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만 열중한 송맹경(宋孟璟)
***** 명종 2년(1547) 8월 21일, 의무 목사 송맹경(宋孟璟)의 어머니가 아들이 보고 싶어서 임금에게 아들의 벼슬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평소 공직에 몰두한 송맹경이 의주 목사로 나가게 되어 아들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어머니 공자이씨(李氏)가 건의하여 스스로 노병(老病)임을 말하고 맹경을 체직시켜 서로 만나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는데, 임금은 대신에게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우의정 정순봉이 의논드리기를, “의주(義州)는 곧 서방(西方)의 중요한 곳으로서 적의 방어를 맡길 만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만약 그 어머니의 진정(陳情)에 따라 나라의 서문(西門)을 방어하는 책임자를 갑자기 바꾼다면, 관방(關防)할 일이 매우 많은데 적임자를 얻지 못하는 폐단이 있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하였는데, 정순봉의 의견에 따라 송맹경의 어머니는 아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3)
3) <명조실록> 1547년 8월 21일
여산송씨
한자 :礪山宋氏
분야 : 성씨세거지
유형 : 성씨
시대 : 현대
집필자 : 문수진
세거지 : 상대원동
[정의]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송촌에 살던 성씨
[유래]정주목사 송수(宋壽)[1470~1518] 때부터 중원구 상대원동 송촌(宋村)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수는 광주이씨 광원군 이극돈[1435~1503]의 사위로 장인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이극돈이 생전에 사위를 자기 곁에 묻어달라고 해서 이극돈의 묘 옆에 장사지냈다는 것이다. 부인 이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친정 근처에 살면서 아들 넷을 잘 키워 성공시켰다.
[세거지]송수의 뒤를 이어 상대원에 세거한 송씨는 송수의 3남인 송말경(宋末璟)의 후손인데, 송말경의 손자 송언신(宋言愼)[1542~1612]은 퇴계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직전 평양감사를 역임하는 등 5도관찰사와 의정부 좌참찬, 지중추부사, 이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하면서 당쟁에서 서인을 많이 공격하였으며 광해군 초에 축출되었다. 송호범(宋鎬範)[1930년생]은 송말경의 17대손이다.
[인물]송수의 장남 송맹경(宋孟璟)은 중추부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냈고, 송숙경(宋叔璟)은 사도첨정와 왕자사부, 송말경은 양천현령, 송범경(宋範璟)은 주부를 지냈다. 또 손자 송희민(宋希敏)은 한성부좌윤, 송희성(宋希聖)은 의금부도사, 송율(宋嵂)은 종성부사, 송윤(宋崙)은 창녕현감, 송입(宋岦)은 부사과를 지냈다.
[참고문헌]
• 성남시사편찬위원회, 『성남시사』(성남시사편찬위원회, 1993)
•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광주, 성남지역의 지명자료집』(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1998)
• 한국인의 족보편찬위원회, 『한국인의 족보』(일신각, 1999)
• 장삼현, 「성남의 세거성씨(世居姓氏)와 인물고(人物考) -분묘(墳墓)를 중심으로」(『성남문화연구』1, 성남향토문화연구소, 1994)
• 문수진, 「성남시의 집성촌 연구」(『성남문화연구』제8호, 성남향토문화연구소, 2001)
[출처 : 디지털성남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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