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중국의 대북정책, 근본적 변화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3.08.03 00:27 / 수정 2013.08.03 00:27
미국 CSIS 고문
따라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다음에 중국의 대북 자세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이 같은 질문을 중국 학자와 관료, 그리고 워싱턴과 동아시아 곳곳의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들에게 던졌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지도부와 국민은 김정은 체제에 신물을 낸다. 전임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도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을 비롯한 현 지도부는 김정은을 크게 경멸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또한 김정은이 오만하다며 분노하는 자국 네티즌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 국민이 분노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중국의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둘째, 중국 지도부는 박 대통령과 가까워지고 싶어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구사능력과 겸손하고도 진지한 태도는 중국 대중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서울이 이명박정부 때와 같은 강경노선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한·미 안보동맹을 약화하거나, 적어도 균형을 취하게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이 같은 정서적·전략적 이유 때문에 베이징은 서울에 호의를 표시하느라 평양과 멀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 주석은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에도 김정은을 초청하려는 징후가 전혀 없다.
넷째, 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팽배해 있다. 김정일이 군을 껴안은 것과 달리 김정은은 당을 껴안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정은이 핵개발을 이른 시일 내에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관료나 전문가는 거의 없지만, 인내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많다. 결국 평양은 덩샤오핑(鄧小平)이 했던 방식의 경제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워싱턴의 주류와는 다른 견해다. 워싱턴에선 북한의 핵개발이 개방의 정치적 위험을 피하면서 체제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며, 한국과 동북아의 인접 국가들에 강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다섯째, 베이징의 대북 외교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이행함으로써 자기 몫을 다했으니 미국과 한국·일본에는 6자회담에 아무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할 부담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한·미·일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데다 과거의 약속을 위반했기 때문에 평양이 핵실험 중단 선언같이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6자회담을 5+1회담 형태로 만들어 평양에 더 큰 외교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제안에도 계속 반대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기꺼이 논의하고 싶어 하지만, 중국 정부는 서울이나 워싱턴과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평양을 도발하는 것으로 보인다거나 한·미의 (북한)체제변화 전략을 조장하는 것으로 평양에 비칠 가능성이 있는 회담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견해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또한 중국 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토론이 늘어났다. 중국의 입장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근본 전략이 바뀌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부소장
(요점)
요약하자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견해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또한 중국 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토론이 늘어났다. 중국의 입장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근본 전략이 바뀌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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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1세기의 난생설화
[중앙일보] 입력 2013.07.29 00:09 / 수정 2013.07.29 10:16
법무법인 충정 대표
북한 헌법 서문의 18개 문장 중 11개 문장의 주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다. 수령의 헌법상 호칭은 ‘민족의 태양’을 비롯해 천재·령장 등 10여 개에 이른다. 나아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위대한 수령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신다”는 다짐까지 담고 있다. 종교적 신앙고백에 가까운 이 다짐이 과연 한 나라의 헌법적 선언인지, 어느 민족 시조의 건국신화인지 도통 구별이 안 된다. 하기야 ‘단군의 자손’ 대신에 ‘김일성 민족’을 자처하는 그들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철의 장막을 둘러치고 우상처럼 군림했던 스탈린 시절의 소련 헌법에도 ‘스탈린 헌법’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발꿈치를 딱 붙이고 오른팔을 쭉 내뻗으며 ‘히틀러 만세’를 외쳐야 했던 나치 시대에도 히틀러의 호칭은 단지 지도자에 불과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제3제국의 총통도 ‘게르만 민족의 태양’까지는 차마 넘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에는 어떤 개인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전문(前文)의 주어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국민’일 뿐이다.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를 가지는 우리 체제보다 수령과 령도자의 ‘최고 존엄’을 높이 받드는 북한 체제에 더 솔깃해 있는 남쪽의 어떤 운동가들은 위대한 수령이 축지법과 둔갑술에 능하고 솔방울로 폭탄을, 모래알로 쌀을 만들었다는 공상적 영웅담마저도 ‘사실의 전설적 전환’이라는 논리로 합리화하려 든다. 논리 전개야 저들의 자유이겠지만, 이것은 무슨 이념이나 신조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성과 양심의 문제일 따름이다.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로 인근 소학교의 학생 등 백수십 명이 희생된 직후 북한 중앙통신은 이런 보도를 냈다. “교사 ○씨는 학교 건물이 붕괴되고 불이 나자 3층 교실에 있던 수령의 초상화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제자 7명을 구해내고 자신은 숨졌다. 교사 △씨도 초상화를 품에 안은 채 사망했다. 주민들은 가족의 생사 여부를 알아보기에 앞서 가정에 있는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었다.” 아아, 저 머나먼 별들을 왕래하며 우주에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첨단 과학 시대에 이토록 가슴 저미는(?) 초현실적 충절(忠節)의 세계가 있다니….
가족이나 어린 제자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그 초상화 속 어버이 수령은 육친(肉親)의 부모보다 더 정성껏 받들어야 할 신성불가침의 독존(獨尊)일 터이다. 독재와 독선에는 비판이 따르지만 독존에는 어떤 비판도 불가능하다. 오직 숭배와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공산주의의 실패를 자인하듯 북한 헌법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헌법정신으로 명기하면서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 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비핵화를 수령의 유훈(遺訓)으로 받든다는 세습정권이 드러내 놓고 핵무장을 선언한 셈인데, 헌법에 핵 보유를 명시한 나라가 달리 또 있는지 모르겠다.
