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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오피니언

[조선'신문화']1930년대 '요요'가 大유행!"자본주의 말기 퇴폐" 논란/대한 성공회 인천 내동교회 3장

[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7) 1930년대 '요요'가 大유행!"자본주의 말기 퇴폐" 논란 

조선일보 문화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입력 : 2012.09.26 22:44

 

1920~1930년대 이 땅의 삶이 '모던'해지면서 아이들 장난감에도 커다란 변화가 왔다. '조선의 가정에서는 원래 거의 어린이들에게 작란감은 주지' 않았으나(1935년 3월 2일자) '우리들이 만든 작란감도 업는' 이 땅에 '비행기 모형, 경주 자동차, 하모니카' 등 외래 장난감이 보급되기 시작했다(1932년 5월 27일자). 특히 눈길을 끄는 건, 1920년대 말부터 서구에서 유행한 장난감 '요요'가 1930년대 초반에 이 땅에 일찌감치 상륙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평론가 백철(白鐵)이 '신여성' 1933년 5월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퍽 자미잇는 유희물'인 요요는 '페스트균의 전염률보다도 멧백 배의 위대한 전파력'으로 유행했다. '학교에서 도라오는 소학교 생도의 조고마한 손에 고놈이 오르나리는가 하면, 증글증글하게 큰 세비로(신사복) 입은 신사 양반이 가두에서… 이놈을 희롱하고' 카페 여종업원, 백화점 점원, 기업체 사장의 책상 서랍에도 요요가 하나씩 들어있었다. "나의 요요여!…/ 늘엇다 줄엇다 할, 그때마다/ 나의 심장은 어두엇다 밝엇다/ 아아 요요, 나의 연인이여!"라는 '요요의 노래'도 유행했다.

‘끈이 끈어질 때까지…작란하는’요요 란‘말세를 의미한 작란감’이라고 쓴 조선일보 기사(1933년 4월 29일자).

하지만 외래 장난감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었다. 장난감엔 '외국의 정신을 너어주는 것 가튼… 큰 경향'이 있으니 주의하자는 것이다(1932년 5월 27일자). 요요에 대해서는 비판론도 가장 높았다.

백철은 요요가 힘겹게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유행이 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유한(有閑)한 사람들, 섬세한 말초의 신경과 보드랍고 굴신(屈伸·구부리고 펴기)이 자유스럽은 다섯 손가락의 백수(白手·흰 손)에게만 적당한 유희물'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말기의 퇴폐 시기의 산물''경박한 유행물'이라는 표현도 썼다('신여성' 1933년 5월호).

조선일보도 러시아 평론가의 글을 인용하며 요요가 '세계대전 후의 자본주의를 상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둥글은 뽈이 줄에 달려 올러갓다 나려왓다, 또 다시 나려오기 위하야 올러감니다. …그 끈은 나종에 긔어히 끈어지고야 말게 됩니다. 끈이 끈어질 때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요요를 작란하는 것입니다. (끊어질 때까지) 요요를 하는 동안에 세상은 암흑한 장면으로 걸음을 것고 잇는 것입니다."(1933년 4월 29일자)

하지만 1939년이 되자 '한동안 유행하던 요요'라는 표현이 신문에 등장했다(1939년 6월 4일자). 이 서양 장난감의 유행이 일단 한풀 꺾였다는 이야기다.

우하하 "나의 요요여!…/ 늘엇다 줄엇다 할, 그때마다/ 나의 심장은 어두엇다 밝엇다/ 아아 요요, 나의 연인이여!"라는 '요요의 노래'도 유행했다...우하하...^-^

 

하지만 외래 장난감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었다. 장난감엔 '외국의 정신을 너어주는 것 가튼… 큰 경향'이 있으니 주의하자는 것이다(1932년 5월 27일자).

다섯 손가락의 백수(白手·흰 손)에게만 적당한 유희물'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말기의 퇴폐 시기의 산물''경박한 유행물'이라는 표현도 썼다...우하하...^-^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기도 했던 '요요'가 일제시대 1920~1930년대 모던해 지던 시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하니 퍽이나 재미있다...우하하...^-^

 

- 2012년 10월4일 목요일 시청 앞 싸이의 공연이 있다고 하는 날...오후 5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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