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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4년 1월 3일 금요일 [(백) 주님 공현 전 금요일]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백) 주님 공현 전 금요일]

 

본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저희를 인자로이 비추시고, 주님 영광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저희가 구세주를 올바로 알아보고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십니다. 아멘.

 

말씀의 초대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큰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제1독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바라보며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희망’이라는 두 글자는 참으로 큰 뜻을 담은 낱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움켜쥔 그 무엇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이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뜻있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희망은 현재의 욕망을 키워 미래를 소유하고자 하는 바람이 아닙니다. 현재 이루지 못한 세속적 염원을 투사시킨 장밋빛 약속에 기웃거리는 것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허황된 바람으로 채우고 소진시키며, 마침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게 합니다. 반골 기질이 넘쳤던 20세기의 뛰어난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분별하고자 중세의 그리스도교 철학은 희망을 거스르는 두 가지 죄를 지적하곤 하였습니다. 하나는 슬픔에 지쳐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가치가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갖지 앉는 타산적이고 오만한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희망을 지닌 이들입니다. 제1독서에서 말하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순결한 마음은 희망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닌 신앙인은 이 세상의 가치로만 삶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걸어가신 모범에서 자신의 인생길을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분당 요한성당 벽화

 

 


 

2014-01-03 오후 12:13:32추천수9반대수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월 3일 주님 공현 전 금요일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He is the one of whom I said,
‘A man is coming after me who ranks ahead of me
because he existed before me.’
(Jn.1,29-30)
 
 
제1독서 1요한 2,29─3,6
복음 요한 1,29-34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으로 연예인이 아주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연예인들만 나타났다하면 그곳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하지요.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어느 성당의 입구에 아주 유명한 연예인 사진을 대문짝하게 걸어 놓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이 사진을 보고서 ‘이 연예인이 이곳 성당을 다니는 거야? 그러면 나도 나가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고서 성당에 나오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지요.

그렇다면 이 성당의 입구에 크게 걸린 사진의 주인공인 연예인은 이 사실에 대해 자기를 홍보해줬다면서 좋아할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도가 아닌 전혀 다른 의도로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연예인의 사진을 함부로 도용하는 것, 법적으로도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에게도 함부로 도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을 잘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말이 주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도와 묵상을 통한 주님과 대화도 잘 하지 않으면서, 주님의 뜻을 함부로 판단하고 불평불만을 던질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주님을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으면서 주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있다면 과연 주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까요? 앞서 함부로 연예인 사진을 도용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알지도 또 주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고 있다면 커다란 죄가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제2계명에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죄를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더욱 더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끊임없이 읽음으로써 그리고 멈추지 않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더 많이 알아 나가야 하고 이로써 주님과 정말로 가까운 친밀의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낮추고 대신 주님을 높이는 말씀을 계속하시지요. 솔직히 나를 낮추고 다른 이를 높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주님은 높아지셔야 할 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주님은 낮아지셔야 할 분으로, 대신 나는 계속해서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새해의 시작에 선 우리는 주님을 더욱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함부로 주님의 이름과 뜻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주님을 알아서 주님의 이름과 뜻을 세상에 높이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행복은 뭘까? 우리와 함께 하는 것들. 숨 쉬는 공기, 나무, 하늘, 가족, 친구. 이에 대한 고마움은 스쳐 지나가기가 쉽다. 행복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신현림).

 
어느 가게에서 본 문구. 연예인 특히 현아를 좋아하나 봅니다. ㅋㅋ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어느 책에서 본 ‘입의 십계명’입니다.

1. 희망을 주는 말을 하라.
2. 용기를 주는 말을 하라.
3. 사랑의 말을 하라.
4. 칭찬의 말을 하라.
5. 좋은 말을 하라.
6. 진실 된 말을 하라.
7. 꿈을 심는 말을 하라.
8. 부드러운 말을 하라.
9. 화해의 말을 하라.
10. 향기로운 말을 하라.

어떻습니까? 정말로 이러한 말들을 하고 있었는지요? 말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쉬운 도구이지요. 그러나 그만큼 실수를 하기 쉽고, 다른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위의 ‘입의 십계명’을 잘 지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말 10가지’도 있다고 하네요.

1. ‘잘 해봐라’ 는 비꼬는 말
2. ‘난 모르겠다’ 는 책임 없는 말
3. ‘그건 안 된다’ 는 소극적인 말
4. ‘네가 뭘 아느냐’ 는 무시하는 말
5. ‘바빠서 못한다’ 는 핑계의 말
6. ‘잘 되어가고 있는데 왜 바꾸느냐’ 는 안일한 말
7. ‘이 정도면 괜찮다’ 는 타협의 말
8. ‘다음에 하자’ 는 미루는 말
9. ‘해보나마나 똑같다’ 는 포기하는 말
10. ‘이젠 그만 두자’ 는 의지를 꺾는 말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잘 아시겠죠? 올 새해에는 꼭 해야 할 말만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골 기질이 넘쳤던 20세기의 뛰어난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분별하고자 중세의 그리스도교 철학은 희망을 거스르는 두 가지 죄를 지적하곤 하였습니다. 하나는 슬픔에 지쳐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가치가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갖지 앉는 타산적이고 오만한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희망을 지닌 이들입니다. 제1독서에서 말하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순결한 마음은 희망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닌 신앙인은 이 세상의 가치로만 삶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걸어가신 모범에서 자신의 인생길을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출처]매일미사

 

 

   

우리의 삶이 꽃향기처럼 저절로 퍼져나가는

기쁨과 희망, 위로와 평화의 일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로 이게 복음이요 매일미사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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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꿈을, 희망을 잃으면 살아있어도 실상 죽은 삶입니다.

사람들이 날로 거칠어지고 사나워지는 것은 꿈을,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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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꿈꿀 때 기쁨과 희망이요 위로와 평화입니다.[출처]소나무신부와 함게 하는 마음의 산책

 

감출 것이 너무 많아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머물다가는 육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쓰면서도 영원히 살아가는 영혼에게는 너무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원래의 모습대로 살아가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출처]조재형 작성 묵상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가야 더 잘 됩니다. 내가 떠나가면 내 뒤에 오실 그분께서 더 큰 사랑으로, 더 활기찬 모습으로 아름답게 모든 것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행복, 큰 충족감을 안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출처]양치기 신부님의 말씀산책

우리가 미사 때 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고 선언하는 것은 곧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요,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할 때 좀 더 진중하고 감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리 이웃에게 어린양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출처]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1월 3일 금요일 [(백) 주님 공현 전 금요일]부처

오늘의 복음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희망을 지닌 이들입니다. 제1독서에서 말하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순결한 마음은 희망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닌 신앙인은 이 세상의 가치로만 삶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걸어가신 모범에서

자신의 인생길을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꿈이,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꿈을, 희망을 잃으면 살아있어도 실상 죽은 삶입니다.

사람들이 날로 거칠어지고 사나워지는 것은 꿈을,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꿈꿀 때 기쁨과 희망이요 위로와 평화입니다

우리의 삶이 꽃향기처럼 저절로 퍼져나가는

기쁨과 희망, 위로와 평화의 일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로 이게 복음이요 매일미사 은총입니다.

 

잠시 머물다가는 육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쓰면서도 영원히 살아가는 영혼에게는 너무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할 때...

좀 더 진중하고 감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리 이웃에게 어린양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기쁨과 희망, 위로와 평화의 일상을 나누게 하소서....아멘.

 

 

 

- 2014년 1월3일 금요일...수산나 -아잉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