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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국경- 이용악/제비꽃과 해당화 사진

 

국경

 

새하얀 눈송이를 낳은 뒤 하늘은 은어의 향수처럼 푸르다 얼어죽은 산토끼처럼 지붕은 말이 없고 모진 바람이 굴뚝을 싸고돈다 강 건너 소문이 그 사람보다도 기대려지는 오늘 폭탄을 품은 젊은 사상이 피에로의 비가에 숨어 와서 유령처럼 나타날 것 같고 눈 우에 크다아란 발자옥을 또렷이 남겨 줄 것 같다 오늘

―이용악(1914~1971)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2012.5.11) 이다. 장석남 시인이 시평을 썼다.


 

'눈송이를 낳은 뒤 은어의 향수처럼 푸른' 이 아름답고 이국적인 하늘은 과연 어느 나라의 하늘이었단 말인가. 저 북쪽의 정서가 우리 문학에서 사라진 지 오래, '얼어죽은 산토끼' 같은 '지붕'의 비유가 불가능한 시대, 폭탄 같은 사상까지도 그리운 시대다. 우리들은 왜 이리 조무래기들이 되어간단 말인가. 학급 석차와 아파트 평수와 당뇨병이나 염려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눈 우에 크다아란 발자옥을 또렷이 남겨 줄' 사람을 기다린다. 너무 빨리 온 이 눅눅한 여름 날씨 속에서.

 


 

*** 강건너 소문이 그 사람보다도 기대려지는...폭탄을 품은 젊은 사상이 피에로의 비가에 숨어와서...은어의 향수처럼 푸르다...

 

은어의 향수? 은어가 향수가 있던가? 그 향수가 푸르다고 했다?...ㅠㅠ...^-^

시인은 말장난의 천재인가 보다...^-^


이용악시인

생몰

1914년 11월 23일 ~ 1971년 (향년 56세) | 호랑이띠, 사수자리

데뷔

1935년 신인문학 시 '패배자의 소원' 발표

학력

조치 대학교 신문학

 

이용악(李庸岳, 1914년 ~ 1971년)은 한국시인이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일본 도쿄에 있는 조치대학(上智大学)을 졸업했고 1939년 귀국하여 주로 잡지사 기자로 일하였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5년, 신인문학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광복 후 서울에서 조선문학가동맹 소속으로 <노한 눈들>, <짓밟히는 거리에서>, <빛발 속에서> 등의 시를 발표하며 '미제와 이승만 괴뢰도당을 반대하는 문화인' 모임에서 활동하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인민군의 서울 점령 때 출옥하여 자진 월북했다. 한국 전쟁 중에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월북한 지 21년이 지난 1971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북국의 가을》,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낡은 집》, 《슬픈 사람들끼리》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백석과 마찬가지로 이용악도 과거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이용악의 시들은 백석과 달리 경험적 진실에 바탕을 둔다. 백석의 시가 토속적이지만 이국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용악의 시는 그보다는 경험이 잘 묻어나 공감이 가는 시이다.

오랑캐꽃 - 이용악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프롤로그>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출전 : (시집 {오랑캐꽃}, 1947)

 

[호제비꽃]

 

작품에서 '오랑캐꽃'은 고려시대 당시 북방에 거주하던 여진족를 두고 한 말입니다. '도래샘' '띳집' '돌가마' '털메투리'-- 이런 것들이 모두 여진족의 생활문화입니다. 당시 고려의 윤관장군이 이 여진족을 정벌한 바 있는데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는 이 부분이 바로 그런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출전 : (시집 {이용악집}, 1949)

 

 


 

달 있는 제사

 

달빛 받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 두 어 방울  

 

―이용악(1914~1971)

 


 

 

해당화

 

백모래 십리 벌을

삽분 삽분 걸어간 발자욱

발자욱의 임자를 기대려

해당화의 순정은

해마다 붉어진다

 


낡은 집 - 이 용 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느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세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한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절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 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출전: (시집 {낡은 집},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