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개
뭇 개들 사이좋게 지낼 때는 꼬리 흔들며 잘도 어울려 다니지 누가 썩은 뼈다귀를 던져주었나 한 마리 일어나자 우르르 달려들어 으르렁 거리며 서로 싸우네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어 소란스럽네 추우(騶虞)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늘 위 구름에 높이 누워 있어서지
鬪狗行(투구행)
衆狗若相親(중구약상친) 搖尾共行止(요미공행지) 誰將朽骨投(수장후골투) 一狗起衆狗起(일구기중구기) 其聲狺狺狋吽牙(기성은은의우아) 大傷小死何紛紛(대상소사하분분) 所以貴騶虞(소이귀추우) 高臥天上雲(고와천상운)
―조지겸(趙持謙·1639~1685) | |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한시^2012.6.16)이다. 안대회교수의 평이다.
조선 숙종 때 소론(少論)의 거두였던 조지겸의 우언시(寓言詩)다. 동물의 행태를 통해 인간사를 말하려는 의중이 행간에 드러난다. 평소에는 친한 듯 지내다가도 뼈다귀만 발견하면 목숨 걸고 싸워 차지하려고 드는 개들의 모습에는 이익이 나타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낚아채 가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덧씌워져 있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영상이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스무 살 전후의 젊고 패기 찬 선비의 눈으로 보니 정계의 진흙탕에서는 개싸움이 다반사였다. 훗날 당쟁의 일선에 섰던 그도 한때는 구름 위 높이 누운 전설의 짐승 '추우(騶虞)'처럼 살리라 다짐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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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겸 [趙持謙]조선 문신 | 브리태니커
1639(인조 17)~ 168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광보(光甫), 호는 오재(迂齋)·구포(鳩浦). 할아버지는 좌의정 익(翼)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 복양(復陽)이다. 1670년(현종 1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검열·이조좌랑·지평 등을 역임했으며, 1682년(숙종 8)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당시 같은 서인의 김익훈(金益勳) 등이 남인인 허새(許璽)·허영(許瑛) 등에게 반역을 꾀하도록 꾸며 남인의 뿌리를 뽑으려 하자, 한태동(韓泰東)·유득일(兪得一) 등 서인의 소장파들과 함께 이를 탄핵했다. 그러나 서인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이 김익훈을 비호하자 다시 송시열을 논척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그도 윤선거의 아들로 송시열과 사감으로 대립하고 있던 윤증(尹拯)과 우의가 두터웠다. 이러한 이유로,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당하게 되자 윤증과 함께 소론의 거두가 되었다. 그후 부제학·대사성·형조참의를 지내고 1685년(숙종 11)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고산찰방으로 있을 때 전임감사 이원록(李源綠)의 아들이 역마(驛馬)를 사용하자 이를 묵인하지 않고 계(啓)를 올려 이원록을 파면시키는 등 공평무사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광주(廣州) 명고서원(明皐書院), 고성(高城)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오재집〉이 있으며, 편서로는 〈송곡연보 松谷年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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