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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최보식이 만난 사람] 국내에서 생물책(43권) 가장 많이 쓴… ‘달팽이 박사’ 권오길 명예교수/달팽이 5장

[최보식이 만난 사람] 국내에서 생물책(43권) 가장 많이 쓴… ‘달팽이 박사’ 권오길 명예교수

조선일보/사회 종합/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 2013.05.20 03:03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 위해 살아… 결혼 않는 젊은이들 안타까울 뿐”

“꽃술은 일종의 꽃 성기 수술은 열 개, 그 가운데 암술 하나가 툭 튀어나와”

밤송이의 가시는 3000개 솔방울의 비늘은 100여개 민들레꽃 홀씨는 123개

 

권오길(73) 강원대 명예교수에게 전화를 거니, "인터뷰할 거리가 없어요. 책은 이것저것 냈는데 내 마음에 맞는 책을 못 냈어요"라고 반응했다. 잠자코 기다리니 얘기를 계속하다가 "정 그러면 한번 해봅시다. 내 작업실은 부엉이집 오소리굴 같아요. 청소를 안 해도 괜찮다고 하면 그리로 오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생물(生物)과 관련된 글을 가장 많이 썼다. 책만 43권을 냈다. 고등학교에서 15년 교편을 잡다가 늦게 교수가 된 뒤로 일 년에 꼬박꼬박 두 권씩 썼다고 한다. 이번에 출판된 '생명교향곡'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요새는 밭 갈고 씨 뿌리기에 눈코 뜰 새 없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나에겐 버거워 한바탕 쏘대고 나면 허리가 내게 아니다. 그러하나 푸성귀도 뜯어먹고, 몸 운동하며, 때론 글감을 줍고 하니 일거삼득이다. 몸이 예전만 못해 걱정이지만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쓸 것이다.'

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겠다는 대목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춘천시 후평동에 있는 15평짜리 낡은 주공아파트로 찾아가니 과연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2005년 교수 퇴임하면서 작업실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커피 마시겠소?" 하고 물었을 때, 이런 공간에서도 커피는 끓여 마시는구나 싶었는데, 과연 캔커피를 내밀었다.


	권오길 명예교수
권오길 명예교수는“거머리·지렁이·달팽이 등 하등동물들은 자웅동체인데도 반드시 다른 놈과 짝짓기를 한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책을 왜 끊임없이 씁니까?

"내가 생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쓴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나는 내 재미로 쓸 뿐이지. 쓰는 게 재미가 있는데 어떻게 해요. 연말에도 책 두 권이 나올 거요."

―인세(印稅)도 많이 들어오겠군요.

"밥벌이야 되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결국은 내가 미친놈이 된 거지.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하루를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데, 나는 바빠 죽겠어. 아침에 여기로 와서 공부하고 오후 3시 반이면 밭으로 나가요. 손바닥만 한 밭이 수도장(修道場)이야."

―생물을 직접 다 관찰하고는 책을 씁니까?

"어떻게 다 관찰해. 구글, 위키피디아 같은 인터넷 포털에서 자료를 찾지."

―이번 책에서 보니, '오징어 다리에 붙은 빨판들을 돋보기 들이대고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며 살폈다. 큰 것은 지름이 7㎜ 됐다. 빨판 끝자락에 뺑 둘러 난 낚시미늘 꼴의 갈고리가 적게는 17개, 많게는 26개나 촘촘히 박혀있었다'고 했더군요. 이 수치가 모든 오징어에게 적용됩니까?

"그날 내가 본 마른오징어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숫자가 표준이 아니야. 우리 얼굴이 다르듯이, 생물은 저마다 다 다르거든. 공식이 없어. 그러니 적당히 얘기해도 맞는 거야(웃음)."

―표준도 아닌데 그걸 왜 다 세어봤습니까?

"궁금했거든. 글도 호기심이 있어야 쓰잖아요.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을 하는 데 선입견을 가지면 안 돼요. 달걀을 세울 수 있소?"

―콜럼버스는 밑동을 깨고 세웠다면서요.

"실제로 달걀은 그냥 세울 수가 있어요. 집에 가서 해봐요. 유리판 위에도 섭니다. 썩은 달걀은 무게중심이 아래로 가니까 더 잘 서지."

귀가해서 그의 말대로 해 봤으나 나는 달걀을 세울 수 없었다.

"(필자 지칭해) 50평생에 달걀도 못 세워 보다니. 선입견은 도전 정신을 막아버려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말고, 해봐야 되는 거요. 오징어 다리에는 빨판이 있겠거니로 끝내지 말고, 빨판이 몇 개지? 어떻게 생겼지? 이런 호기심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거요."

―오징어 다리라고 했습니까? 서양에서는 오징어 팔(arm)이라고 한다면서요?

"문화적 차이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다리로 도망가는 오징어를 봤고, 서양 사람들은 팔로 움켜쥐는 모습을 본 걸까."

