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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성탄으로 참된 믿음을 일으키시고 완성하셨으니, 저희를 인류 구원의 샘이신 성자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드님을 통하여 세상에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하느님의 진리가 이처럼 세상에 다 드러난 만큼 지금이 마지막 때이다. 그러니 이제 그리스도의 적들이 보여 주는 거짓에 홀리지 않고 진리 안에서 친교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제1독서).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 세상에 생명을 주신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말씀이신 그분을 받아들이는 이는 은총에 은총을 받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둠 속에 머물게 된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8-21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지난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올 한 해 동안 이 『매일미사』의 ‘오늘의 묵상’을 쓰면서 무엇보다도 ‘말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교우분들에게서 격려와 충고의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글을 읽고 새롭게 깨우쳤다는 이야기,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꼈다는 이야기 등을 들을 때에는 보람이 컸습니다. 쓴소리를 들을 때에는 저의 부족함을 다시 깨닫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모자라는 점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알게 모르게 많은 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말이 이 정도일진대 하느님의 말씀은 어떻겠습니까?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곧 말씀이 사물이 되고,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에 정성과 사랑을 담으시기에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힘이 얼마나 크고, 하느님께서 그 말씀에 얼마나 애틋한 정성을 담으시는지는 오늘 복음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말씀이 단지 사물이나 사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 사십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거부한다면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서울 중림동 카톨릭출판사...피에타상

 


 

2013-12-31 오전 7:54:26추천수1반대수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and we saw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Father’s only-begotten Son,
full of grace and truth.

(Jn.1,14)

 

 

제1독서 1요한 2,18-21
복음 요한 1,1-18

 

12월 31일입니다. 즐거운 일도 또 슬펐던 일도 많았던 다사다난했던 2013년의 마지막 날에 드디어 도착했네요. 2013년의 마지막 날이라 해도, 다른 하루와 다를 바가 전혀 없는데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잘 살아야 할 날인 것처럼 생각되네요. 어쩌면 매일 매일의 삶을 이러한 식으로 특별한 의미를 붙이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소홀히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이 삶을 보다 더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잘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정말로 특별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날에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특별한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2013년을 되돌아보니, 이 특별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그들과 특별한 날도 만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려고 했고, 나와 관계된 일만이 특별한 날이 되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떤 책에서 읽은 글이 너무 많이 가슴에 와 닿아서 이렇게 소개해봅니다.

“여자와 남자도 똑같은 권리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실,
늙은이도 젊은이도 똑같은 권리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실,
어른도 아이와 비슷한 권리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진실,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위의 글처럼, 사람은 모두 똑같은 권리와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왜 판단하고 단죄하려고 할까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특별한 날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을 마무리하는 오늘, 복음은 ‘한 처음에’라는 말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의 시작을 전해 줍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 처음에 우리 인간들을 위해 가지셨던 뜻을 다시금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다르다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닌, 원수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 사랑을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사람들과 특별한 날들을 멋지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13년을 이제 아쉽지만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이라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14년이라는 새로운 해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2014년에는 더 이상 미워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사랑하는 아주 특별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노력의 부산물이다(폴 파머).


갈릴래아 호수에서 찍은 일몰사진. 2013년도도 이렇게 지네요.

 

 
정리하지 못하는 것들....

어제 옷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많은 바지가 옷장에 걸려 있는데, 지금 현재 입을 수 있는 바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지가 제 몸에 비해 너무 작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허리 사이즈는 28인치. 신부가 되어 얼마 못가서 30인치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에 충분히 맞았던 옷들이 이제는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전의 옷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체중조절하면 다시 예전의 옷들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렇지요.

그런데 어제 옷장을 보면서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 싶습니다. 10년 넘게 들고 다니면서 옷장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옷에 맞추면 최근에 구입한 옷을 입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니 옷만이 아닙니다. 내 마음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아쉬움 속에 살고 있습니까? 과거에 연연하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인 것이지요.

2013년의 마지막 날, 과감하게 정리해야겠습니다. 특히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온갖 미련들을 말이지요.....

 

부처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말씀이 단지 사물이나 사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 사십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정말로 특별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날에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특별한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2013년을 되돌아보니, 이 특별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그들과 특별한 날도 만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려고 했고, 나와 관계된 일만이 특별한 날이 되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말씀은 하느님이십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이신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자 빛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말씀공부가 우리를 생명과 빛 충만한 내적공간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오늘 하루 사랑과 나눔의 출납부를 적어 보면 좋겠습니다. 미움과 욕심의 출납부도 적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희생, 나눔, 봉사, 양보, 사랑, 친절은 수입 항목에 적으면 어떨까요?

미움, 시기, 질투, 욕심, 분노, 이기심은 지출 항목에 적어도 좋겠죠?

나의 신앙의 출납부는 수입보다 지출은 많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오늘 하루 주님보시기에 좋은 일들을 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미성숙으로 인해 생긴 부산물들을 모두 신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더불어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지니고 왔던 모든 근심걱정, 불평거리들, 실패의 쓰린 기억들, 뒤집어썼던 재들을 송두리째 당신 앞에 내려놓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한해를 마무리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한해의 마지막 날 우리가 어떠해도 상관없이 우리 존재 자체로 기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갖은 우리의 죄와 상처와 방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머리 위에 빛나는 화관을 씌워주시기 원하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2013년 12월31일 화요일...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