, 연극의 대본으로 되거나 음악의 창작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화가 문자로 정착되고 문학적 형태를 취한 것이 곧, 설화문학이다. 전설은 반드시 신격(神格)을 주체로 하는 것만은 아니며, 인간과 그 행위를 주체로 하는 이야기이다. 그 것은 주체가 되는 사물에 따라 지명전설(地名傳說) ∙ 성명전설(姓名傳說) 드응로 분류되고, 암석 ∙ 수목 ∙ 산천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민담에는 신화의 신성성과 위엄성 및 전설의 신빙성과 역사성이 희박한 반면에, 흥미 위주로 된 일종의 옛 이야기이다. 서양에서는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서양문학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BC 8C경에 성립되고, BC 6C경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정되지만, 이 작품들이 지닌 감동은 단순히 오래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만 경탄이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오래 된 작품이 짜임새 있는 구조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설화가 문자로 정착된 것은 고려 때부터 볼 수 있으며, ‘단군(檀君)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 ∙ 전설이 수록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설화의 보물창고라 할 만한 것이다. 일연(一然)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세상에서 믿어지지 않을 기이(奇異)한 일들을 적으면서 “3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이 기이편(奇異篇)을 이 책 첫머리에 싣는 것은 그 뜻이 실로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성남은 37년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전통이 잊혀져 가고 있다. 그 중에 옛 이야기들은 원주민들의 이합집산과 도시 속으로의 흡수로 인해 이야기의 전승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거의 입혀져 가는 실정이다. 옛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록해서 전승하는 것은 우리들이 설화에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문학적 영감들을 되살려 내는 일이라 하겠다. 성남의 설화 가운데 <복우물과 금베틀> 이야기, <이집 선생과 친구 최원도와의 우정>, <낙송정 우물>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삶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김약시, 김윤탁 등의 이야기는 금광동의 유래나 여수동의 유래를 알게 해 주는 근거자료가 된다.
아무쪼록, 이 책 속에 소개되는 하나하나의 단편적인 최초 이야기 모음집을 통해 순박한 향토문화와 향수와 현대인 삶의 기쁨이 되살아 나는 연구와 전승의 실마리가 농경문화 시대의 선조들이 누려 왔던 삶의 교훈성의 깊이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Contents
12 ∙∙∙ 600년 이어오는 우정, 이집(李集) 선생과 최원도
16 ∙∙∙ 여인의 표상, 강정일당(姜靜一堂)
19 ∙∙∙ 한(恨) 서린 망경대의 조견(趙狷)
25 ∙∙∙ 남이홍(南以興) 장군의 애국충절
27 ∙∙∙ 윤치장(尹致章) 의병장
29 ∙∙∙ 벼슬의 뜻을 버린 이통(李通)
30 ∙∙∙ 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무용담
32 ∙∙∙ 무술이 뛰어났던 이함(李菡)
34 ∙∙∙ 할쏘기의 명인, 이효백(李孝伯)
36 ∙∙∙ 일에만 열중한 송맹경(宋孟璟)
37 ∙∙∙ 임금이 내려준 명품 선물
39 ∙∙∙ 임진왜란 해전 승리의 공신, 한효순(韓孝純)
41 ∙∙∙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이경류(李慶流)
43 ∙∙∙ 선조 임근에게 비옷을 바친 권징(勸懲)
46 ∙∙∙ 세조 임금과 이극감(李克堪)
48 ∙∙∙ 탄천전투에서 전사한 최진립(崔震立)
50 ∙∙∙ 청계당과 벽암대사
53 ∙∙∙ 김췌(金萃)의 용기
55 ∙∙∙ 조종도(趙宗道)의 대장부 기개
59 ∙∙∙ 강숙회(姜叔淮)가 불상을 훔친 도둑을 잡다.
61 ∙∙∙ 권득기(權得己)가 벼슬을 하지않은 이유
64 ∙∙∙ 구징(具徵)의 무덤
66 ∙∙∙ 동생을 지극히 아낀 남윤협(南允協)
68 ∙∙∙ 기이한 사람, 이근(李謹)
72 ∙∙∙ 우풍헌과 남한산성
74 ∙∙∙ 정직한 임실현감
76 ∙∙∙ 청백리 이병태(李秉泰)
78 ∙∙∙ 세조 때의 과거시험
80 ∙∙∙ 태종우의 내력
82 ∙∙∙ 태종 임금과 사돈이 된 남경문(南景文)
83 ∙∙∙ 남유용(南有容)이 비단 도포를 입고 다닌 이유는?
