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무용담
***** 명종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서 무술을 사열할 때의 이야기이다.
무술 사열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오려고 말에 올라 두어 걸음쯤 갔을 때 말이 갑자기 놀라 미친 듯이 날뛰어 말을 이끌던 사람들이 모두 넘어지며 고삐를 놓쳐 버렸다. 수십 걸음쯤을 가다가 임금의 몸이 기울어 거의 떨어지려고 하였는데 선전관(宣傳官) 이윤덕(李潤德, 1529~1611)이 말을 막아서고 한담(韓倓)과 조수흥(趙守興) 등이 임금의 몸을 안아 내렸다.
임금이 길 왼쪽에 머물면서 의관(醫官 : 의사)에게 명하여 맥을 짚어보고 약을 바치게 하였다. 안현(安玹) 등이 문안하니, 별 상처는 없다고 답하였다.드디어 연(輦 : 임금이 타는 가마)을 타고 돈의문(敦義門)을 거쳐 환궁하였다.
이때에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위아래가 모두 경황이 없었다. 임금이 길에 그대로 나앉았는 데도 한참 뒤에야 비로서 장막을 치고 일산(햇빛을 가리는 큰 양산)을 폈으며, 주위의 잡인들이 임금 가까이까지 이르러도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 임금은 잠저(潛邸, 임금이 되기 전 살던 집) 때부터 말을 사랑하였고, 또 말의 좋고 나쁨을 알았다. 행차할 때마다 질주하듯이 몰기를 좋아하여 어가(御駕)를 호종하는 문무(文武) 관원들이 허겁지겁 달려가야 할 정도였다. 신하들이 그 잘못을 말하였는데도 고치치 못하였다.2)
이윤덕 장군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부(得夫), 상호군(上護軍) 이수훤(李秀萱)의 아들이며, 증승지(贈承旨) 윤회정(尹懷貞)의 사위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전라도 병사를 지냈으며, 1564년(명종 9) 함경도 병마절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경상도와 평안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관서부원수(關西副元帥) 등을 지냈으며, 1594년(선조 27)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둔촌사당 앞쪽에 있는데, 비석의 머리 부분 양쪽으로 용의 머리를 새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둔촌 이집 묘역과 함께 경기도 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성남 옛 이야기 / 성남문화원 발행 : 한춘섭 ∙ 윤종준 편저]
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부친 이수훤(李秀萱)의 묘
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묘
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묘 후경
이윤덕(李潤德) 장군의 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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