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0일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복음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묵상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
말씀의 초대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깨끗해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헛된 옛 생활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도 현세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그 반대라는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18-25
복음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2-45
오늘의 묵상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예수님 곁에 가장 가까이 앉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거치시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대가 없이 남들보다 큰 존경과 명예를 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선배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라고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습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자 새 옷걸이가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헌 옷걸이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란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는 봉사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봉사는 대부분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명예와 존경을 받고자 직책을 맡아 봉사하려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닭 볏만도 못한 것이 교회에서 맡은 직책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자세는 남을 섬기러 오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낮은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명동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돌아가심을 묵상합니다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면서 서로 통성명을 했습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대전까지 갑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전주까지 갑니다.”
옛날에는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지요. 대전까지 가는 사람이 천주교 신자였고 전주까지 가는 사람은 개신교 장로였습니다.
천주교신자는 골초라 한 담배 피우니까 담배를 피워 물었지요.
개신교신자들이 천주교신자 제일 꼴 보기 싫어하는 게 술, 담배 먹는 건데 거룩한 장로님 코앞에다 담배연기를 뿜어대니까 장로 얼굴이 좋을 리가 없지요~~
못마땅한 얼굴로 20여분 참다가 “보시오, 당신도 천주교 다니면서 같은 하느님 믿는데 성서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담배 피우라는 말 없소. 왜 담배를 그렇게 피우시오?”
천주교신자는 개신교장로가 성서까지 끌어대면서 담배피우는 것 뭐라고 하니까 자존심이 상했지만 계속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대전이 다 와 가니까 그 장로 팔을 잡고 우리 내리자고 끌어내렸습니다.
“어? 나는 전주까지 가야되는데 왜 끌어내리는 거요!”
“하여튼 내리시오!”
개신교 장로는 천주교신자 덩치에 밀려 억지로 끌려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성서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차 타고 다니라는 이야기 없소.
여기서부터 걸어가시오!”
누가 이긴 건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이 자기잣대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종교 간에도 서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줘야지, 자기 잣대만 가지고 다른 종교를 재고 우리 것만 최고다! 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 잣대의 눈금이 정확하냐!
대부분 정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머리 에서 만들어 내고 자기 주관적인 사고 속에서 형성된 눈금도 맞지 않는 잣대를 가지고 우리들은 늘 사람을 잽니다.
자기 자식도 재고, 부모를 재고, 교회를 재고, 하느님을 잽니다.
그런 기회들이 우리에게 무수히 많습니다.
인간의 특징이 뭐냐?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의 밑바닥에는 본능이라는 것에 의하고 선택한 후에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이 주어집니다.
이 선택을 두 가지로 나누면 일상적인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가 눈 뜨고 잠들기까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런 기회들이 우리는 무수히 많습니다.
이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상적인 선택이 있습니다.
아침에 내가 눈 뜨면서 밤에 잠들 때까지 무수하게 많은 선택을 합니다.
여러분께서 이 미사에 나오기까지도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까~~
무슨 양말을 신어야 할까~~
아침에 밥을 하면서 어떤 반찬을 해 먹어야 할까~~
오늘 잠들 때까지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상적인 선택도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지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일상적인 선택은 그 사람이 사는 동안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영혼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중요한 선택은 영적인 선택입니다.
선을 택할 것인가! 악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무수한 도전을 받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긍정적인 선택을 해서
‘주님, 오늘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오늘을 기쁘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기쁨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기쁘게 삽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아, 이 지겨운 인생,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어둡고 부정적, 소극적, 어두운 삶을 선택한 사람은 그
날 하루 종일 어둠속에서 살아갑니다.
악을 선택할 것이냐~~
선을 선택할 것이냐~~
빛을 선택할 것이냐~~
어둠을 선택할 것이냐~~
그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사를 드리러 오면서부터 우리의 마음은 설레이어야 합니다.
그래, 오늘 가서 신부님 강론도 들어야 되고 무엇보다 주님의 성체를 영한다고 하는 기쁨에...행복에...그것을 선택해서 이 자리에 앉아계시다고 한다면 이 미사 중에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은혜가 내려가지만, 해 치우는 식으로 귀찮은 것, 일요일에 한번은 거쳐야 하는 일종의 행사로 생각한다면 아무런 은혜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종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생이 좌우됩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은 올바른 종교를 선택하신 겁니다.
영적인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라는 TV광고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런 상품은 잠시 지나가는 선택이지만 영적인 선택은 죽음과 삶을 좌우합니다.
오늘 1독서에 보면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무얼 선택할 것인지 빨리 결정하라고 다그칩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과 결정을 촉구합니다.
