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오피니언 신형철 문학평론가 입력 : 2012-08-30 20:13:56
웬만한 불의와 불행은 잘 외면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런 내게도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예컨대 밤늦은 시각에 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진 할머니들이 상가 앞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모습.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그 물건들 중에서 어떤 것이 돈이 되는지 나는 모르고, 그것들이 얼마의 돈으로 바꿔지는지도 나는 모른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 할머니들이 따뜻한 국물이 곁들여진 밥을 먹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그러다 돌아가면 맘 편히 누울 방 한 칸이라도 있는지, 노년의 아픈 몸을 지탱할 약은 드시는지.
손홍규의 책 <톰은 톰과 잤다>(문학과지성사)에는 ‘투명인간’이라는 단편이 수록돼 있다. 아버지의 마흔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온가족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를 해보자는 것. 처음에는 모두가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어쩐 일인지 연기를 멈출 수가 없어서 점점 거기에 익숙해진다. 얼마간 힘들어하던 아버지 역시 상황을 수락해버린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난다. 이제는 아버지가 가족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를 잃어버린다. 마치 원래 그랬다는 듯이.
밤거리에서 만나는 할머니들도 투명인간처럼 보인다. 행인들은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지나가고, 할머니도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투명인간 취급 받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거꾸로, 타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결심한 사람. 평생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키우며 살았을 것이고 이제는 버림받아 혼자일 것이다. 이런 분들을 이 사회도 버려두고 있다. 사회의 부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록 비정한 공동체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노년세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2004)에서 1970년대 이후 세대들이 당면한 상황은 이전 세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이제는 실업(unemployment)이 아니라 잉여(redundancy)가 문제라는 것. ‘실업’이라는 표현은 완전고용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것이며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 ‘un’이라는 접두사가 말하고 있듯 이 개념에는 실업이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관점과 그 상태가 곧 해결될 수 있고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잉여’라는 표현 안에는 그런 관점과 전망이 없다. 잉여는, 필요한 인간의 수에 비해 존재하는 인간의 수가 더 많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산물이라는 것. 잉여인간이 된다는 것은 늘 이런 말을 들으며 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바우만은 이 암담한 문장보다도 더 끔찍한 문장을 써서 실업과 잉여의 비교론을 이렇게 요약한다. “실업자의 목적지는 다시 노동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쓰레기의 목적지는 쓰레기장이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이들이 절망을 체념으로 바꾸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면,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이들은 절망이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다스리느라 고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데 실패한 몇몇 이들은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이를 ‘묻지마 살인’이라 부르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혹자들의 제안대로 ‘절망 살인’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악의 결과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라, 악의 구조를 성찰하는 일에 나서기 위해서 말이다. 투명인간과 잉여인간을 양산하고 방치하는 국가라면 그것이야말로 투명국가이고 잉여국가일 테니까.
손홍규의 책 <톰은 톰과 잤다>(문학과지성사)에는 ‘투명인간’이라는 단편이 수록돼 있다....투명인간 취급 받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거꾸로, 타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결심한 사람...^-^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2004)에서 1970년대 이후 세대들이 당면한 상황은 실업(unemployment)이 아니라 잉여(redundancy)가 문제라는 것....“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바우만은 이 암담한 문장보다도 더 끔찍한 문장을 써서 실업과 잉여의 비교론을 이렇게 요약한다. “실업자의 목적지는 다시 노동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쓰레기의 목적지는 쓰레기장이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이들이 절망을 체념으로 바꾸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면,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이들은 절망이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다스리느라 고투하고 있을 것이다....^-^
투명인간과 잉여인간...글을 읽고보니 너무 우울한 단어이다...ㅠㅠ...^-^
- 2012년 9월3일 월요일 오후 5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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