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씨알여행(유기열)

이질풀, 샹들리에 연상케 하는 벌어진 열매,씨 알갱이는 신기하게도 녹청색

이질풀, 샹들리에 연상케 하는 벌어진 열매,씨 알갱이는 신기하게도 녹청색

 

좋은 말을 다 빼놓고 아름다운 꽃 이름을 하필 이질풀(痢疾, 피똥을 설사하는 소화기 계통의 전염성 질환)이라고 했을까? 꽃을 보기 전 이름만 들으면 꽃이 몹시 못 생기고 지저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꽃을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꽃은 귀엽고 아름답다. 크기는 1.0~1.5㎝로 작다. 연분홍의 꽃잎은 둥근 타원형으로 5장이고 앞면에는 꽃잎 색보다 진한 붉은색의 세로줄 5개(3개는 길고 맨 양쪽의 2개는 짧고 희미하다.)가 있다. 꽃받침은 녹색이고 끝은 침처럼 뾰족하나 전체적으로 좁은 타원형이며 연분홍 꽃잎 사이의 아래쪽에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길게 나온 꽃줄기 끝에 작은 꽃자루 2개가 나오고, 거기에 한 송이씩 꽃이 핀다. 다정하게 쌍을 이루어 피나 약간 시차를 두고 핀다. 한 송이가 꽃을 피우고 있으면 그 옆에 나머지 한 송이는 수줍은 듯 꽃봉오리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열매 역시 익는 시기가 약간 다르다. 먼저 핀 꽃의 열매가 익어 씨를 내보내고 나면 늦게 핀 꽃의 열매는 익은 씨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암술머리는 5갈래로 갈라져 끝이 뒤로 젖혀져있으며 수술은 10개이고 꽃밥은 흑청색~진보라색이다. 수술이 대체로 암술머리 위로 솟아 있고 암술머리 끝은 수술을 향하여 벌어져 있다.

이런 예쁜 꽃을 보면 찜찜하기까지 한 병(病)이름을 붙인데 대한 의심은 더욱 커진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옛날부터 이질이나 위궤양 치료를 위하여 민간요법으로 이 풀을 사용했음을 알았다.

어려운 시절, 아파도 약 사먹을 형편이 안 되던 시대에 이질의 치료제로 사용한 데서 이질풀이라 했다니 꽃 이름에도 이렇듯 조상들의 과거의 아린 추억이 서려 있기도 하다. 한편 속명인 Geranium은 그리스어 학(鶴)인 Geranos에서 유래되었는데 열매의 모양이 학의 부리를 닮았기 때문이라 한다.

꽃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열매는 예술적이다. 열매는 익는 시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보통 2개가 한 쌍을 이루어 열린다.

익어 벌어진 열매
벌어지기 전 열매
열매는 5개의 꽃받침 위 중앙에 5각기둥이 곧게 서 있는 모습이다. 기둥의 양 끝은 다소 좁고 중앙은 약간 볼록하다. 기둥 아래에 5개(수분과 결실이 잘 안 될 경우는 2~4개도 됨)의 씨를 품은 알맹이가 기둥을 빙 돌아가며 30도 각도로 누워 붙어 있다.

열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기둥은 녹황색, 씨가 든 알맹이는 연한 분홍색이 되고 완전히 익으면 검은 색 또는 갈색이 된다. 크기는 기둥 높이는 2.0~3.0cm, 지름은 1.5~2.0㎜이다. 씨가 들어 있는 알맹이는 둥근꼴 타원형이며 길이는 2.5~3.5㎜, 지름은 1.5~2.0㎜이다. 광택은 없으며 겉에 털이 많다. 물에 뜬다.

열매는 잎겨드랑이나 줄기 끝에서 나온 열매줄기가 나오고 거기서 2개의 열매자루가 나와 각각에 열매가 달린다. 열매자루, 꽃받침, 열매껍질에 가늘고 짧은 선모(腺毛,샘털)가 많아 손으로 만지면 끈적인다.

꽃받침은 아래까지 완전히 갈라지며 꽃잎이 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옆으로 퍼져, 열매가 익으면 완전히 옆으로 퍼져 수평을 이룬다. 꽃받침 가장자리는 연분홍빛이 나고 3개정도의 세로 주름이 있다. 열매와 꽃받침 사이에는 10여개의 실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열매는 익으면 꽃받침 위의 씨가 들어 있는 부위 껍질은 씨를 품은 채 꽃받침과 기둥에서 갈라져 위로 올라가며 벌어지면서 씨를 밖으로 내보낸다. 크레인이 물건을 집어 공중으로 들어올려 던지듯 말이다. 씨를 공중으로 내던진 열매껍질은 뒤로 시계태엽처럼 말린다.

씨 알갱이
익은 씨(검정)
씨를 내보낸 알맹이 껍질은 벌어진 부분이 위를 향하고 있다. 기둥엔 5개의 골이 가늘게 세로로 파여 있다. 물론 5개의 씨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경우는 잘 영근 씨를 내보내기 위하여 껍질이 벗겨진 수만큼의 골이 파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껍질이 붙어 있다. 더러는 씨는 꽃받침 위에 남고 껍질만 벗겨지기도 한다.

5개의 씨를 내보낸 후의 열매 모습은 멋지고 고풍스런 샹들리에 같다. 수정은 아니어도 날렵하니 시계태엽처럼 말아 올린 껍질로 된 갓은 미세한 솜털로 장식을 하고, 안쪽 아래로는 가운데가 볼록한 5각 기둥이 구리 빛을 뽐내고 있다.

익은 열매의 모습 중 일부는 옛날에 직접 본 미국의 워싱턴 기념비와 런던 타워브리지가 손을 잡은 듯했다. 어쩜 그 보다 더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5개의 씨가 다 떨어지면 꽃받침 위엔 검은 테를 두른 타원형의 노란 색 꽃잎처럼 보이는 무늬 5개가 기둥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있어 마치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열매껍질 안쪽과 껍질이 벗겨진 열매 겉은 매끄럽고 구리 빛 광택이 난다. 껍질은 딱딱하며 두께는 1㎜미만이다.

잘 익은 열매엔 5개의 씨가 있으며 생육이 좋지 않은 경우 더러는 3~4개의 씨도 있다.
씨는 둥근꼴 타원형이며 아래에는 열매에 붙은 자국인 흰 줄이 뚜렷하다. 색은 어린 때는 녹색이고 익으면 검거나 진한 암갈색이다. 크기는 길이 1.7~2.2㎜, 지름 1.2~1.6㎜이다. 광택이나 윤기는 없으며 익은 씨는 물에 가라앉는다.

씨껍질은 0.1㎜로 얇으나 딱딱한 편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씨들과는 다르게 씨껍질을 벗겨낸 씨 알갱이가 희지 않고 암녹색이나 녹청색이다.

9~10월 이질풀밭에 가면 씨를 내 보낸 열매가 샹들리에로 변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두 개 따서 집안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 어찌 나뿐이랴!

<꽃 받침 위의 씨가 떨어져나간 자리>


[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