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의 명인, 이효백(李孝伯)
***** 신종군 이효백(李孝伯, 1433~1487)은 활쏘기의 명인이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 희삼(希參), 시호 공간공(恭簡公).
궁술(弓術)이 비상하여 1459년(세조 5) 임근이 직접 참가한 모화관(慕華館)의 시사(試射)에서 모두 30발의 화살 중 29발을 과녁에 명중시킨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세조의 특명으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정의대부(正議大夫 : 종2품 종친계)에 오르고 1467년(세조 13) 신종군(新宗君)에 봉하여졌다. 같은 해에 이이새(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세조가 친정(親征)을 떠날 때 선봉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듬해에는 무과에 급제하여 품계를 더하였다. 종친(宗親)은 전례에 따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지만, 세조가 그 부터 특별히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종이 즉위한 후에 임금의 명으로 착호갑사(捉虎甲士)와 겸사복을 거느리고 광주 일대의 호랑이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아우 효숙(孝叔), 효성(孝誠), 효창(孝昌)과 함께 활을 잘 쏘았다.
이효백은 풍수지리에도 밝았는데 현재 그의 묘 자리는 자신이 직접 정한 곳이라 한다.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갓에 달린 옥관자가 떨어져 없어졌는데 훗날 그가 죽은 후 묘 자리를 쓰려고 할 때 옥관자 나왔다고 한다.
[출처 : 성남 예 이야기 / 성남문화원]
李孝伯 墓(이효백 묘)
소재지 : 분당구 석운동 산16
시 대 : 조선시대
종 류 : 墓 (묘)
내 용
이효백(1433∼1487)은 조선 정종의 제10왕자 德川君 厚生의 一子(덕천군 후생의 일자). 효성이 지극하여 孝伯(효백) 이라 명명되었다. 본관은 全州(전주) . 자는 希參(희삼) . 弓術(궁술)이 비상하여 1459년 세조가 臨御(임어)한 慕華館(모화관)에서의 試射(시사) 에서 30발의 화살 중 29개를 과녁에 적중시켜, 감탄한 세조의 특명으로 堂上官(당상관)에 올랐다. 그 뒤 곧 正義大夫(정의대부)에 오르고 1467년 新宗君(신종군)에 봉하여졌다. 그 해 李施愛(이시애)의 난으로 세조가 親征(친정)하려 할 때 선봉장으로 내정되었고,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였다.
1468년 承憲大夫(승헌대부)에 오르고 兼司僕將(겸사복장)에 임명되었다가 학식이 없음을 이유로 학업을 성취하면 후일에 기용하기로 하고 체임되었다. 묘소는 신종군이 늘 활을 쏘고 사냥하던 곳으로 어느 날 이곳에 올라 작은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사방을 둘러본 후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곳에 장사 지내라 하였다. 또 하루는 활시위를 당기다가 갓끈에 걸려 갓끈의 큰 구슬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장례시에 그 구슬이 나왔다 한다. 시호는 恭簡(공간) 이며, 配縣夫人은 禮安崔氏(배현부인은 예안최씨)로, 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景禮의 女(경례의 여)이다.
묘역은 석운동 대한송유관공사 못미처 오른쪽 나지막한 구릉에 東南向(동남향) 하여 있다. 봉분 높이 240㎝, 직경 550㎝인 대형 원형의 쌍분으로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묘역에는 묘표석·문인석 등의 옛 석물과 계체석·혼유석·상석·4각과 6각의 향로석 3기와 좌측에 신묘표, 계체석 아래 우측에도 상석, 맨 앞 정중앙의 장명등 좌우로 8각 망주석 등 다수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1·2 계체석간 3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문인석은 幞頭(복두) 에 얼굴 계란형이며 코는 크고 뭉툭하며 옷소매가 길다. 크기는 좌가 203㎝, 얼굴 64㎝이며, 우는 같은 형태에 194㎝, 얼굴부분이 58㎝이다.
墓表(묘표)는 비좌와 一石(일석)의 비신 및 花冠石(화관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의 비문은 前後 2面(전후 2면)에 있으며 前面(전면)의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가능한 글자는 몇 자 안된다. 봉준 좌측의 신묘표는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으며, 비신 前面(전면)에 종3열로 ‘承憲大夫兵曹判書新宗君謚恭簡全州李公諱孝伯之墓 配縣夫人禮安崔氏雙○(승헌대부병조판서신종군익공간전주이공휘효백지묘 배현부인예안최씨쌍○) ’의 비문이 있다. 건립연도는 공의 葬後 452年(장후 452년)(1939)이다. 석운동 11-7 주택 바로 앞에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8,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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