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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허동현의 모던타임스]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32] 온돌서 연탄 거쳐 보일러로…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수리산 가는 길에 본 연탄 6장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32] 온돌서 연탄 거쳐 보일러로…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조선일보/오피니언/사외칼럼/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11.15 23:31

산동네의 유일한 난방 대책 - 1973년 12월, 서울 산동네 주민들이 지게 등으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우리의 온돌(溫突)문화는 민족의 역사와 기원을 같이하며 오늘에까지 계승된 대(大)전통이다. 예찬을 하자면 끝도 없다. 밥을 짓다 보면 구들장이 절로 덥혀지기에 취사와 난방을 함께 해결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겨울엔 등 따습고 여름엔 시원하니 인간 친화적이다. 방 밖 아궁이에 불을 때기에 연기와 그을음이 없는 방안은 청결하기까지 하다. 특유의 좌식(坐食)문화와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白衣)민족도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1885년 미국 대리공사 포크(Foulk)의 체험담이 증언하듯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은 천국이 아니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청난 양의 짙은 연기가 도시 전체를 휩싼다. 거의 숨을 쉬지도 앞을 볼 수도 없다." 근대의 개막과 함께 전국의 인구와 도시가 늘어나면서 아궁이가 토해내는 연기만큼 산야는 민둥산이 되어갔다.

전쟁의 화마(火魔)가 산야를 불태우던 1952년 정부는 연탄 보급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완서의 수필 '50년대 서울거리'의 한 구절이 증언하듯 "부엌에서 온종일 물이 끓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불을 쓸 수 있는 연탄아궁이는 나일론 양말 못지않은 복음이었다." 그러나 재앙도 함께 왔다. 1968년 12월 28일자 조선일보는 "서울시장(市長)이 제독(除毒) 연탄 발명자에게 사례금을 걸었다"고 보도했다. 연탄 난방비율이 75%에 달한 1960년대 아궁이는 한 세기 전의 '호환·마마'보다 더 우리를 떨게 했다. 동치미 국물을 들이켜는 것 외에는 치료법이 없던 당시 해마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70만명 중 3000명이 넘는 이가 불귀(不歸)의 몸이 되고 말았다. 1969년 고압 산소장치가 나오면서 많은 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지만 1974년에도 서울에서만 연탄가스 중독자가 19만8000명에 이르렀고 그 중 850명이 사신(死神)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기름과 가스 보일러가 대중화되면서 겨울철이면 신문 사회면을 채우던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알리는 비보(悲報)는 사라져갔다. 그러나 지금도 연탄을 때는 가구가 28만이나 되며, 불청객에 중독되는 사고도 2000건에 달한다. '가난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不患貧而患不均)'는 공자 말씀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악 1885년 미국 대리공사 포크(Foulk)의 체험담... "서울은 천국이 아니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청난 양의 짙은 연기가 도시 전체를 휩싼다. 거의 숨을 쉬지도 앞을 볼 수도 없다." 근대의 개막과 함께 전국의 인구와 도시가 늘어나면서 아궁이가 토해내는 연기만큼 산야는 민둥산이 되어갔다.

전쟁의 화마(火魔)가 산야를 불태우던 1952년 정부는 연탄 보급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완서의 수필 '50년대 서울거리'의 한 구절이 증언하듯 "부엌에서 온종일 물이 끓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불을 쓸 수 있는 연탄아궁이는 나일론 양말 못지않은 복음이었다." 그러나 재앙도 함께 왔다.

 

1969년 고압 산소장치가 나오면서 많은 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지만 1974년에도 서울에서만 연탄가스 중독자가 19만8000명에 이르렀고 그 중 850명이 사신(死神)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기름과 가스 보일러가 대중화되면서 겨울철이면 신문 사회면을 채우던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알리는 비보(悲報)는 사라져갔다. 그러나 지금도 연탄을 때는 가구가 28만이나 되며, 불청객에 중독되는 사고도 2000건에 달한다.

 

'가난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不患貧而患不均)'는 공자 말씀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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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1980년대 초반 결혼한 나...연탄 갈고...연탄재 버리고...아파트에 신문지 깔아 연탄배달하여 쌓았다...ㅠㅠ...^-^

연탄불이 꺼지면 기분도 꺼(?)지는 난감한 상황에 속상해하고...번개탄을 사용해 다시 불을 살리는 쉽지 않은 일(?)을 해야 했다...ㅠㅠ...^-^

 

30년이 지난 2013년의 요즘...옛날에 비하면 집안 살림살이 일이 줄어들고 편~한 기분이다...ㅎㅎ...^-^

결혼할 때만 해도...세제가 안 좋아서인지...세탁기로 빨래를 하면 상태가 좋지않아...손빨래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ㅠㅠ...^-^

 

지금은 세탁기로 빨래하고...진공청소기와 물티슈로 집안청소를 하므로...걸레빨래 역시 별로 하지 않아 좋~다...ㅎㅎㅎ...^-^

 

옛날이여 안녕..."Bye Bye"...ㅎㅎㅎ...^-^

 

 

수리산...'두미원 식당' 1...좌측에 연탄 쌓은 곳, 우측에 연탄재 쌓은 곳이 보이네요...ㅎㅎ...^-^

 

수리산...'두미원 식당' 2...연탄 쌓은 곳 클로즈업...ㅎㅎ...^-^

 

수리산...'두미원 식당' 3...연탄재 쌓은 곳 클로즈업...^-^

 

수리산...'두미원 식당' 4...내부의 연탄난로와 연통...^-^

 

 

수리산...'두미원 식당' 5...내부의 연탄난로와 연통, 연탄집게...^-^

 

수리산...'두미원 식당' 4...내부의 연탄 쌓은 모습과 연탄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