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전쟁] 여장부 세자빈이 농사지은 땅은 1백만평
6일 방송된 JTBC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극본 정하연, 연출 노종찬) 5회에선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세자 부부가 농사 준비를 하는 장면 등이 그려졌다. 드라마에선 그냥 세자빈이 자청해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나왔으나 사실은 청나라 황실이 먼저 권했었다.
신사년(1641년) 12월 초, 역관 정명수(鄭命壽)가 심양관으로 오더니 '황제의 명'이라는 것을 전했다.
"황상(皇上)께서 말씀하시길, 나그네살이 3년이면 생업이 이루어진다는 속담도 있는데 세자께서 이곳에 오신 지 이미 5년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든 백성은 물론이고 제왕(諸王 황제의 형제와 그 자식들 중 왕의 칭호를 받은 사람들)들도 다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데 세자와 대군, 재신(宰臣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 질자(質子 볼모)등이 먹는 식량을 언제까지 우리가 계속 대주어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럼, 식량을 조선에서 가져다 먹으라는 말이냐'고 묻자 '그건 아니고 농사지을 땅을 줄 터이니 농사를 지어 먹으라는 말씀'이라 했다.
세자를 수행해 이곳에 와 있던 신료들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깜짝 놀랐다. 정명수가 돌아간 뒤 신료들은 '저들의 요구대로 우리가 여기서 농사를 지었다간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데 뜻을 모았다.
세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내주겠다는 1,000일 갈이라면 줄잡아 700명 이상은 있어야 경작이 가능한 면적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료들은 조선 담당관 역할을 하고 있던 장군 용골대(龍骨大)를 찾아가 '제발 농사를 지으라는 황명만은 거두어 주십사 아뢰어 달라'고 통사정했다. 조선 관리들의 청에 못 이겨 황제를 만나고 온 용골대는 '1,000일 갈이가 벅차다면 600일 갈이로 감해 줄 터이니 그건 경작하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하루갈이는 소를 부려 한나절 동안 갈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600일 갈이라면 조선의 셈법으론 1백만 평을 넘는 광활한 경지였다.
하지만 황명과는 상관없이 관소의 신료들은 강경했다. 청 황실에 맞설 힘도, 대안도 없으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농사짓는 것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빈궁(세자빈)은 달랐다. 농사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이미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 저들은 지난봄에도 '채소를 갈아 먹으라'며 30일 갈이 밭을 떼어주었는데 그때도 신료들은 한사코 마다했으나 저들은 황제의 명이라며 물러서지 않아 채소를 심어 먹고 있다.
그때 이미 노예시장에 나온 백성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속환(贖還 돈이나 물건 따위로 대갚음을 하고 어떤 것을 도로 찾아옴)하기 위해 조선과 청나라 간의 무역으로 돈을 모아오던 빈궁은 농사를 지으면 돈을 더 벌 수 있고 그 돈이면 더 많은 백성을 속환할 수 있다며 '내가 맡아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나섰다.
신료들은 이번에도 '고귀하신 세자빈께서 농사를 지으시겠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며 펄쩍 뛰자 빈궁이 맞받았다.
'세종대왕께서 내리신 권농교서(勸農敎書)를 잊었느냐?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의식(衣食)의 근원이며 왕정(王政)에서 가장 앞서는 일이다>라고 하시지 않으셨느냐.'
그러면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무덥지만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며 6~7월엔 장마가 지고 2~3월엔 비가 적고 건조한 게 조선과 기후 조건이 많이 다르지 않고, 만주벌판엔 모래땅이 많지만 심양과 인근 지역은 토질도 괜찮은 편이라 농사를 지어볼 만 한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입을 닫았고, 세자는 '빈궁의 뜻대로 한번 해보라'고 허락해주었다.
문제는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빈궁이 속환해주었으나 미쳐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근처에 살고 있는 백성은 70여명에 불과했다. 빈궁은 세자를 통해 용골대에게 '추수 후에 갚아줄 테니 농사경험이 많은 조선백성 100명을 우선 속환해달라'고 청해 허락을 받았다. 또 의주로 사람을 보내 농사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데려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나중에 따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빈궁은 또 드라마에서도 잠깐 나오긴 했지만 '만주족은 아무리 부잣집이라도 집안에 노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일을 한다. 아문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이라도 공직에서 물러나면 즉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한다. 조선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여기선 궁궐 앞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청나라엔 조선처럼 밥을 굶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우리가 눈으로 보아서 잘 알지 않느냐. 집에 두 해 정도 먹고 입을 저축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 취급을 한다. 그래서인지 빈부의 차도 그리 심하지 않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밥걱정은 않고 사니,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냐. 오랑케라고 비웃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런 건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곤 했다 한다.
낙안읍성 소달구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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