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이 뛰어났던 이함(李菡)
***** 이함(李菡, 1470~1534)은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 덕수(德水), 자는 자실(子實), 시호 해풍군(海豊君), 풍성군 이의번(李宜蕃)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용맹스럽고 활쏘기에 능하였으며 20세에 무재(武才)로 뽑혀서 궁중을 수비하는 장교가 되었다.
1524년(중종 19) 북쪽의 오랑캐들이 여연(閭延) 등 세 고을에 들어와 살고 부락이 번창하니 그들을 축출하기 위하여 병사를 이끌고 출정하였다. 그러나 적들이 군사를 매복시켜 그를 포위하고 공격함으로 접전하여 싸울 때, 그는 적 3인을 쏘아 말에서 떨어뜨리고, 넷째 살을 쏘려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쏘지 못하고 말을 돌려 피하다 적이 뒤에서 칼로 그를 쳐서 귀 뒤를 다쳤다. 이어 급하게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오는데 큰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말에 채찍을 가해서 뛰어 넘어 왔으니 적이 이곳에 이르러 이를 넘지 못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오히려 적 세 사람을 사로잡아 왔고, 몸에 두어 군데 상처를 입고도 쇠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다. 이때 그는 육십(耳順)의 나이에 다가온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싸운 모습에 뛰어난 재주라고 모든 사람이 놀라고 탄복하였다.
1534년(중종 29) 순천부사 재임 중 병으로 향년 65세에 죽으니 임금이 예조좌랑 김기(金璣)를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때 제문에 이르길 “그대의 당당한 재질과 헌걸차고 용맹스런 바탕은 일찍이 궁술과 마술을 익혀서 사람들이 그 무략(武略)을 받들었다. 나라가 한 때 불운을 만나서 임금을 새로 세우는 데 부익한 공적이 있었음은 산하를 두고 맹세한 것이어서 그 이름이 충훈부에 올랐도다. 무릇 오래도록 장수를 하였으며 영안(永安)하고 순박한 복을 누리도다” 하였다.
이함은 불천지위(不遷之位 :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의 명을 받았다. 고등동(등자리) 산 13번지에 묘소가 있다.
묘소 위치 : 예전에 산악자전거 타러 많이 다녔던 곳인데 찾을 수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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