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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감사일기

단상 카테고리의 시작

<단상 카테고리의 시작>

 

단상 카테고리를 만들어 생각을 정리하면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 잡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듯 하다. 허전함이 울려 퍼져 목멱까지 올라온 상태라고나 할까...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희거나 검거나 혹은 여러 무늬를 띤 차돌맹이 예쁜 공기돌을 줍고 싶다는 그런 마음, 혹은 각양각색의 수석을 골라 명품수석을 가져 보겠다는 결의? 언감 생심 명품수석 결의는 꿈도 못 꾸고, 차돌맹이 공기돌 정도 주어볼까? 하는 마음이다.

 

 

박경리의 글이 떠 오른다. "끝도 가도 없이, 수도 없이, 층층으로 밀려오는 모순의 바다, 막대기 하나 거머잡고 자맥질 하듯, 창조는 그와 같이 외로운 몸부림이라 하겠는데 막대기 하나 만큼의 확신과 그 막대기의 왜소하고 미세함에서 오는 막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모순의 바다에서 막대기 하나 거머쥐고 자맥질 하듯 창조의 외로운 몸부림을 하면서 느꼈던 그 막막함을 말하면서 그녀의 경우 시는 창조적 작업이기 보다 그냥 태어난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바람을 질러서 풀숲을 헤치고 생명의 입김과 향기와 서러운 사연이 내게로 와서 뭔가가 되어지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늘 미숙하고 넋두리 하소연도 적지 않아 발표할 때 마다 꺼림칙하고 쑥스러웠다."고 한다. 박경리 같은 대가도 발표할 때 꺼림칙하고 쑥스러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안도가 되었다.

 

그녀의 경우 "시를 쓴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자정적(自淨的)과정이기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송두리채 빼앗겼던 저 옛날 일제시대, 학교라는 조직속에서 몰래 시를 쓴다는 것이 유일한 내 자유의 공간이었고 6.25세월 속에서는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공감이 된다. 나의 경우도 박경리님 처럼 글을 쓰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자정적(自淨的)과정이 되며 자유의 공간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이 글을 읽는 순간 확~ 밀려왔으니 말이다. 적어도 자정적(自淨的)과정은 될 것 같은 마음이다.

 

 

발표할 때의 꺼림칙하고 쑥스러운 마음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비공개로 하면 될 것을 공개로 하고 싶어 하는 미세한 떨림이 있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진 것은 아닐까?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조직 속에서의 자기존재/자기위치를 확인하고, 생명 본래의 가치를 느끼려는 그런 존재가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든다.

 

- 2012년 5월 8일 (화)요일 수산나 -

 

 

어린이대공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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