오징어와 꼴뚜기 다리는 10개, 문어와 낙지, 주꾸미 다리는 8개다.

―밤송이를 주워 밤 가시를 헤아려보니 3000개, 솔방울 하나에는 비늘이 100여개가 달렸더라는 구절도 나오더군요. 이런 건 생물 도감에도 안 나올 텐데.

"그럼요. 밤 가시를 하나하나 떼 내 헤아린다고 혼났어. 이런 짓을 수도 없이 했어요. 날 미친놈이라고 하지 말아요. 내 입장에서는 발견이니까. 가령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잖아. 민들레꽃에 홀씨가 몇 개 들어 있겠소?"

―그것도 세어봤습니까?

"하모(그럼). 평균 123개."

―평균이라면 여러 개를 세어봤다는 뜻인데.

"여남은 개를 세어봐야 평균이 나오지. 개구리의 앞다리 발가락이 몇 개일 것 같소?"

인터뷰하러 와서 우리는 생물 퀴즈를 즐기고 있었다.

―인간의 손가락과 다를 바 없으니 다섯 개고, 물갈퀴가 있겠지요.

"앞 발가락은 네 개, 뒤는 다섯 개. 물갈퀴는 뒤에만 있고 앞에는 없어요. 파리 날개가 몇 개인 줄 아시오? 파리도 곤충이오."

―곤충 날개가 몇장이지요?

"곤충의 몸통은 세 마디, 다리는 세 쌍, 날개는 두 쌍이지요."

―파리가 곤충이라면, 곤충의 규칙대로….

"그런데 아니라는 거요. 파리 날개는 두 장, 모기도 두 장이오. 뒷날개가 퇴화하고, 그 부분에 하얀 딱지가 있어요. 쓸모없는 것 같지만 평형을 조절해줘요. 하얀 딱지를 바늘로 콕 찌르면 못 날아가요."


	권오길 명예교수(우측)

―이번 책에서 "모기는 보통 때는 꿀물이나 식물의 진액을 먹고 산다. 하지만 짝짓기를 한 암놈은 '흡혈귀'가 된다. 온혈동물(조류와 포유류)의 피에 든 단백질이나 철분이 알의 성숙과 발생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암놈은 1~2주를 살고 그동안에 알을 3~7회 번갈아 낳으니 모두 합치면 한 마리가 낳는 알이 700개가 넘는다"고 되어 있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짝짓기 때도 아니고, 심지어 겨울철에도 무는 모기는 뭡니까?

"돋보기로 수놈의 주둥이를 보면 확실히 못 찔러. 무는 놈은 암놈이 맞아요. 그런데 예리한 질문이오. 암놈이 피를 빠는 것은 아무래도 짝짓기와는 무관한 것 같아. 지금까지 상식이 잘못된 것 같아."

―지금까지 본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요?

"아무래도 달팽이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 110종을 모두 찾아냈으까요. 크기가 2㎜부터 시작해 아기 주먹만 한 것도 있어요. 달팽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고 대한생물도감 전집에서 '달팽이' 편을 내가 만들었어요. 내 별명도 '달팽이 박사'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달팽이를 잡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네."

―달팽이가 식인 상어도 아닌데 어쩌다가?

"1970년대 말 거문도에 들어갔어요. 낙엽과 돌멩이 틈새에서 달팽이를 찾고 있는데, 섬뜩한 느낌이 와요. 예비군들이 '너 간첩이지' 하면서 둘러싼 거야. 그 얼마 전에 거문도에서 고정간첩 사건이 있었다는 거요. 또 한번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 안 세워주고 그냥 달려요. 파출소 앞에 세우고는 안내양이 경찰과 함께 올라타서 나를 지목하는 거야. 수염을 안 깎아 터부룩하다고 간첩으로 보였다는 거야. 그때는 바보가 많았어."

―달팽이를 연구하면서 무얼 배웠나요?

"이놈들이 굼뜨지만 꾸준하거든. '슬로 앤드 스테디', 이게 괴테의 좌우명이오."

그는 경남 산청의 궁벽한 마을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못 갔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다녔다. 이듬해 20리 떨어진 마을에 중학교가 생겨 다닐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고등학교는 외가와 고모 집에 기식하면서도 다녔다. 교과목 중에서 생물은 3년 동안 모두 '수(秀)'였다. 그래서 학비가 거의 없다시피한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거머리·지렁이·달팽이 등 하등동물은 자웅동체(난소와 정소를 다 가짐)인데도 반드시 다른 놈과 짝짓기를 해 정자를 교환한다면서요?

"자기 몸 안에 다 갖춰져 있는데도 자가 수정을 하지 않아요. 참 묘한 이치요. 이게 우생학이오. 근친상간이란 좋지 못한 인자들의 조합이거든. 저기 창 밖을 보세요. 철쭉이 한창 피어 있지요. 저 꽃 냄새는 음액이야. 그 향기가 좋다고 사람들은 냄새 맡지. 꽃술은 일종의 꽃 성기지요. 수술은 열 개요. 그 가운데 암술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죠."

