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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03-23 예수님을 아는 것은 사랑의 차원

 

2012323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사랑의 차원입니다

 

말씀의 초대

악인들은 의인을 자신들을 성가시게 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의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려고 계략을 꾸민다. 의인의 모습은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보여 주고 있다(1독서). 초막절 축제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두고 유다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참되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유다인들을 나무라신다. 분노에 찬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넘길 때를 기다린다.

 

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1.12-22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오늘의 묵상

다음은 갓 그리스도 신자가 된 사람과 신자가 아닌 친구의 대화입니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지?”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관해 꽤 알겠군. 어디 좀 들어 보세. 그는 어디에서 태어났나?” “모르겠는걸.” “죽을 때 나이는 몇 살이었지?” “모르겠네.” “설교는 몇 차례나 했나?” “몰라.” “아니,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면서, 정작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러자 신자가 말했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아는 게 너무 없어 부끄럽구먼. 그렇지만 이 정도는 알고 있지. 3년 전에 난 주정뱅이였고, 빚을 지고 있었어.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 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돌아오는 걸 무서워하고 있었던 걸세. 그러나 이젠 난 술을 끊었고, 빚도 다 갚았다네. 이제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라네. 저녁마다 아이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이루어 주신 걸세. 이만큼은 나도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네!”

알기에 내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사랑의 차원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깊은 신뢰와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에 가치관이 바뀌고 예수님 때문에 삶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알아 사랑의 차원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삶이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목수일 하고 있는 부친 요셉과 함께 하는 성 가정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