모세는 이미 죽었고 자기까지 죽었을 때, 과연 이 백성이 하느님을 끝까지 지킬 것인지~~
내버릴 것인지~~
지도자로서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과자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돌면서 얼마나 하느님 속을 썩혔습니까?
얼마나 우상숭배를 하고 하느님 배반하기를 밥 먹듯 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족속이었기에 여호수아는 눈을 제대로 감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다른 이미 다른 이교백성들이 들어와서 상상도 못할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 백성이 이교 백성들과 같이 우상숭배에 빠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여호수아는 쉽게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그들과 살면서 유혹을 받게 될 동족을 바라볼 때 많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백성을 모두 세겜이라고 하는 곳에 모아 놓고 선택의 길을 제시합니다.
1독서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오늘 결정하시오!>
여호수아는 생전에 자기 눈으로 꼭 확인을 하고 결판을 내고 싶었던 겁니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촉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선택한다고 그럽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우리는 하느님 선택했습니다.>
이 백성에게 약속을 받고 나서야 여호수아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을 가지고 빵이라고 그랬고 또 그것을 먹어야 된다! 고 하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질겁하면서 다 떠나갑니다.
현재의 욕심에 사로잡혔던 그들이 영의 축복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모두가 떠나고 난 그곳에 열두 제자만이 눈치를 보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졌던 그 질문을 똑같이 합니다.
<자,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겠느냐!>
맏형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베드로는 역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느님이 누구인가를 아주 분명히 알아보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 약한 인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믿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완전히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믿을 뿐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이나 충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커서 부모가 되어 보면 아버지, 어머니가 했던 말들을 알게 됩니다.
성체성사 역시 믿음 없이는 그 위대한 신비를 잘 알지 못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체를 들어 보이면서
<이게 바로 살아있는 예수님입니다!>
하면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이 빵만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다면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아마 미친놈취급을 할 겁니다.
그 조그만 빵 덩어리가 무슨 예수님이라고~~
그걸 먹으면 어떻게 천국에 가느냐고~~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나에게 올 수가 없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성체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이 미사 중에 일어나는 이 엄청난 신비를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일 겁니다.
말씀은, 또 믿음은 선택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적어도 선택은 잘 하신 분들입니다.
하느님을 선택했고, 영혼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것을 포기함을 뜻합니다.
선택만 해놓고 세상 것 아무것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 곁을 떠난 많은 제자들과 같이, 부자청년과 같은 그런 믿음!
이 세상에도 한 다리를 걸쳐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시간씩 다리 하나를 교회에 걸쳐놓고 살아간다면~~
언제든지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을 것이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수많은 제자들과 같이 미련 없이 훌훌~~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십일조도 지키고 일주일에 몇 번씩 단식도 하며
“선생님, 제가 제자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참, 장하다! 그런데 네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살리고 난 다음에 나를 따르라!>
부자청년은 재산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따라다니고 싶었지만 돈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것을 포기함을 뜻합니다.
여러분들, 세례 받으시고 나서 뭘 포기하고 살았습니까?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분노, 짜증스러움, 급한 성격, 다른 사람 상처주는 말, 여러분 마음속에 상처준 사람 용서하지 못한 미움......
이런 것들이 우리가 포기해야 될 대상들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선택이 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됩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자주 선택한 것에 대해서 확인해야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그럴 때마다 영세 때 외쳤던 맹세를 생각해봐야 됩니다.
마귀를 끊어버립니까? 끊어버립니다.
하느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미신을 포기하겠습니까? 포기합니다.
우리는 내가 내 입으로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영세때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신자들의 40%이상이 어렵고 힘들 때 점집을 찾아갑니다.
굿을 해 본 경험이 있다든지, 철학관을 밥 먹듯이 찾아다닌다고 그럽니다.
이건 하느님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도 대한민국의 통계가 그렇다니까 40% 이상이 세례 받은 후에도 점을 쳐 봤거나, 철학관을 찾아다녔거나, 우상숭배에 빠진 적이 있다!
선택은 포기를 뜻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을 만납니다.
세상 것을 그대로 움켜쥐고 어떻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질까봐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다짐을 받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할거냐? 우상을 선택할거냐?
하느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우리들은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하찮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아내를 선택했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내 남편을 선택했기 때문에 골로사이서에 나온 것처럼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선택했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을 내 삶의 첫 자리에 두십시오.
그러면 다른 것은 다 거저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천주교회를 선택했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오늘 성체를 통해서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이요.
흔들리는 믿음을 잡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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