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6일 월요일[(백) 주님 공현 후 월요일]
말씀의 초대
우리가 받은 계명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성령을 통해 알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가신다. 이로써 회개를 촉구하시며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전도가 시작된다(복음). |
제1독서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22─4,6
복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종교학자들은 요즈음 종종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라는 구분을 합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과 기복 신앙이 아닌 진정한 종교 체험과 신앙 체험으로 성숙되어 가는 종교인들이야말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계명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기쁜 소식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은 이러한 심층적 종교 체험의 좋은 보기일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계명을 통한 이러한 자유의 체험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것으로 온전히 열매 맺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마치 사람이 좋은 일을 거듭함으로써 훌륭한 사람이 되듯이, 주님 안의 머무름이라는 결실 역시 어떤 면에서는 머무르는 체험이 거듭되어 시간 안에 쌓이고 응축될 때에야 자라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신앙인들이 자주 호소하는, 체험이 결여된 메마르고 피상적인 신앙의 원인은 이러한 머무름의 체험의 기회가 무척 드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는 현대인의 삶의 조건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에게는 ‘시간의 둥지’가 필요하다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경구를 인용하여 이렇게 전망합니다. 곧 현대인들은 ‘귀 기울여 듣는 재능’과 ‘깊은 심심함’을 통해야만, 깊은 체험을 가로막고 자신을 소진시키는 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강조되어야 할 회개의 중요한 측면은 아마도 잠시 멈추어 선 가운데 맹목적 성과 위주와 분주함과 작별하는 것이겠습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 머무르고자 하는 자세로 고요한 시간을 주님께 봉헌해 갈 때 신앙의 살아 있는 체험에 조금씩 맛 들이게 될 것입니다.
명동성당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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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화제가 되었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에게는 ‘시간의 둥지’가 필요하다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경구를 인용하여 이렇게 전망합니다. 곧 현대인들은 ‘귀 기울여 듣는 재능’과 ‘깊은 심심함’을 통해야만, 깊은 체험을 가로막고 자신을 소진시키는 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강조되어야 할 회개의 중요한 측면은 아마도 잠시 멈추어 선 가운데 맹목적 성과 위주와 분주함과 작별하는 것이겠습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 머무르고자 하는 자세로 고요한 시간을 주님께 봉헌해 갈 때 신앙의 살아 있는 체험에 조금씩 맛 들이게 될 것입니다. [출처]매일미사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서울도 아직 몰랐던 좋은 곳이 많은 것처럼, 이 세상의 일들을 많이 안다고는 하지만 우리 인간의 부족함으로 인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겸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면서 교만과 욕심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항상 서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걸으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천천히 곱씹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서두릅니다. 자기가 원하는 빠른 결과를 보아야 하고, 그리고 그 결과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께 얼마나 많은 불평불만을 드리고 있습니까? [출처]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타임’지의 편집장 리처드 스텐절이 쓴 책 ‘만델라스 웨이’를 읽어보셨는지요? 리처드 스텐절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남아프리카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3년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자서전 집필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3년간의 시간을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보낸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말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만델라를 만나면서 제 자신이 좀 더 커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를 떠나오자 제 삶에서 태양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진지한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인사이동 철에. 함께 동고동락했던 여러 형제들이 떠나가고 떠나오는 시절, 제 삶을 돌아봅니다.
나와 함께 살았던 형제들이 나를 통해 커졌는가, 나와 함께 살았던 형제들이 나를 떠나가면서 태양 하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는가?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와 함께 살았던 형제들이 나를 통해 잔뜩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해진 것은 아닌가,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살았던 형제들이 나를 떠나가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기쁨이요, 희망이요, 구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대방이 나로 인해 영혼이 맑아지고, 키가 커지고, 행복이 배가된다면 얼마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요?[출처]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 내가 보상을 받을 것이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잘못한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배반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흔들리는 바늘귀에 실을 넣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상처가 거센 바람이 되어서 내 마음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직책과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랑입니다. 눈길을 걸으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2014년 내가 걸어가는 신앙의 길 위에 사랑의 발자국, 나눔의 발자국, 희생의 발자국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출처]조재형 작성 묵상글
2014년 1월 6일 월요일[(백) 주님 공현 후 월요일]
오늘의 복음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입니다...
오늘날 강조되어야 할 회개의 중요한 측면은 아마도 잠시 멈추어 선 가운데 맹목적 성과 위주와 분주함과 작별하는 것이겠습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 머무르고자 하는 자세로 고요한 시간을 주님께 봉헌해 갈 때 신앙의 살아 있는 체험에 조금씩 맛 들이게 될 것입니다
즉 ‘귀 기울여 듣는 재능’과 ‘깊은 심심함’을 통해야만, 깊은 체험을 가로막고 자신을 소진시키는 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과 ‘깊은 심심함’......아멘.
- 2014년 1월6일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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