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문화의집
2011, 2분기 성남학아카데미 현장답사
일시: 2011년 5월 25일 08:00 ~
장소: 강화도 일대
답사지: 강화 연미정 / 용흥궁 / 강화 성공회 성당 / 고려궁지 / 강화역사박물관 /고인돌 관람 / 전등사 답사
서현문화의집 2011 성남학아카데미 2분기 강화도 일대 현장답사 일정 안내문
강화도 관광안내도
1. 강화문학관 관람
1) 민족의 대문호 “이규보”~ 여주 이씨 제사 지냄, 이어녕이 우리나라 문호라 칭함
아들 이함이 최우와 문집만듬- ‘동국이상국집’
꿈에 과거 전날 검은 옷 입은 하늘의 별 중 文 담당하는 규성에게 물으니 합격
시 7,000편 모은 것- ‘미인원’-오언절구-순독, 역독이 가능
---소주 만잔만 주소---
시, 술, 거문고 즐김...‘삼혹호’선생... 이규보
2) 성종 때 서거정- ‘동문선’편찬- “동방의 시인은 이규보 한분이다”
3) ‘대장각판군신기고문’- 이규보의 소설
4) 고금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음, 불교의 ‘경, 율, 론’을 집대성하여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불교의 모든 것을 글로 적은 것이 ‘팔만대장경’
※강화의 4개 문화유산
팔만대장경, 고인돌, 외규장각 도서, 조선왕조실록(정족산에 보관)
- 68,000여명의 강화군
2. 전등사
1) 1671년 쿠빌라이칸(징키스칸 후예) 정권 잡음... 원종 아들 충렬왕 잡혀감...막내딸 시집 보냄(제국대장 공주)... 원부인 ‘정화공주’가 한을 ‘전등사’ 달램
아들 ‘충선왕’... “닭 울음소리가 문밖의 버드나무 같구나”...만주의 심양왕도 겸임...고려가 가장 큰 땅...‘만본당’세움.
인재 키움...최고의 한문화 받아들임...‘이제현’→ 주자학 배움→ 제자 이색...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 새로운 유학 받아들임
*산사나무 흰꽃 만개...산딸나무 가짜꽃 피었음...500년 된 은행나무...500년 된 단풍나무...함박꽃나무(?); 술이 붉음...이삭여뀌의 꽃 안핀 상태로 많다
2) 일제 때 고은이 주지...오규원 시인 수목장 했음...함민복 시인 능참봉 역할
*여러 스님들의 부도탑 많음...병인양요의 양헌수 장군(가이드의 조부) 위패? 모심
3) 윤장대; 티벳불교 영향, 돌리면 불경 읽는 효과 있다고 함
4) 4개의 처마에 “전등사 나녀상” 있음...설화 있음
5) 전족산; 소족처럼 봉우리 3개 있어 ‘삼랑성’있음...단군의 3아들 성
3. 용흥궁 공원
1) 철종이 6년간 살던 곳, ‘용흥궁’가는 길에 ‘오동나무’5줄기가 굵은 나무 있고, 골담초 노란꽃도 있어 보면서 갔음.
- 현재 ‘다도예절교육관’으로 활용하고 있음
- 사도세자 아들 중 은신군, 은언군 있음...은언군 아들중 상계군, 정계군 있음... 상계군은 역모로 사사되고, 정계군 아들 중 막내가 철종(=원범), 모친 염씨...
죽은 헌종의 아저씨 뻘(항렬 높음)
은신군은 사후 흥선대원군의 조부가 된다 이유인즉 흥선대원군 부친 남연군이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이다.
은언군은 철종의 조부로 신유박해때 정순왕후에 의해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사사되었고, 그의 아들 중 정계군이 철종의 부친... 은언군이 철종의 조부 임
2) ‘강화행렬도 그림...1849년 6월 제25대 왕으로 등극...19살 즉위하여 14년간 왕 33살 사망... 딸 1명이 박영효와 결혼, 사위였으나...3개월 후 딸 죽음
3) ‘용흥궁’현판 글씨는 대원군이 씀
4) 신봉승 씨의 <임금님의 첫사랑>... 양순, 모친이 사미자...“밥 먹었쓰까? 개~쓰까?(계십니까)... 강화도 사투리
※ 강화의 ‘오사리 밴댕이’ 유명
4. 천주성전
1) 성전 내 500년쯤 된 ‘회화나무’와 200년쯤 된 ‘보리수나무’ 있음... 둘로 갈라진 나무
2) 한옥 임...1900년에 ‘존 코르셀’이 지음. 나라에서 보호하는 사적...111년 된것임...노아의 방주 모양 한옥 임.