자주와 주체를 외치는 북한의 선군체제는 대한민국의 어느 대통령조차 그 앞에 찾아가 “남측의 어떤 정부도…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감복(?)했다지만, 중국과 한국은 물론 철천지 원수 미국에까지 손을 벌리는 북의 현실은 자주와 주체의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위대한 수령은 민족의 태양’이라는 전무후무한 헌법 문구에 따라 수령의 생일은 북한 최대의 국경일인 태양절로 등극했다. 태양처럼 둥글고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세웠다는 고구려의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도 따르지 못할 아득한 초인(超人)의 성탄절이다. 아무리 21세기라지만, 나는 왜 축지법이나 둔갑술 따위에 어울릴 듯한 건국 시조의 난생설화(卵生說話)가 또 하나 나오지 않는지 늘 궁금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5년, 헌정사(憲政史)의 갈피마다 선명히 배어 있는 우리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 그 치열한 자유민주의 헌법정신을 세상에 둘도 없는 북한 헌법을 통해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요점)
북한 헌법 서문의 18개 문장 중 11개 문장의 주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다. 수령의 헌법상 호칭은 ‘민족의 태양’을 비롯해 천재·령장 등 10여 개에 이른다. 나아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위대한 수령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신다”는 다짐까지 담고 있다. 종교적 신앙고백에 가까운 이 다짐이 과연 한 나라의 헌법적 선언인지, 어느 민족 시조의 건국신화인지 도통 구별이 안 된다. 하기야 ‘단군의 자손’ 대신에 ‘김일성 민족’을 자처하는 그들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공산주의의 실패를 자인하듯 북한 헌법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헌법정신으로 명기하면서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 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비핵화를 수령의 유훈(遺訓)으로 받든다는 세습정권이 드러내 놓고 핵무장을 선언한 셈인데, 헌법에 핵 보유를 명시한 나라가 달리 또 있는지 모르겠다.
‘위대한 수령은 민족의 태양’이라는 전무후무한 헌법 문구에 따라 수령의 생일은 북한 최대의 국경일인 태양절로 등극했다. 태양처럼 둥글고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세웠다는 고구려의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도 따르지 못할 아득한 초인(超人)의 성탄절이다. 아무리 21세기라지만, 나는 왜 축지법이나 둔갑술 따위에 어울릴 듯한 건국 시조의 난생설화(卵生說話)가 또 하나 나오지 않는지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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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일본 지식인들의 어떤 착각
[중앙일보] 입력 2013.07.22 00:28 / 수정 2013.07.22 00:28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얼마 전 필자는 도쿄에서 일본의 지인들과 함께 한·일관계가 이처럼 악화된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일본 측 인사들의 견해는 사뭇 예상과 달랐다. 영토나 역사 문제는 대외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을 뿐 한·일관계가 나빠진 진짜 이유는 한국 정부의 ‘중국 기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중이 샘이 나 그러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이들은 스즈오키 다카부미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이 지난 2월 펴낸 『중국에 맞서는 일본, 복종하는 한국』이라는 책 얘기를 꺼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책이니 한번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서울 특파원을 지낸 지한파 스즈오키 위원이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에 게재한 칼럼과 대담을 엮어 만든 이 책은 필자의 눈에 세 가지 측면에서 자극적이었다. 첫째는 중국의 부상 이후 경제와 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한국이 중국을 추종하고 일본을 비하하는 종중비일(從中卑日)’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과 유보한 군사비밀보호협정을 중국과는 체결하려 하고, 일본과 중단한 통화스와프협정을 중국과는 확대·연장하는가 하면, 일본을 제치고 중국과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로 그는 한국이 당분간은 ‘양다리 외교’로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를 저울질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떠나 중국을 추종(離美從中)’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른바 ‘한·중동맹’이 한국에는 ‘미국과는 안보를, 중국과는 경제를’이라는 이원적 모순관계를 해소하고, 북한 핵으로부터 보호막을 구축하는 동시에 일본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마찰을 애써 말리는 미국보다는 자신들을 대신해 일본과 싸워줄 수 있는 중국이 한국에 훨씬 매력적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끝으로 스즈오키 위원은 일본의 보수와 진보 모두에 “한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권고한다. 먼저 보수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냉전기 때처럼 한국이 일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진보 역시 ‘아무리 상호 교류와 이해가 깊어져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본은 한국의 이러한 친중 행보를 염두에 두고 미래 동아시아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중국경사론’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건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시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사이의 돈독했던 유대를 강조하며, 박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기시의 전폭적 지원 때문 아니냐고 되묻는 대목이 그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과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누구보다도 협력적 행보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측 인사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 역시 한·일관계를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자신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한국의 외교정책을 탓하는 이들의 주장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중국이 G2 라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일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고, 한국 정부 역시 이러한 인식하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간과하고 ‘중국경사론’으로 매도하는 것은 한국을 중국에 더 기울게 하고, 일본을 고립시키게 될 섣부른 지정학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기시 유산론’만 해도 그렇다. 일본 측 인사들이 이러한 믿음을 공공연히 들고 나온다면 이는 한국의 국내 정서상 박근혜 대통령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기제가 될 수 있다. 박정희-기시 사이의 유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오히려 아베 총리가 영토 문제와 과거사에 대해 과감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주장이 일본인 다수가 공유하는 ‘혼네(本音)’라면 어찌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시계 제로다. 우리도 노력해야겠지만 일본 지식인들 역시 냉철한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요점)
‘중국경사론’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건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시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사이의 돈독했던 유대를 강조하며, 박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기시의 전폭적 지원 때문 아니냐고 되묻는 대목이 그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과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누구보다도 협력적 행보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일본 측 인사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 역시 한·일관계를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자신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한국의 외교정책을 탓하는 이들의 주장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중국이 G2 라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일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고, 한국 정부 역시 이러한 인식하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간과하고 ‘중국경사론’으로 매도하는 것은 한국을 중국에 더 기울게 하고, 일본을 고립시키게 될 섣부른 지정학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8월4일 일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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