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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경향마당]물사랑, 중대백로에게 배우자

[경향마당]물사랑, 중대백로에게 배우자

 

*This column is my writings which was reported at a daily Kyunghyang newspaper of march 20.

이 글은 3. 20일자 경향신문의 29면 경향마당에 게재된 저의 글입니다.

중대백로(中大白鷺)는 여름새로 알려져 있지만 광릉 숲에서는 겨울에도 나타난다. 다리는 검고 부리 시작 부위가 옅은 녹색을 띤다. 나머지 온몸은 눈처럼 순백색으로 빛나 설객(雪客)이라는 애칭이 있다. 길이가 80여㎝로 새들 중에는 큰 편이며 물고기나 곤충은 물론 개구리, 쥐와 뱀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위에 집을 지어 번식하고 냇가나 습지 등으로 와서 먹이를 구한다.
중대백로의 물 사랑은 유별나다. 물을 전혀 흐리지 않고 고기를 잡는다. 다리가 젓가락처럼 가늘고 길어서 물속을 아무렇게나 다녀도 괜찮으련만 행여 물이 깨질세라 살금살금 걷는다. 어슬렁거리다 이따금 아주 조용히 서서 목을 길게 쭉 뻗어 주변을 살핀다. 물속 이곳저곳을 눈이 빠지게 꼬나보다가 목을 움츠리기를 되풀이한다. 고기가 가까이 보이면 이때다 하고 움츠린 목을 화살처럼 물속으로 쏘아 고기를 잡는다.
살점 하나 피 한 방울로도 물을 더럽히지 않는다. 잡은 물고기를 씹거나 찢지 않는다. 통째로 고기를 부리 안으로 집어넣는다. 긴 목을 움찔움찔하며 삼킬 때마다 고기가 넘어가는 목 부위가 불거진다.
물 밖에서 배설하여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보는 이도 없으니 아무데나 깔겨대면 어쩔 것이냐고 우려하지만, 배설물은 한 수저도 안되는 양이고, 그것도 반드시 물 밖으로 나와 싼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진화로 방광이 없어 따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
물을 적게 소비한다. 음식물에서 필요한 수분을 얻는 새들과 달리 내가 본 바로는 중대백로는 따로 물을 마신다. 물고기 등을 잡아서 먹은 뒤에는 부리로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지만 하루 물 섭취량은 아무리 많아도 닭의 0.2~0.4ℓ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들은 체온조절, 기생충과 먼지 털기, 깃털 관리를 위해서 물속에서 목욕을 한다. 그러나 중대백로가 물속에서 목욕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유엔은 1993년부터 매년 3월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정해 지구의 맑은 물 지키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2009 수자원 이니셔티브 보고서’에서 ‘물 부도’ 가능성을 경고하고 ‘물 파동’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물을 맑고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중대백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물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유기열 농학박사·국립수목원 해설가>

* 아래 사진은 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았으며 참고로 제가 찍은 사진을 올린 것입니다.

<눈이 빠지게 물 속을 살피는 중대백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