*지붕위 기와에 이고들빼기의 노란꽃이 눈에 띠고, 담밑에 흰민들레 보았다
※‘일억조 식당’에서 ‘젓국갈비, 순무김치 식사... 돼지갈비를 하얗게 해먹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음
5. 고려궁지- 외규장각으로 유명
- 단풍나무의 빨간색 프로펠라열매 달려 초록색 잎과 층을 이루어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 감나무 많음...매실나무 예쁨... ^^^안개나무 녹색꽃 피었음
- 작약이 피었다 지고, 5개의 골돌열매 맺힌 모습 웅장함...작약이 고려궁지와 어울림
※ 왕건의 부인 29명...나주지방 호족 오씨 딸(장화왕후)과 동침...돗자리에 정액 훓어 애 낳음...혜종이 돗자리왕 혹은 주름살왕
6. 하전면 부조리의 고인돌 탐사
1) 연개소문 태어난 곳, 우측 봉천산, 좌측 고려산 있는데...고려산은 진달래 유명...
고려산에 5련사 절 있고 5련지(연개소문 군사 물먹이던 연못, 정상 1개는 제사용 연못) 있음
2) 강화에 150여개 고인돌 있음... 북한의 고인돌 위에 ‘성혈’구멍
3) ‘봉천대’는 봉화 올리는 곳...봉씨 시조 살고 있음...봉두완 씨가 자손
- 문종의 제1계비 휘빈김씨; 문종이 자주 찿는 궁녀의 신을 훔쳐 태워 가루를 문종에게 먹이고, 교미뱀을 태워 가루를 먹이는 등 희안한 행동으로 쫓겨남...
부친 김오문 은 딸과 부인 자결하게 하고 본인도 자결
- 문종의 제2계비 순빈봉씨; 변태성 동성애로 시비와 열애를 벌여 쫓겨남...부친 봉여... 딸 죽이고 본인도 자결
- 현덕왕후 권씨; 경혜공주 낳고, 아들 단종 낳음
4) 앞의 ‘별립산’에는 미군기지 주둔
7. 강화역사 박물관
- 보물 11호 ‘강화 동종’과 신미양요 때 깃발 수(帥) 전시되어 있음
8. 명미당(明美堂)
1) 영재 ‘이건창’의 생가...강화학파-양명학-강화학의 본산...15세에 과거급제, 암행어사
2) 초가지붕, 우물있음...뒤에 병인양요 때 자결한 조부 ‘이시원’ 묘 있음...몇백년된 향나무 있음
◈ 답사 장소 참고 유인물 내용 요점정리 ◈
▣ 강화도~ 옛이름은 '갑곶'이다. 갑은 둘(2)의 뜻을 가지고, 곶은 바다로 돌출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즉 '갑곶'이란 두갈래로 갈라진 물(바다, 강)가에 있는 곶으로 된 고을이란 뜻으로 이다.
-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1995.3.1)된 강화도는 하점면 장정리와 화도면 사기리,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유물이 수습되었으며,
신석기유물도 여러 곳에서 수습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거석(巨石)유적인 지석묘(고인돌)가 하점면 부근리를 비롯한 도처에서
다수(80여기 이상 추정)발견되고 있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마니산 참성단, 그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일명 정족산성)에 관한 전설,
그리고 하음 봉씨 시조의 천강설화와 관련한 봉천대 및 봉가지·봉은사·석조여래입상(일명하음노구석상) 등의 유적은
강화도가 성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강화도는 고려 후기에 몽골군의 항쟁을 위해 개성에서 수도를 옮긴 <강도시대; 1232~1270 ; 38년간> 흔적을 볼 수 있는 고려궁터 및 성곽 등이
있어 북방유목민족의 침입에 따른 최적의 피난처임을 말해준다.