85 ∙∙∙ 남공철(南公轍)의 과거(科擧) 급제 끔
88 ∙∙∙ 실수로 어머니를 죽게 한 사람이야기
90 ∙∙∙ 암구렁이와 총각
92 ∙∙∙ 천마와 병자호란
94 ∙∙∙ 청태종의 매부 양고리를 쏘아 죽이다.
95 ∙∙∙ 인조의 끔에 적의 침입을 알린 온조대왕
96∙∙∙ 노협(魯協)이 만난 무인
98 ∙∙∙ 경안교의 돌다리
99 ∙∙∙ 낙송정의 두 얼굴
102 ∙∙∙서혼남(徐欣男)의 공로
104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105 ∙∙∙조선 최고의 가문, 광주(廣州)이씨
107 ∙∙∙광주이씨 시조 설화
109 ∙∙∙호송산(狐訟山) 전설
111 ∙∙∙명선공주와 명햬공주
113 ∙∙∙사라져 버린 우리 고장의 역사기록
115 ∙∙∙이름을 고친 사람들
117 ∙∙∙송언신(宋言愼)의 이름 이야기
118 ∙∙∙남효원(南孝元) 피살사건
119 ∙∙∙소금장수가 백상루를 유람한 이야기
121 ∙∙∙신준미 집에서의 술자리
122 ∙∙∙예수교에 대한 정조 임근의 생각
123 ∙∙∙옛날에도 다이어트를 한 사람
124 ∙∙∙원경하(元景夏)의 천신(天神)문답
126 ∙∙∙위심을 하면 병이 된다
127 ∙∙∙이륙(李陸)의 ≪청파극담≫
129 ∙∙∙은혜갚은 두꺼비
132 ∙∙∙삼천병마골(三千兵馬谷)
133 ∙∙∙도촌동의 유래
135 ∙∙∙성남 도촌동 느티나무
136 ∙∙∙하대원동 회화나무와 윤탁연(尹卓然)
137 ∙∙∙김약시(金若時)와 부전어동
140 ∙∙∙여수동 마을 이름의 유래와 김윤탁(金允濯)
141 ∙∙∙금광동의 특산물이었던 금광초(金光草)
143 ∙∙∙노장군과 물줄기
146 ∙∙∙복우물과 금베틀
150 ∙∙∙성부산(星浮山)의 유래
152 ∙∙∙율동 ‘활터거리’ 그 유래
153 ∙∙∙탄천 이지직(李之直) 묘의 풍수지리
154 ∙∙∙서울 안암동의 유래와 한계희(韓繼禧)
157 ∙∙∙임꺽정(林巨正)과 다래넝쿨
159 ∙∙∙진터 벌의 전설
161 ∙∙∙이경민(李景閔) 묘비 거북 받침의 내력
163 ∙∙∙이곤(李坤) 묘비에 새겨진 삼족오
164 ∙∙∙야탑동 상희공원 이야기
167 ∙∙∙궁내동 샘터 이야기
168 ∙∙∙금단선사와 소년
170 ∙∙∙율동 서근배미(서근마비)
171 ∙∙∙이매동과 헤메기골의 유래
174 ∙∙∙판교원을 지은 조운흘(趙云仡)
176 ∙∙∙화랑모게 ∙ 화랑보 ∙ 화랑보들 ∙ 화랑보개울
177 ∙∙∙열녀, 도미(都彌) 부인
179 ∙∙∙김약(金鑰) 형제의 효행
180 ∙∙∙어머니가 꿈에 나타난 닭고기를 먹여준 효자, 권수(權授)
181 ∙∙∙홍수원(洪睟元)의 효행
182 ∙∙∙열녀 남원 윤씨
184 ∙∙∙이로(李潞)의 효행
185 ∙∙∙효자정의 겨울 잉어
187 ∙∙∙세상에 이런 일이
후기 / 따스한 인정을 품은 도시 성남의 옛 이야기 ∙ 윤종준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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