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처마 앞에 늙은 국화는 한결 어여뻐서 노란 꽃잎 따다가 술잔에 띄워야지.
―이응희(李應禧·1579~1651)
節近西成天氣凉(절근서성천기량) 田家風致若爲量(전가풍치약위량) 銀唇出笱肯盤雪(은순출구긍반설) 靑殼登床可鼎湯(청각등상가정탕) 滿樹丹璾方曜日(만수단제방요일) 盈枝金粟已經霜(영지금속이경상) 簷前老菊尤堪賞(첨전로국우감상) 須把黃鬚泛玉觴(수파황수범옥상) | |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한시(2012.10.6)이다. 안대회 교수의 평이다.
수리산 아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서 평범한 시골 선비로 한평생을 살다 간 이응희의 시다. 노랗게 물든 가을 논을 바라보며 "장관이다, 장관이여!"라고 흐뭇하게 외친 농부가 떠오른다. 농부에게 그보다 장엄한 풍경은 없으리라. 가을의 풍성함은 눈길 돌리는 데마다 보인다. 은어도 게도 넉넉하게 밥상에 오르고, 사과도 감도 햇빛에 반사되어 붉게 번쩍인다. 술잔에 노란 국화꽃잎 하나 띄워 마실 멋도 부리게 만든다. 가을의 들녘은 해가 막 넘어가는 무렵의 낙조(落照)처럼 장관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들로 나가고 싶어진다.
田家風致若爲量(전가풍치약위량) ...은어, 검정게, 붉은과일, 금빛 벼이삭, 노란국화...^-^
오늘 날 은어와 검정게는 가을의 풍치로 보기 힘들겠지...^-^ | |
1579년(선조 12)∼1651년(효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수(子綏), 호는 옥담(玉潭). 부친은 여흥령 이현(李玹)이고 모친은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14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2년 후인 1594년(선조 27)에 조모상까지 당했다. 이후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업을 이어가며 학문과 예절에 정열을 다 쏟아 원근에서 그 덕망을 칭송하였다. 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자 꾀할 때 크게 상심하여 백의항소(白衣抗訴)로 간곡히 만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기도 과천 수리산 아래에 은거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식이 고명함을 알고 중용하려 했으나 거듭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선조인 안양군(安陽君)이 연산군 때 원사(寃死)를 당하면서 유언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말라고 하여 그 유훈을 따른 것이라 한다.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는데 7형제가 모두 진사에 급제하였는데, 모두 두(斗)자 항렬이라 주위에서는 칠두문장가(七斗文章家)라고 칭송하였다. 생전에 저술이 많았는데, 병자호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저서로는 《옥담유고(玉潭遺稿)》, 《옥담사집(玉潭私集)》 등이 있다. 고향에서 류순인(柳純仁)‧ 심부(沈溥)‧ 류우인(柳友仁)‧ 안홍제(安弘濟)‧ 송규(宋珪)‧ 이원득(李元得)‧ 이경일(李敬一)‧ 한덕급(韓德及)‧ 안중행(安重行) 등과 함께 시계(詩契)인 향로계(享老契)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묘는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 195번지에 있었는데, 1993년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상기리로 이장하였다.
경기도 수리산 아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선비 이응희(1579∼1651)는 ‘강아지 두 마리를 얻고(得二狗子)’란 시를 남겼다.
‘개는 무심한 동물이 아니니/닭 돼지와는 비길 수 없어라/예전에 묵은 손님을 때로 반기고/밤에 가는 사람 잘도 알고 짖는다/짐승을 잡는 재주 매우 민첩하고/염탐할 때 청력은 귀신 같아라/이웃집에서 새끼 몇 마리 주니/보살펴 기름은 응당 다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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