- 1998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일명 재조대장경; 1236~1251 ; 15년간)의 제작이 이루어진 것도
대몽항쟁을 하던 <강도시대>에서였다.
- 조선시대 1627년(인조 5)의 정묘호란과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 등 두차례에 걸친 청나라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잠시 피난하였던 것이다.
이후 강화도는 수도(한성)방위의 전초기지라는 역할에 맞게 수많은 군사시설(성곽·진·보·돈대·포대·봉수 등)을 축조·설치하여 방비를 강화하게
된다.
- 조선 말기에는 서양세력 및 일본의 침략에 맞선 격전의 장소가 되었다. 천주교 탄압으로 빚어진 프랑스함대의 침략사건인 병인양요(1866년),
미국의 통상요구가 발단이 되었던 신미양요(1871년), 그리고 개항을 요구하기 위한 구실로 강화도 앞바다에 출현한 일본선박돠의 충돌사건인
운양호사건(1875년)등이 그러하다.
- 운양호사건의 배상으로 일본과 체결한 병자수호조약(1876년)이 맺어진 곳도 강화도이다.(일명 강화도 조약)
- 천혜의 자연관광이 수려한 역사 관광지, 인삼, 화문석, 순무, 약쑥 등 지역특산물이 풍부한 친환경농업을 구현하는 청정지역 임
▣ 연미정~ 조선 중종 때 '황형'의 터전이다.성종 경자년 나이 22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병오년에 중시에 합격하여, 승지를 거쳐 벼슬이 공조판서
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무공(裝武公)이며 나이 62세였다
- 공의 시골집이 강화도 연미정에 있었는데, 일찍이 소나무 수천 그루를 심었다. 사람들이 묻기를 "공은 이미 늙었는데 무엇하러 그렇게 많이
심으시오."하니, 공은 "후세에 당연히 알 것 이다."하였다.
선조 임진년에 김천일, 최원이 들어와서 강도를 보전하는 데, 무릇 배와 기계를 이 나무로 만들어 쓰고도 남았다.
또 정년에 양호가 선조를 모시고 강도로 갈려고 할 때에, 관아에서 그 소나무를 베어 행궁을 짓고 집과 성책을 만드니, 사람들이 비로소
공의 식견에 탄복하였다.《지소록》
▣ 성공회 강화성당~ 종목; 사적 제424호 - 소재지; 강화읍 관청리 250
-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길이 10칸, 남북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이다.
- 이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써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 용흥궁~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 왕이 되기전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한다
- 조선시대 대표적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 다시 짓는다. 원래 초가였으나, 1853년(철종 4)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뒤 1903년(광무 7)에 창안군 이재순이 중건하였다
- 좁은 고샅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하였다.
-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잠저구기비각 1동,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 주심포집이다.
내전은 앞면 7칸, 측면 5칸이며 건평은 90㎡이다. 별전은 앞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으로 건평이 95㎡이다.
비각은 정사각형으로 앞면과 측면이 각각 2.5m로 넓이가 6㎡이다.
- 내전의 오른쪽과 별전의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으나 사용할 수 없다. 별전에는 마루 앞으로 작은 정원이 있고,
별전 오른쪽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으나 잘 가꾸지 않아 화초가 전혀 없다.
별전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으나, 거의 베어져 밑둥만 남아 있다.
'서현문화의집·성남학아카데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남학아카데미 - 2012년 1분기 제11강 - 세종의 놀라운 과학은 왜 근대화를 낳지 못 했던가? - 박성래 전 외국어대학교 부총장 (0) | 2012.03.21 |
---|---|
성남학아카데미 - 2012년 1분기 제10강 - 조선시대 소송 수수료 이야기 - 김성갑 LH박물관 과장 (0) | 2012.03.14 |
성남학아카데미 - 아름방송 인터뷰 (0) | 2012.03.08 |
성남학아카데미 - 2012년 1분기 제9강 - 신라와 고려석탑의 이해 - 홍대한 박사 (0) | 2012.03.07 |
성남학아카데미 - 2012년 1분기 제8강 - 한국과 유목민족의 만남-정성권 교수 (0)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