―외양으로는 가운데 툭 튀어나온 게 수술인 줄 알았는데.

"어허, 원래 수술이 많은 거요. 린네(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는 이를 두고 '여자 하나를 열 남자가 서로 꼬드기고 있다'고 했지. 그런데 암술이 왜 수술보다 더 길고 툭 튀어나올까? 수술과 나란히 있으면 꽃가루받이가 쉬울 텐데. 그건 옆 수술의 꽃가루를 안 받겠다는 거지. 꽃들은 자체적으로 수분(受粉·꽃가루받이)을 해도 수정이 되지 않아요."

―같은 줄기나 가지에 여러 꽃이 달릴 수 있는데, 그 꽃들끼리는 어떤가요?

"이 질문에는 100% 자신이 없는데, 원칙적으로는 수정이 안 돼요. 그래서 과수를 심어도 하나만 심지 말고 여러 그루를 심으라고 하는 거요."

―8촌(寸) 안의 동성동본 결혼을 금하는 이유와도 관련 있군요. 또 같은 성향, 같은 대학, 같은 지역끼리만 모이는 순일한 조직은 생물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게 적용될 수 있지요. 사람도 생물이니까요."

―이번 책에서 보니, 반딧불이는 대부분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면 이미 입이 완전히 퇴화해버려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서요.

"애벌레 시절에 많이 먹어서 양분을 저장해놓아요. 성충이 되면 짝짓기와 알 낳기에 바쁜데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곤충은 대부분 짝짓기가 끝나면 생(生)도 끝나요. 곤충은 지구 생물종의 75%를 차지해요."

―생물의 공통점은요?

"바깥을 보시오. 저 나무가 왜 오래 살아있겠소? 동물과 식물, 세균, 곰팡이까지도 다르지 않아요.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살아있는 거요. 그게 존재 이유요. 그러니 결혼하지 않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지. 생물로서 타고난 운명에 반(反)하는 거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이겠지요. 생물 중에서 인간 말고 자살하는 생물을 봤습니까?

"어허, 칼럼 쓰는 분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다니. 종족 보존이란 결국 자신의 영생(永生)과 비슷한 거요. 자신은 사라져도 자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이어지는 거지. 나의 주인인 세포 속 DNA가 그대로 전수되니까요."

그는 2녀 1남을 두고 있다. 모두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완벽하게 그의 존재가 장차 이어질 것이다.

여름 같은 봄 날씨였다. 만물이 윤을 발하며 화육생성(化育生成)하는 게 확연히 보였다. 아,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겠지.



선임기자

 

권오길(73) 강원대 명예교수...그는 국내에서 생물(生物)과 관련된 글을 가장 많이 썼다. 책만 43권을 냈다. 고등학교에서 15년 교편을 잡다가 늦게 교수가 된 뒤로 일 년에 꼬박꼬박 두 권씩 썼다고 한다..."내가 생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쓴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나는 내 재미로 쓸 뿐이지. 쓰는 게 재미가 있는데 어떻게 해요. 연말에도 책 두 권이 나올 거요."...^-^

 

'마른 오징어 다리에 붙은 빨판들을 돋보기 들이대고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며 살폈다. 큰 것은 지름이 7㎜ 됐다. 빨판 끝자락에 뺑 둘러 난 낚시미늘 꼴의 갈고리가 적게는 17개, 많게는 26개나 촘촘히 박혀있었다'

―밤송이를 주워 밤 가시를 헤아려보니 3000개, 솔방울 하나에는 비늘이 100여개...민들레꽃에 홀씨 평균 123개.

 

"아무래도 달팽이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 110종을 모두 찾아냈으까요. 크기가 2㎜부터 시작해 아기 주먹만 한 것도 있어요. 달팽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고 대한생물도감 전집에서 '달팽이' 편을 내가 만들었어요. 내 별명도 '달팽이 박사'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달팽이를 잡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네."

"이놈들이 굼뜨지만 꾸준하거든. '슬로 앤드 스테디', 이게 괴테의 좌우명이오."

"궁금했거든. 글도 호기심이 있어야 쓰잖아요.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을 하는 데 선입견을 가지면 안 돼요.

 

우하하마른오징어 다리의 발판에 붙은 갈고리가 17~26개...밤송이 가시가 3,000개...솔방울 비늘이 100 여개...민들레꽃의 홀씨가 123개...일일이 세어 보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특히 밤송이 가시 3,000개가 제~일 웃긴다...ㅎㅎ...^-^

 

사람은 호기심을 가진...놀이(?)하는 존재로 태어나...그 욕구(?)를 해결하면서...재미와 희열과 성취를 느끼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ㅎㅎㅎ...^-^

그러다가 만인에게 영향을 주는 에디슨이나 스티브잡스 같은 천재도 나왔겠지...ㅎㅎ...^-^   

 

- 2013년 5월21일 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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