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의 뜻을 버린 이통(李通)
***** 이통(1556~1620)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천구(天衢)이다. 1614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이 피살되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가족을 데리고 광릉(廣陵 : 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마을에 숨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청빈한 생활의 고통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렵건만 그는 염두에 두지 않고 항상 자제들을 훈계하길 “너희들은 혹시라도 벼슬길에 뜻을 두지 말라” 하였다. 낡은 갓에 황소를 타고 들밭을 노닐기도 하고, 거문고를 타거나 시가를 읊는 등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일찍이 월사 이정구, 서호 홍식 등은 글과 술로써 맺은 친구들로 그들은 자주 찾아 왔으나 그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물었더니, 그가 말하길 “우리 친분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비의 발자취가 재상의 문턱에 가까이 함은 좋지 못하다” 하니 사람들이 공경하고 탄복하였다.
사후 여러 차례 증직을 받아 영의정에 추증되고, 덕풍군(德豊君)에 봉해졌다. 묘소는 현재 수정구 고등동 산 37-1에 있다.
묘소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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