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의 만인보]‘거창학살’ 영화 만드는 동네 이장 감독 김재수
경향신문/오피니언/김석종 선임기자
얼핏 화려해 보여도 약육강식의 문화 전쟁터로 영화계만한 데가 없다. 한 발 삐끗했다가는 그걸로 끝장인 거다. 김재수(55)라는 영화감독이 그랬다. 한때 충무로 영화판에서 꽤나 잘나갔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클럽 버터플라이>(2001)와 <천국의 셋방>(2007)이 흥행에서는 죽을 쒔다. 예술성 짙은 강호무 소설 <화류항사>와 어우동을 여성혁명가로 재해석한 <어우동>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막판에 투자를 받지 못해 엎어졌다.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외곬 예술지상주의 혹은 까칠까칠한 성질머리는 김재수가 영화계 ‘정글’에서 튕겨져 나가는 데 한몫했을 성싶다.
2009년에는 경남 거창의 산골로 아예 짐싸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른바 ‘귀농’을 택한 거다. 삶은 잘 안 풀리고, 영화는 막막해서 결단이 필요했단다. 그렇다고 거창 귀거래에 어떤 연고나 인맥도 없었다(그는 경남 고성에서 났고, 일찍 고향을 떠나 부산과 부천에서 성장해 서울예대 영화과를 나왔다). 무작정 귀농운동본부 사이트를 뒤지며 전국을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스레 흘러든 고장일 뿐이다. 그해 봄날 출판사에서 일하며 김재수 대신 가장 노릇을 하는 아내가 동행했다. 거창 복덕방에서 한 농가를 소개받았는데, 아내가 집 주변에 만발한 기화요초에 홀딱 반한 거였다. 해발 700m, 깊은 산속에 있는 집은 조그맣지만 땅이 1900평이나 딸려 있다. 양옆으로는 계곡이 철철철 흐른다. 널찍한 뜰에 감나무, 사과나무가 가득하다.
김재수는 가족을 두고 혼자 거창으로 갔다. 그러니 유배나 다를 게 없었다. 막걸리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온갖 새들과 고라니, 너구리, 두꺼비의 친구가 됐다. 이듬해부터 주인이 도회로 떠나 묵고 있는 땅을 빌려서 고추, 감자, 벼농사를 지었다. 열무, 시금치, 쑥갓, 부추 같은 푸성귀도 키웠다.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한 아내에게 내 손으로 농사한 쌀과 푸성귀로 밥 한 상 차려주고 싶었다”는 게 김재수의 고백이다. 주말에만 거창에 오는 아내는 그런 애틋한 첫 밥상을 받아놓고 펑펑 울었다.
김재수는 귀농 4년 만에 진짜 농부가 다 됐다. 오랜만에 만나보니 얼핏 도시에서 옥죄었던 삶의 갑옷을 벗고 자연에 깊숙이 파묻힌 도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지지난해와 지난해는 고추 풍작에다 금까지 좋아서 고춧가루 500근으로 현금 1000만원을 손에 쥐었단다. 농약 한 방울 쓰지 않고 무공해로 키워서 햇빛에 널어 말리고 빻은 고춧가루다.
지금은 동네 사람들의 강권에 못이겨 신원면 청수리 수동(대안)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이건 ‘외방인’ 김재수가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든든히 뿌리내렸다는 증표다. 김재수가 술자리에서 ‘동네방송’을 그대로 실연하는데, 정말 실감났다. “아아아, 주민 여러분! 이장입니다. 면사무소에 못자리용 상토를 요청해야 하니 오늘 저녁 드시고 다들 마을회관에 모이시기 바랍니다.” 이장님답게 하는 말마다 ‘거창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거창은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이 한 방울도 없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첫물만 먹고사는 곳이지. 거창만큼 청정하고 아름다운 산골은 달리 없을 걸. 그러니 사과나 딸기맛이 꿀이야, 꿀!”
그런 김재수가 거창에 귀농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와 딱 맞닥뜨린 건 우연의 운명이라고밖에 설명이 안된다. 저 유명한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의 현장이 바로 그가 터잡은 대안마을인 거였다.
다 알다시피 1951년 국군이 거창 신원면 지역 양민 700여명을 모아놓고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부역 혐의를 씌워 마을 뒤 산골짜기(박산골)에서 학살한 사건 말이다(거창 사람들은 ‘신원사건’이라고 부른다). 당시 사살한 시신에 기름을 뿌려 불태우는 동안 까마귀떼가 하늘을 뒤덮고, 핏물이 내를 이루었다고 한다.
4·19 후 유족들이 골짜기에 방치된 유골을 수습해 한자리에 묻고 위령비를 세웠지만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위령비를 땅에 파묻고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금했다. 유족들은 연좌제로 묶어 탄압했다. 1988년에야 희생자 묘역을 단장하고 위령비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6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재수는 지역민의 깊은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서라도 ‘배운 도둑질’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에 빠졌다. 틈날 때마다 학살 현장을 찾아다니고, 자료를 조사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만났다. “유족들이 연좌제와 따돌림, 가위눌림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는데도 여태까지 이 사건의 불편한 진실은 미제(未濟)로 남아있어.”
김재수는 신원사건이 영화에 딱맞는 스토리의 보고라고 했다. 다행히 거창군에서 영화작업을 지원해주기로 했으니,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처음으로 부산고법이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 배상을 판결해 영화작업의 가치는 더 커졌다. 김재수는 집 앞에 ‘꿈꿀 권리’(가스통 바슐라르의 책 제목이자 그가 1980년대 중반 대학로에서 운영했던 카페 이름이다)라는 문패를 달고 영화사 등록을 했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섞은 독립영화로 가제를 <청야>로 정해두고 있다. 사건 당시 국군의 작전명인 ‘견벽청야’(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의 벽을 견고히 하기 위해 들을 초토화시킨다)에서 따왔다. 군청 지원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머지는 충무로에서 맺은 인맥을 동원하겠단다. 김재수가 이번에 서울 나들이를 한 것도 촬영진과 연기자들에게 ‘자원봉사’를 부탁하기 위함이다.
김재수가 쓴 시나리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사격 명령을 받은 국군 소년병이 한 소녀를 살려줬다. 노인이 된 소년병이 손녀와 함께 거창을 찾아간다. 손녀는 그 소녀의 손자를 만난다. 할머니와 청년은 연좌제 때문에 고달픈 인생을 살았다. 이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휴머니티 물씬 풍기는 영화를 만들겠단다. 곧 촬영을 시작해 8월 중 완성할 예정이다. 조·단역 배우들은 경남도와 거창에서 공모로 뽑기로 했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게 있다.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으로 요즘 아주 각광받는다. 문화와 관광이 지역의 ‘밥벌이’라고 떠든 지도 오래다. 그런 점에서 이 귀농 예술가의 영화작업과 스토리텔링, 사건 현장을 거창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에 맞춤할 거다. 김재수에게도 귀농이 새로운 디딤돌이 된 셈이다. 삶이란 드라마는 때론 그렇게도 쓰여진다. 동네 이장 영화감독 김재수의 인생 2모작에 분전을 기대한다.
분당 중앙공원 수내정 주변 풍경 1
분당 중앙공원 수내정 ...현판
분당 중앙공원 수내정 주변풍경 2
분당 중앙공원 수내정 주변풍경 3
분당 중앙공원 이경류 묘갈 비각
메디피아소공원(?)...복자기나무 1
메디피아소공원(?)...복자기나무 2...새순이 올라와요...ㅎㅎ...^-^
메디피아소공원(?)...복자기나무 3...왼쪽에 보이는 나무는 느릎나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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