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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백당나무.: 산새와 공생하는 빨간 눈구슬나무

백당나무.: 산새와 공생하는 빨간 눈구슬나무

 

겨울엔 산과 들에서 열매보기가 어렵다. 열매는 가을에 익어 겨울이 오기 전에 대부분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겨울에 열매를 보면 즐겁고 신기하다. 무슨 대단한 것을 발견한 양 신이 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백당나무는 겨울에 우리를 신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몇 안 되는 나무의 하나다. 빨간 열매가 눈을 뒤집어 쓴 채 달려있는 모습은 마치 산타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산새가 눈을 헤집고 열매를 따 먹는 것을 한번 보라. 탄성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이땐 영하 10도의 추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왜 백당나무라 했을까? 속명인 Viburnum이 묶는다는 뜻을 가진 Viere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어디에도 속 시원한 답은 없다. 꽃이 무리지어 피고, 열매가 앵두를 닮은 것으로 보아 흰 꽃이 무리지어 피는 나무라는 뜻의 백당(白黨)나무나 수백의 산 앵두 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뜻하는 백당(百榶)나무가 아닐까 추정할 수는 있다.

눈 덮인 빨간 열매
그러나 나는 서리가 내린 후에도 붉은 열매를 달고 있어 이름 지어진 낙상홍(落霜紅)처럼 백당나무는 눈이 내린 후에도 빨간 구슬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십분 살려서 낙설홍(落雪紅)이나 눈구슬나무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꽃은 희다. 특이한 점은 가운데 자잘한 참꽃(유성화, 정상화)이 수십 송이가 모여 피고, 그 주위를 빙둘러가며 크기가 큰 헛꽃(무성화, 장식꽃, 유인화)이 핀다. 이렇게 2종의 꽃을 피우는 것은 자잘한 꽃만으로는 꽃가루받이를 위한 곤충을 불러 모으는 데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워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다.

인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당나무에게는 물어보지 않고 크고 화려한 헛꽃만 피는 나무를 육종했는데 그게 바로 불두화(佛頭花)다. 봄에 꽃이 피면 초록 나무 위에 눈이 내린 듯 하다.

열매는 가을에 빨갛게 익어 다음해 봄까지 달려있기도 한다. 모양은 둥글거나 둥근꼴타원형이며 위 끝 가운데에 미세한 검은 돋음 점이 있다. 열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고, 익을수록 황녹색과 노란바탕에 붉은 색이 돌다가 익으면 빨갛게 된다.

크기는 지름이 8~12㎜이며, 둥근꼴타원형은 길이가 지름보다 2~4㎜길다. 익은 싱싱한 열매는 광택이 있으며 겉은 매끄럽고 부드럽다. 물에 가라앉는다. 익은 열매 맛은 쓰고 시큼하다.

열매는 산방(繖房)차례로 달린다. 줄기에서 나온 1차 이삭줄기는 둥글고 겉에 얕은 골이 4개 있다. 2차 이삭분지부터는 2개의 얕은 골이 있으며, 열매가 달린 열매자루는 겉에 세로 골이 없다.

전체 이삭길이는 4~8cm이며 1차분지 2~2.5cm, 2차분지 1~1.5cm, 열매자루 4~6㎜이다. 1개 이삭에 보통 10~30개의 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익어도 껍질이 벌어지지 않는다. 덜 익은 열매는 단단하고 손톱으로 쪼개야 쪼개진다. 속은 하얀 살로 가득 차 있고 씨와 분리가 잘 안 된다. 그러나 익은 열매는 말랑말랑하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열매자루가 달린 부위가 터지면서 붉은 토마토케첩 같은 즙이 뿜어 나오며 씨가 잘 분리된다. 껍질은 얇은 비닐 같으며 두께는 0.05㎜정도다. 익은 열매는 오래되면 건포도처럼 되다가 아주 오래되면 씨와 한 살이 되어 납작해지고 검어진다. 열매에는 1개 씨가 들어 있다.

씨는 위 끝은 좁고 뾰족하나 아래는 가운데가 약간 들어가 있으며, 윗면은 가운데에 세로의 돋음 선이 있다. 아랫면 가운데가 약간 들어가고 가장자리가 약간 나온듯한 납작한 타원형이다.

돋음 선이 있는 면의 위 끝은 짧은 침처럼 뾰족하다. 따라서 아랫면을 바닥에 닿도록 놓으면 위아래 끝이 약간 들리고 반대로 윗면을 바닥에 닿도록 하면 가운데가 바닥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씨 알갱이
어찌 보면 긴 하트모양 같기도 하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나 녹색 빛이 도는 연노란 색이며 익으면 붉은 색을 띤다. 이것은 열매살에서 붉은 물이 들어서 그런 것이고 씻어서 말리면 퇴색하여 고추씨 색이 된다.

크기는 길이 6.5~9.0㎜, 너비 4.5~6.5㎜, 두께 1~2㎜다. 광택이나 윤기는 없고 겉은 매끄럽지 않다. 물에 가라앉는다.

씨는 딱딱하며 양 옆을 꼭 누르면 쉽게 깨지거나 껍질이 벌어진다. 씨껍질은 잘 벗겨져 알갱이와 잘 분리되며 두께는 0.2~0.3㎜다. 씨 알갱이는 희며 물에 가라앉는다. 딱히 이렇다할 특별한 맛은 없다.

완전히 익은 열매는 어린이들의 좋은 장난감이다. 열매를 따서 몇 알씩 갖게 한 후 열매를 눌러서 누가 열매안의 즙(열매살)을 더 멀리 쏘아나가게 하는지 해본다. 또는 서로의 얼굴에 쏘아 누가 상대의 얼굴에 즙을 많이 묻게 하는지 하여도 좋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살을 베는 듯한 추운 날이었다. 네댓 명과 같이 해설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우연히 직박구리 한 마리가 백당나무 위로 날아왔다. 우리가 자기를 해치지 않으리라고 믿었는가?

아니면 이렇게라도 먹지 않으면 살수 없어서였는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새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눈을 헤집고 열매를 따서 먹었다. 그것도 딱 2개.

“어~ 도망가지 않고 열매를 먹네요. 새가 추운 겨울에 이렇게 가까이서 눈 속의 열매를 먹는 것은 평생 처음 보네요. 와, 특종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마디씩 하면서 놀라고 즐거워했다.

백당나무는 새에 먹히기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새는 백당나무 열매를 먹고 삶을 지속하고, 백당나무는 새를 통하여 먼 곳에까지 자손을 퍼뜨린다. 자기의 생활공간을 확대하여 좋은 환경을 고를 수 있고, 그리하여 한 지역에 재난이 있을 경우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다. 자연 속의 뭇 생명체들은 태반이 이렇게 상생하거나 공생하며 살아간다.

나는 새들이 백당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열매를 먹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새는 어느 열매든 한꺼번에 다 먹지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한 량만 먹고 남겨둔 채 떠났다.

소견이 좁고 멍청한 사람을 가리켜 왜 새대가리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먹이를 먹는 것을 보면 새는 멍청하지 않고 지혜로워 보인다. 오히려 포식이나 과식을 하는 욕심 많은 인간이 이런 새의 삶을 보고 철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삭줄기

눈 덮힌 빨간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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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