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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알뜰살뜰·고도원편지

2012년7월13일(금) 그렇게도 가까이!/ 가시연꽃6장 / 마음 속의 도깨비-장영희

그렇게도 가까이!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멀리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봅니다.
행복은 마치 안경과 같습니다.
나는 안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안경은 나의 코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도 가까이!


- 쿠르트 호크의《나이 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중에서 -


* 바로 자기 코 위에 걸려있는 안경,
분신처럼 늘 가까이 있는데도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내 집, 내 손과 발, 약간의 재능과 재물, 지금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 '안경'들입니다.
떠나거나 잃어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2008년 5월26일자 앙코르메일)

 

 

가시연꽃 1

 

가시연꽃 2

 

가시연꽃 3

 

가시연꽃 4

 

가시연꽃 5

 

가시연꽃 6


 

 

<마음 속의 도깨비>

 

<장영희 마리아 교수님>

 

사실 따지고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순전히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고 있는 꼴이다. 가끔 내 마음에는 이렇게 평화를 싫어하고 오히려 분란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도깨비 같은 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와 질서, 화해 찬미론자이지만, 내 속 어딘가에는 분명히 질서에 반항하고 완벽한 조화를 불편해하고 일탈을 꿈꾸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어른이기 때문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남들의 기대와 요구 때문에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싶은 충동, '착함'을 거부하는 존재가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순둥이에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내 속에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꼭 이를 닦고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닦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는 몰래 칫솔에 물을 묻혀 꽂아 놓고 어머니가 이 닦았느냐고 물으면 닦았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그때 어머니가 알고 속으셨는지 모르고 속으셨는지 모르지만, 사실 양치질하는 수고를 덜었다는 것보다는 어머니를 속이는 쾌감이 더 컸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든지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그런 도깨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무슨 커다란 범죄 욕구는 아니더라도 가발을 쓴 사람을 보면 가발을 벗겨 보고 싶은 충동,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사람을 한 번쯤 쿡 건드리고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 아름답고 완벽한 화음으로 노래 부르는 합창단이 있다면 갑자기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보고 싶은 충동, 아주 조용한 성당이나 도서관에 들어가면 "아-악!" 하고 소리 질러 보고 싶은 충동, 굽이 아주 높고 가는 구두를 신고 얌전하게 걸어가는 여자를 보면서 구두굽이 툭 부러지면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 등, 조화보다는 부조화, 타협보다는 갈등을 위해 논리도 체면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도깨비는 누구에게나 잠복해 있어서 언제라도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정 교수가 보내준 글엔느 두 문장이 더 남아 있었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따라 더 기세가 등등한 내 마음속의 도깨비도 이 말에는 반기를 들지 못했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고, 내일을 위한 희망이 있어 행복하고,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은 나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였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날 내 마음속에 사는 도깨비들은 이리저리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숨어 있는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있는지 나는 다시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쁘게 이 글을 쓴다. 어느덧 바람도 싱그러워질 테고, 들국화, 투명한 햇살, 낙엽에 대해 얘기할 것이고, 그러면 내 마음도 정말 가을 하늘처럼 맑아질 수 있겠지. 기대해 보며

 

- 장영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