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이야기·꽃말

왕벚나무- KBS다큐공감 등 7개

오는 4월 13일까지 미국 정치 1번지, 세계 정치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워싱턴 DC에서는 세계벚꽃축제가 계속된다.벚꽃축제의 웹 사이트를 클릭하면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일본에서 이 벚꽃축제를 개최했다는인상을 준다. 어찌 이뿐이랴 ! 세계각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벚꽃거리를 조성하여  일본은 왕벚꽃처럼 아름다운 나라라는 이미지로 일본의 국가 브랜드를 높여 왔다. 
 해마다 열리는 이 벚꽃 축제에는 세계각국으로부터 10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미국 국민들은 물론 이 축제에 참가한 세계 각국 국민 모두 아름다운 벚꽃을 보며 일본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2차대전 중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폭격하자 워싱턴의 벚나무를 모두 잘라내자는 여론이 드높았을 정도로 워싱턴DC의 벚꽃과 일본의 관계는 밀접하다.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한국이다. 천연기념물 제156호(남제주군 남원읍 신례리 산 2-1), 159호(제주시 봉개동 산 78-1, 78-2), 173호(전남 해남군 산삼면 구림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08년 4월15일 서귀포시 서홍리 소재 성당에 와 있던 프랑스인 따께신부가 제주도에서 채집된 표본을 당시 장미과 식물의 권위자인 독일의 베르린대학 코헤네박사에게 보냄으로써 그에 의해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2009년 4월 6일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김찬수 박사는 지난해 워싱턴을 2번이나 방문해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 표본을 채취해 유전자(DNA)분석을 한 결과 제주 원산의 왕벚나무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최근 벚꽃축제가 열리는 워싱턴 포토맥 강변을 다시 찾아 그곳에 있는 벚나무에서 피어난 꽃의 형태 등 분류학적 특징들을 관찰한 결과 왕벚꽃이 분명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천연기념물 왕벚나무로 세계를 사로잡은 일본의 교활한 외교술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벚나무에 관한 기록은 멀리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는 765년, 왕사 충담 스님이 경덕왕을 만날 때 앵통(櫻筒)에 차 끓이는 도구를 담아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앵통이란 앵두나무 통이 아니라 벚나무 껍질로 표면 장식을 한 것을 말한다(박상진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김영사).
이로 미루어 벚나무는 신라 말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더욱이 효종(1619-1659)이 궁재(弓材)로 쓰기 위해 왕벚꽃나무를 서울 우이동과 장충동에 대량으로 심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일본에는 벚꽃에 관한 문헌이 거의 없다.
 


 일본의 벚꽃 성지인 요시노산에는 약 3만 그루의 벚나무가 자라고 있다.일반적인 학설에 따르면 옛날 이 지역에는 엔노오즈누란 행자가 있었다. 그는 백제에서 건너 온 카라구니 히로타리의 스승으로도 유명한데, 요시노 산 가운데에 수험도란 종파를 개설했다.
엔노오즈누는 요시노 산 기슭에 벚나무를 심고 "이 나무는 장왕보살의 신목이므로 손상을 입히는 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 벚나무가 온 산을 채우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때 백제의 벚꽃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대 홍윤식 교수에 따르면 1933년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는 '일본 사쿠라의 한국 기원론'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일본의 권위 있는 벚꽃 전문 학자인 다카기 기요코 교수도 "한국에는 사쿠라가 매우 많다. 소메이요시노(왕벚나무) 사쿠라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왕벚나무를 둘러 싼 한. 미. 일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어떻게 한국의 왕벚나무가 미국을 뒤덮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엄청난 벚꽃나무가 미국에 심어지는 과정에서 일본의 간교한 한반도 침탈의 야욕이 숨어 있었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육군장관 헬렌 태프트는 일본에 들려 당시 총리 가쓰라 다로와 비밀협약을 맺는다.요약하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의 보호권을 상호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비빌협약에 힘을 얻은 일본은 수개월 후 을사보호조약을 강행했다.
그 뒤 태프트가 대통령이 되자 1912년, 도쿄시장 유키오 오자키가 영부인 헬렌에게 벚나무 3020그루를 기증했다. 1965년에는 존슨 대통령 부인 버드가 3천그루를 더 들여와 미국은 벚나무 천국으로 변모했다.
즉, 일본의 벚꽃나무 기증에는 조선왕조의 비극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또 놀라운 사건이 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1941년 미국 시민들이 이 벚나무들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때 이승만, 서재필 박사 등이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도”라며 미국인들을 설득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당시 ‘Japanese Cherry Blossom’으로 불리던 벚꽃의 이름을 ‘Korean Cherry Tree’로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중간격인 ‘(Oriental) Cherry Blossom’으로 바꾸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이 박사는 1943년 아메리카 대학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24돌 기념식’에서 벚나무 4그루를 학교에 기증하고 ‘Korean Cherry Tree’라고 이름 붙였다.  

