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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꽃말

목단- 부귀

 

목단의 꽃말 - 부귀

 

목단(牧丹)에 관한 고사

 

1일연의 삼국유사에 선덕여왕(632-647)때 당태종이 모란그림과 종자를 보낸 기록이 있다.

<당나라 태종이 붉은빛과 자주빛, 흰빛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 3되를 함께 보냈다. 왕은 이 그림의 꽃을 보더니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뜰에 심으라 명하였다. 뒤에 신하들이 향기가 없는 꽃인 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임금에게 물었더니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음을 알 수 있었소. 이는 당나라 임금이 내가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오'하였다>.

아마 이때 쯤 우리나라에 목단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2삼국사기 제46권 열전6 “설총조설총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신이 들으니 예전에 화왕(花王, 목단)이 처음 들어 왔을 때, 향기로운 꽃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이 되어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고 어여쁜 꽃들이 빠짐없이 달려와서 혹시 시간이 늦지나 않을까 그것만 걱정하며 배알하려고 하였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3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모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떤 사람이 꿈에 모란꽃이 많이 피고 꽃잎이 몹시 큰데, 꽃 위에는 모두 허실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 있는꿈을 꾸고서 나서 과거에 급제하고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후손이 없었다고 한다. 모란이 비록 아름다운 꽃이긴 하나 씨를 맺지 못하니 후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4중국의 설화 하나:

옛날에 한 선비가 친구집에 다니러 갔다가 거나하게 취해 해질 녘에 산 고개를 넘을 때 어디선가 가냘픈 여인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큰 나무 밑에 어떤 여인인 발을 삐어 넘어져 신음하고 있었다. 총각이 그 여인을 산속의 집까지 바래다주고 극진한 대접을 받고 다음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여인이 말했다. “오늘밤에도 꼭 들르시기 바랍니다.” 그 여인의 몸에는 모란의 향기가 은은했으며, 매일 밤 선비를 맞이하러 나올 때도 모란꽃을 수놓은 커다란 등롱(燈籠)을 들고 있었다.

 

서로 사랑이 깊어가면서 선비는 무척 수척해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비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동네 청년들이 뒤를 밟았다. 그런데 선비가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무도 돌보지 않은 어느 무덤 앞에 이르렀다. 무덤은 하도 오래되어 관이 드러날 정도로 헤어져 있었다. 선비가 관 뚜껑을 열려고 할 때 청년들이 소리를 치며 선비를 구하려 했으나 선비는 관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청년들이 아무리 관 뚜껑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다. 관 앞에는 모란을 수놓은 커다란 등롱만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5당나라 시대에는 나라꽃이었을 정도로 모란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꽃이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장안의 흥경궁(興慶宮)안에 목단꽃이 만발한 침향정(寢香亭) 주위를 목단꽃을 감상하며 거닐고 있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한 채 "청평락(淸平樂)" 이란 시를 읊었다. 시중에 "명화경국양상환(名花傾國兩相歡), 장득군왕대소간(長得君王帶笑看), 해석춘풍무한한(解釋春風無限限), 침향정북의란간(寢香亭北倚欄干)" 이란 시구가 있다.

 

다시 말하면 "모란꽃과 양귀비가 서로 환영하누나! 왕이 오랫동안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봄철에 생기는 모든 근심과 걱정스러웠던 일들이 사르르 녹는것 같구나!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 있을 수 밖에....." 라는 뜻이다.

 

당나라 무칙천(武則天)이 자기의 고향 서하(西河 : 현재 산서성 분양(汾陽))에서 장안으로 모란꽃을 옮겨 심었다. 현종(玄宗)이 흥경궁에 모란꽃을 대대적으로 재배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현종은 양귀비와 침향정에서 모란꽃을 감상하는 것이 취미였다. 여기서 경국(傾國)은 양귀비를 일컫는다. 침향정은 침향목으로 지은 목조건물로써 흥경궁 안에 있는 용지(龍池)의 동북쪽 호반에 자리잡고 있다.

 

목단꽃의 생태

 

목단은 주로 포기나누기 번식하기 때문에

꽃은 피지만 씨가 없는 종자가 맺지 않는다하여 수컷모

( )를 쓰고 단은 꽃이 붉다 하여 붉다의 단()

을 써서 중국에서는 모단 이라고 부르게 된다고 한다.

다만 종자의 결실이 좋지 않아

접목으로 많이 한다고 함

우리나라의 이름은 중국의 모단의 발음상

목단으로 부르게 되었다가...

음운변천을 거쳐 모란이라 부른다.

목단, 즉 모란을 노래한 이는 아주 많다.

 

목단꽃의 애용

 

화려하고 복스럽게 피는 모란은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꼽았으며, 아름다운 여인을 흔히 모란꽃 같다고 하듯이 최고의 아름다움이었고 부귀의 상징이었다.

목단의 꽃말은 부귀이며 꽃은 부귀화라고 부르는데 사람에게 건강과 부귀영화를 주는 여자에게 가장 좋은 약초라고 신부의 예복이나 신방의 병풍, 그리고 배개머리에 목단꽃을 그렸으며 벽장문에도 목단꽃이 그려진 벽장지를 붙였고 도자기나 장롱, 문갑, 절의 문살이나 만다라에도 목단꽃을 새겨 놓았다.

민화풍으로 그려진 모란도(牧丹圖)는 혼례용 병풍으로 쓰였으며 고려청자 상감의 꽃무늬, 분청사기의 꽃, 나전칠기의 모란당초(牡丹唐草), 수놓은 꽃방석, 와당(瓦當)의 무늬, 화문석의 밑그림까지 모란의 상징성을 살린 쓰임새는 끝이 없다.

 

작약과 모란의 비교

 

작약과 비슷하나 작약은 목본식물이 아니라 초본식물이다.

목단꽃은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고 부른다.

봄과 여름이 엇갈리는 시절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흔히 목단꽃이 지고나면 작약꽃이 핀다고 하는데 일정하지는 않다

모란은 목본이며 목단, 목란이라고도 한다

작약은 초본인데 함박꽃이라고도 하며, 겨울에 땅 위의 줄기가 모두 죽어버리고, 뿌리만 살아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목련을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모란은 잎사귀가 넓적하고 둥글고,

작약은 잎사귀가 도톰하며 뾰족하다.

꽃색이나 모양으로는 구별이 어렵고 잎사귀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

 

'부끄러움'이란 꽃말을 지닌 작약은 푸른 5-6월의 하늘 아래 여인네의 함박웃음처럼 흰색, 붉은색으로 크고 탐스럽게 활짝 피어나 이른바 함박꽃이라고도 부른다.

목단의 꽃말은 부귀이며 꽃은 부귀화라고 부른다. 5월경 봄의 막바지에 흔히 작약보다 약간 먼저 핀다

 

목단: 잎은 반짝이지 않으며, 작약과 꽃모양이 비슷하나 작약이 초본인데 반해 목단은 목본이다. 겨울에도 줄기가 말라죽지 않고 남아서 봄에 줄기에서 순이 돋는다. 향기가 있다.

꽃봉오리는 장미의 봉오리처럼 위가 뾰족하고, 작약보다 훨씬 크다. 꽃받침 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8개 이상이며, 키는 2m에 이르기도 한다. 꽃의 색깔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한림별곡(翰林別曲)의 내용 중에는 '홍모란, 백모란, 정홍모란(丁紅牡丹)'이 등장한다.

 

 

 

모란(목단)

 

모란(목단)

 

 

모란(목단)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