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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씨가 있는 한 인류에게 미래는 있다

씨가 있는 한 인류에게 미래는 있다

 

[유기열 칼럼] 「씨알여행」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온지도 벌써 3년 6개월이 넘었다. 세월이 빠르긴 빠르다. 글을 쓰면서 ‘씨가 뭐 길래, 그리 열정을 쏟나요? 씨에 대하여 뭐 그리 쓸게 많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꽃에 대한 글이나 사진은 많아도 열매나 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지 않으니 어찌 보면 이런 물음은 당연한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씨에 대한 글이나 사진이 적을까? 첫째 씨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워 눈에 잘 띄지만 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 씨에는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이 별로 없다.

크기 또한 대부분 1cm이하로 작고 색깔 또한 검은색, 갈색, 흰색이 주를 이룬다. 둘째 씨를 직접 보기가 쉽지 않다. 나무열매는 높이 달려있어 따서 씨까지 보기가 어렵다. 열매는 익으면 땅에 떨어지고, 그러면 찾기도 어렵다.

풀의 경우는 보려고 맘먹어도 익기 전에 제초를 하여 뽑히거나 베어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셋째 씨에 관심이 적다. 외모가 볼품이 없어 보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씨에 관심이 적은 데는 아름다운 외모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의 심리도 한몫한다.

또한 근본을 알려고 하지 않고 쉽게 응용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씨에 관심을 가져도 먹고 사는 데 큰 도움이 안 되고, 관심을 갖지 않아도 사는 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다. 이래서 씨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조차 안 하고 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과연 씨가 없어도 인간이 살 수 있을까? 한마디로 단정컨대 살 수 없다.

씨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며 미래도 마찬가지다. 씨가 없으면 사람이 먹고 숨을 쉴 수 없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는 거의 모두가 씨가 싹이나 자라는 풀과 나무에서 나온다.

고기 역시 풀과 나무, 풀과 나무에서 나오는 원료를 가지고 만든 사료를 먹고 자라는 가축에서 나온다. 한시도 없으면 못 사는 산소는 어떤가? 이 또한 풀과 나무가 탄소동화작용을 할 때 나온다. 이런데도 우리는 씨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씨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산다.

씨가 없어지면 인류도 사라진다. 씨가 지구에서 싹을 틔울 수 없으면 인간도 지구에서 살지 못한다. 씨가 없는 세상, 씨가 살 수 없는 지구는 무덤이다. 씨를 아끼고 씨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하는 까닭이다.

그럼 씨는 무엇인가?

식물이 인간처럼 쾌락을 위하여 섹스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씨는 식물의 섹스가 만든 최종 산물이다. 식물이 하는 사랑의 결정체다.

식물의 모든 행위는 씨로 통한다. 씨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열매를 맺어 씨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며 과정이다.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식물은 꽃을 피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열매를 맺어 씨를 만들 것이다.

식물이 씨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대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식물은 씨를 통하여 종족을 보존한다.

씨는 생명이다. 씨는 살아있다. 죽은 것 같지만 씨에는 생명이 있다.

씨는 미래의 생명이기도 하다. 몇 십 년은 물론이지만 여건만 맞으면 수천 년 후까지도 씨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1996년 일본의 쓰쿠바에 있는 종묘관리센터를 방문했다. 그때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나온 완두콩 씨를 발아시켜 재배하는 것을 보고 씨가 지닌 생명력에 감탄했다.

씨는 화장하지도 꾸미지도 않지만 수수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며 신비하다. 씨는 신비덩어리다. 정교하고 질서 정연하다. 가까이 할수록 흥미롭고, 알수록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깊이 빠질수록 신비로움에 놀란다.

씨는 자체가 희망이다. 씨는 꿈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한다. 그 속에 미래에 나타날 꽃, 잎, 뿌리와 줄기를 다 갖추고 있다. 씨를 보면 거기서 풀과 나무를 보고 그들이 자라서 만드는 숲과 자연풍경이 보인다.

심으면 먹을거리가 생기고 사막화로 죽어가는 지구를 푸르게 살리고... 이런 생각이 들면 씨가 소중하여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씨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거나 싫증이 나지 않는다. 묘한 일이다. 아마 이건 살아 있는 생명체여서 100%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변하고 생성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러니 씨가 좋을 수밖에 없고 씨에 대해 쓸 것이 무궁무진하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시간과 능력의 부족함이 아쉬울 뿐이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벌레에 물어뜯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알의 씨에 숨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순간, 그 기쁨을 누가 알랴! 게다가 거기서 삶의 지혜를 끄집어낼 수 있을 때는 참 행복하다.

씨는 인류의 희망이며 미래다. 씨는 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의 뭍 생명과 지구자체를 살리는 힘을 씨는 가지고 있다. 씨가 없으면 지구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은 파멸할 것이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이익이 없더라도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서 씨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면 한다.

지금 많은 나라가 유전자원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종자관련 다국적기업이 1회용 종자판매량을 늘리는 등 씨앗 전쟁이 심상치 않다. 국익을 위해서도 씨에 대한 관심과 투자확대가 필요하다.

 

2010 년 07 월 26 일 월10:54:22 데일리전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