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14] 6·25 폐허 딛고 일어서게 한 교육의 힘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06.21 23:04
6·25전쟁의
포화는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실의 거의 절반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비바람을 가릴 지붕도 없이 판자로
벽을 친 노천교실 속에서도 교육의 맥박은 멈추지 않고 뛰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전문학교 이상의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은 국민의 1%에도 못 미쳤고, 12세 이상 국민의 78%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어떤 형태로든 교육을 받은 비율은 전 인구의 25%에 지나지 않았다. '충량(忠良)한 신민(臣民)', 즉 말 잘 듣는 노예 만들기가 식민교육의 요체였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교육이념에 따라 신분과 빈부·남녀의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기회는 민초(民草)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폈다.
1945년 광복 당시 전문학교 이상의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은 국민의 1%에도 못 미쳤고, 12세 이상 국민의 78%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어떤 형태로든 교육을 받은 비율은 전 인구의 25%에 지나지 않았다. '충량(忠良)한 신민(臣民)', 즉 말 잘 듣는 노예 만들기가 식민교육의 요체였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교육이념에 따라 신분과 빈부·남녀의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기회는 민초(民草)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폈다.
- 지붕 없는 피란학교 - 6·25전쟁 중 판자로 교실을 나눈 피난학교에서 모자로 따가운 햇볕을 가리며 수업하는 여학생들. 가족이산의 아픔과 끼니를 걱정하던 절대빈곤의 전쟁 통에도 미래에 대한 투자, 교육은 멈추지 않았다.
양적 팽창만이 아니었다. 당시 교육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밑바닥부터 뒤집는 질적인 성장을 일구어냈다. 1950년대 민주·민족교육을 통해 민초들은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을 꿈꾸는 시민으로 자라났고, 1960년 4·19혁명은 그 결과였다. 또한 당시 강조된 과학·기술교육이 가져다준 합리적·실용적 가치관은 1960년대 이후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해준 밑거름이었다.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는 동화 속 기적을 현실로 만든 오늘, 되돌아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낸 동력은 대학이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릴 만큼 뜨거웠던 우리의 교육열이었다.
1950년대 민주·민족교육을 통해 민초들은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을 꿈꾸는 시민으로 자라났고, 1960년 4·19혁명은 그 결과였다. 또한 당시 강조된 과학·기술교육이 가져다준 합리적·실용적 가치관은 1960년대 이후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해준 밑거름이었다.
- 2013년 3월8일 금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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