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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4년 1월 2일 목요일[(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14년 1월 2일 목요일[(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오늘날의 터키 카파도캬) 체사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조모, 누이 마크리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세바스테아의 베드로 주교가 모두 성인일 만큼 영광스러운 가문의 출신이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특출하였다. 370년 무렵 체사레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따르고 있다. 379년 무렵 선종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 역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학문과 웅변이 뛰어났으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90년 무렵 선종하였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주교의 삶과 가르침으로 교회를 빛내셨으니,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배우고 사랑으로 충실히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듣고 간직하여 그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아버지 안에 머무를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은 바로 아버지와 아드님 안에 머무는 데에 존재한다(제1독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누구인지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는 자신의 신원을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밝힌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의 제1독서는 영원한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자 프롬의 유명한 구분을 빌리자면, 자신에게 그저 붙어 있는 것인 ‘소유’에 매여 있는 대신에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깨닫는 체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묘한 것은, 이러한 본연의 존재 경험은 오만과 허영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내면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조금의 꾸밈도 없이 표현하고 감사하는 모범을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발견합니다. 회개의 세례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은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라는 신원을 철저하게 깨쳤습니다. 자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직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이러한 겸손은 그저 몸에 밴 습관적인 공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요즘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존감’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열렬히 추구하는 갈망이 그리스도를 만나 온전히 결실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체험한 사람의 겸허한 자세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는 증거가 됩니다.     

 

분당 요한성당 내부 벽화

 

 


2014-01-02 오전 8:24:20추천수7반대수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Isaiah the prophet said.
(Jn.1,23)
 
 
제1독서 1요한 2,22-28
복음 요한 1,19-28
 
며칠 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진료를 다 마친 뒤에 점심식사를 위해 한 중국식당에 들어갔지요. 그리고 값비싼 코스 정식으로 주문을 했습니다. 고급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맞춰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는데 참 맛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해서 “와~ 맛있다. 참 맛있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지요. 그 순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제 주위에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어떤 음식을 먹든 항상 ‘맛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모습이 보기에 좋았나 봅니다. 하긴 음식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 역시 “맛있다”라는 말을 쓰면서 이 모습을 닮아간다는 것이지요.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은 이렇게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좋고 긍정적인 것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나쁘고 부정적인 것들도 남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전달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 다른 질문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가득한 세상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따져보세요.

두 말 할 것 없이 좋고 긍정적인 모습을 전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말, 생각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좋고 긍정적인 모습들이 나의 이웃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그런 모습을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급급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는 말, 아직 여유가 없다는 등의 말들을 많이 하고 있으며, 세상의 기준만을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해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고행을 하면서 스스로 절제하고 하느님을 철저하게 섬겼습니다. 또한 그 당시의 절대 권력자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그의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꾸짖는 용기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 그 당시에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너무나도 획기적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를 예언자로,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 스스로 “나는 예언자다. 나는 메시아다.”라고 한 마디만 해도 그에게는 엄청난 부가 따를 것이고 사람들의 끊임없는 존경과 섬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예수님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 좋은 모습을 세상에 전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실천할 때,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도 암 균이 있다. 그것은 ‘의심’이다. 사랑에도 항암제가 있다. 그것은 오직 ‘믿음’이다.(정채봉)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신 세례자 요한.

 

 
입센의 편지(‘행복한 동행’ 중에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여배우 울프 부인에게 한 연극의 하녀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녀 역할이 조연임을 안 울프 부인은 단박에 거절했다.

입센은 안타까웠다. 조연을 가볍게 보는 울프 부인의 거만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센은 작품의 완성도가 배역의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입센이 판단하기에 하녀 역할은 울프 부인이 제격이었고, 그녀가 아니면 연극은 완성되지 못할 터였다. 입센은 고민 끝에 이런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울프 부인, 당신 외에 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할 배우는 없습니다. 극 중 남녀 주인공과 하녀는 완벽하게 통일된 장면을 이룹니다. 연극이 진행될수록 그들 사이의 조화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당신이 하녀 역할을 맡아 주어야 가능합니다. 저는 부인이 주연이나 조연에 좌우되지 않고, 어떤 배역에서도 진정한 인물을 창조해 내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부인은 배우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읽은 울프 부인은 입센의 겸손함에 감동한 반면, 자신의 교만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즉시 하녀 역할을 받아들였고, 연극은 크게 성공했다.

우리는 항상 주연만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 자신도 주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극에서 주연만 있을 수 없듯이, 이 세상의 삶 안에서도 주연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연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 결국 하느님 나라에서 주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조연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세례자 요한의 모습. 그 겸손한 모습을 우리 역시 받아들여야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부처

2014년 1월 2일 목요일[(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회개의 세례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은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라는 신원을 철저하게 깨쳤습니다.

자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직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이러한 겸손은 습관적인 공손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요즘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존감’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열렬히 추구하는 갈망이 그리스도를 만나 온전히 결실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진리를 체험한 사람의 겸허한 자세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는 증거가 됩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조금의 꾸밈도 없이 표현하고 감사하는 모범을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발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깨닫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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