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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전나무..날개옷 벗은씨,마블링있는 고급소고기?

전나무..날개옷 벗은씨,마블링있는 고급소고기?

 

전나무는 줄기나 가지를 꺾으면 젖 같은 하얀 즙이 나와서 젓나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 나는 대로 전나무로 부르게 되어 현재는 둘 다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전봇대나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시멘트가 귀하던 시절 도로변의 전신주를 주로 전나무로 만든 데서 불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으로는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월정사, 전북 부안의 내소사가 유명하다. 키 20~40m, 지름 50~150cm의 쭉쭉 곧게 뻗은 울창한 전나무 숲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좋다.

부안 내소사 전나무 길
열매는 위가 둥그런 원기둥이다. 나무 꼭대기 부위의 잔가지에 1개에서 여러 개가 2~5cm 간격으로 위를 보고 달린다. 열매자루는 거의 없고 가지에 난 작고 짧은(5㎜미만임) 돌기(小短枝로도 볼 수 있다)에 붙어 있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고 익으면 갈색이나 흑갈색이 된다. 크기는 길이 9~11cm, 지름 3~4cm(벌어지면 5~6cm)다. 광택은 없으며 겉은 매끄럽지 않고 흰 송진이 많이 묻어 있다. 열매에 붙은 상태로는 실편(ovuliferous scale, 實片 또는 種鱗) 겉에서 포를 볼 수 없다.

열매
포가 실편 겉의 아래에 붙어 있어 과축에서 떨어지기 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포 끝에는 가시바늘이 없다. 포는 열매가 익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익어서 실편이 벌어질 무렵이 되면 뚜렷하다.

실편 역시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안팎이 매그러운 편이나 익으면 세로로 가는 주름이 생긴다. 싱싱한 열매는 물에 가라앉는다. 말라 실편이 벌어진 열매는 처음엔 물에 뜨나 오래 되면 실편이 오므라들어 붙고 가라앉는다.

실편은 열매가 익기 전에는 과축의 돋음 점에 딱 달라붙어 있으나 익으면 실편이 벌어져 열매축(果軸)에서 떨어진다. 이때 씨도 함께 떨어져 바람에 날아간다.

실편은 가장자리가 안으로 아주 약간 굽고, 전체적으로는 짧은 자루가 있는 부채 같다. 바깥 면은 약간 볼록하고 자루로 보이는 곳 바로 위에 포가 붙어 있다. 실편 크기는 길이(높이) 2.5~3.5cm, 너비 2.5~4.0cm, 두께 1.5~2.0㎜다. 포의 크기는 길이(높이) 8~10㎜, 너비 5~6㎜, 두께 0.1~0.2㎜다.

실편과 포
열매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실편이 있다. 1개 실편에는 2개의 씨가 들어 있는데 씨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사이좋게 들어 있다. 약간 튀어나오고 날개가 완전히 싸지 않은 면이 아래로 실편에 붙어 있다.

열매 또한 나무에 수십~수백 개가 달리나 솔방울처럼 열매가 통째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늦가을이나 겨울에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솔방울처럼 떨어진 전나무 열매는 보기 어렵다. 대신에 열매에서 조각나 하나씩 떨어진 실편과 씨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씨는 날개가 달려 있으면 자루 없는 좁은 긴 삼각부채 같다. 날개를 떼어내면 소고기를 썰어 만든 세모뿔 같다. 겉은 흰빛이 도는 약간 연 노란색 바탕에 붉은 점무늬, 아니면 붉은 색 바탕에 흰빛이 도는 연 노란색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날개 달린 씨

씨 색은 날개는 회색이나 갈색이며 날개를 떼어낸 알갱이는 붉은 색과 흰색 내지 연 노란색이 함께 있다. 크기는 날개를 포함 하면 길이 2.0~3.0cm, 너비 1.0~1.5cm, 두께 0.05㎜(알갱이를 덮고 있는 부분은 0.3~0.4㎜)다.

날개를 떼어낸 알갱이 크기는 길이 9~10㎜, 너비 5~6㎜, 두께 4.0~4.5㎜다. 광택은 알갱이 부위는 약간 있으며 겉은 매끄러운 편이다. 물에 뜬다. 잣처럼 기름기가 많아 씨를 누르면 기름이 즙처럼 나온다. 고기처럼 느껴져 하도 먹고 싶어 먹어보았더니 입안이 얼얼하고 아렸다.

씨에 붙은 날개는 알갱이를 덮고 있는 것은 얇은 플라스틱 같으나 그렇지 않은 부분은 미농지 같다. 조심스럽게 날개에서 씨 알갱이를 빼내면 마치 자루가 떨어진 긴 세모로 된 쓰레받기 모양이다. 그러니까 날개가 씨 알갱이를 완전히 싸지 않는다.

날개옷을 벗은 씨
날개를 떼어내면 알갱이만 남는다. 알맹이 겉은 여러 개의 붉은 색 무늬와 흰빛이 도는 연 노란색 무늬로 되어 있다. 소고기를 썰어 놓은 듯하다. 씨껍질 두께는 0.05㎜이하로 얇고, 이것을 벗겨내면 흰색의 씨 알갱이가 나온다.

흰 쌀알 같다. 이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잘라보면 배(胚)가 1개 나온다. 배는 길이 8~9㎜, 지름 0.7~1.0㎜이며 위가 약간 휜 막대모양이다.

씨를 싸고 있는 날개를 벗기면 손에 송진이 묻으며 송진향이 난다. 날개옷을 벗은 씨는 마블링이 적당히 있는 고급 소고기 같다. 누구나 향에 반하고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뿐만 아니다.

씨 알갱이와 그 안의 배

겨울이 지날 무렵 전나무 꼭대기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꼭대기 부분의 높은 가지에 씨와 실편이 다 떨어져나간 과축이 촛대처럼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촛불을 켜고 싶어진다.

살면서 한번쯤 전나무 숲을 찾아 하늘 높이 촛불을 켜고 고급 소고기를 안주삼아 진 양주를 마시는 기분을 느껴보면 어떨까?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한번쯤은 이런 엉뚱한 어리석은 것 같은 감성에 삶을 맡겨볼 필요가 있다. 조금 유치해지고 어린 애처럼 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을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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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편과 씨가 떨어져나간 열매축 전나무 꼭대기 부위에 달린 열매

[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