 
 게다가 속 상할 일이 있다. 미국의 벚나무가 세계 각 국으로 수출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가 1만9000그루 중 3200그루를 구입하여 걸프 지역에 '워싱턴DC타운'을 조성한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도 벚나무 구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 왕벚나무 원산지인 한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며 전국적으로 벚나무 베어내기에 열중했다.

 이제 우리는교활한 일본의 술수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미국의 젊은이들이
지금도 바다 밑에 잠들어 있음에도 일본은 미국을 최대 우방으로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만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한국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한국에서 하루 밤을 묵는다고 한다.

 군사대국화하고 있는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공격하여 한.일 해전이 전개된다면 미국은
어느 니리 편에 설 것인가? 일본이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끓고 가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로비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의 로비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국의 왕벚나무로 세계를 사로잡은 교활힌 술수로 또 다시 한반도 상륙을 획책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일본 위안부 부정'에 이어, 교과서에서 월드컴 '한.일 공동주최'도 삭제하는 일본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눈이 어두어 싸움질을 계속하는 동안, 일본의 마수는 조금씩 조금씩
소리없이, 한반도에 발 붙일 기반 마련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又耕  

 

[특파원 칼럼/정미경]워싱턴 벚꽃과 일본 소프트외교

기사입력 2014-04-07 03:00:00 기사수정 2014-04-07 03:32:07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사실 삭막한 도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연방 공공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선 회색의 도시다. 워싱턴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봄이다. 이때는 워싱턴이 회색에서 연분홍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벚꽃 덕분이다.

지금 워싱턴에서는 벚꽃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워싱턴은 매년 관광 수입의 35%를 벚꽃 축제 기간에 거둬들일 정도로 전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TV에서는 미일관계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벚꽃 퍼레이드, 연날리기 대회, 사케 시음, 사쿠라마쓰리 일본거리 축제 등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사가 줄을 잇는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봄마다 벚꽃을 보며 눈이 호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워싱턴의 벚꽃은 1912년 3월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당시 도쿄 시장이 선물한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가 시초였다. 당시 벚꽃을 미국에 들여올 때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해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 헬렌 여사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벚꽃 축제는 워싱턴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일본 소프트외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중일 역사전쟁의 대결장이 된 미국의 마음을 각종 문화 행사로 얻겠다는 것이 일본의 의도다. 벚꽃 축제 웹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축제 행사 건수는 20% 늘었다. 일본 기업의 후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벚꽃 축제는 워싱턴 시당국이 주최하지만 행사 비용의 대부분은 일본 기업이 부담한다. 한 일본 전문가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의 요청에 따라 축제를 지원하는 일본 기업의 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축제 참석을 위한 일본 정치인의 워싱턴 방문도 크게 늘었다. 일본은 이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사전 축하행사로 벚꽃 축제를 띄우고 있다.

벚꽃 축제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 소프트외교의 현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부쩍 늘어난 일본 관련 세미나들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스팀슨센터 등 5, 6곳에서 일본 외교안보 전략을 토론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말에는 미일협회(USJC) 주최로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여성 인재 활용 정책인 우머노믹스를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아베 정부가 미국에 원정단까지 보내 자국의 여성 정책을 홍보하는 세미나를 연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학술 교류 주제가 외교안보에 그치지 않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여성 환경 인권 등의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소프트외교가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부임 축하연을 성대하게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일본 시를 낭독하고 다다미방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전통 행사를 마련해 케네디 대사는 물론이고 동석했던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일본 문화 멋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최근 버지니아 주 교과서 동해 병기, 글렌데일 소녀상 건립 등에서 잇달아 좋은 결실을 거뒀지만 엄격히 말해 이는 재미 한인사회 노력의 결과다. 한국 정부 차원의 대미(對美) 소프트외교는 아직 일본에 한참 뒤지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오늘 워싱턴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는 마음은 그래서 복잡하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출처:동아일보
기사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40407/62320394/1

 

 

 

벚나무(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Max.) Wils.)는 올벚나무, 개벚나무, 산벚나무, 왕벚나무와 함께 봄동산을 아름답게 하는 꽃이다. 그중 일본의 국화로 알려진 왕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는 그 기원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제주도 남제주군 신예리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6),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9), 전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73)의 분자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이 기원지임이 밝혀졌다. 벚나무는 종에 따라 꽃이 잎보다 먼저 피거나 꽃과 잎이 동시에 피며 꽃잎은 분홍 또는 흰색이다. 벚나무의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여 국궁(國弓)과 고려팔만대장경(高麗八萬大藏經) 경판의 재목으로 이용되었다. 또 잎사귀로 풀피리를 만들었으며 껍질로 악기 만드는 데 쓰였음이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나타나 있다. 열매는 ‘버찌’라고 하여 식용하거나 기침약으로도 이용된다.

 

신례리 왕벚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6호)
◆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156호
◆ 지정년월일 : 1964년 1월 31일
◆ 소재지 : 남제주군 남원읍 신례리 산 2-1번지.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의 교목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국화로 지정하여 공원, 학교 등지에 널리 심는 나무이나,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자생의 왕벚나무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08년 4월15일 서귀포시 서홍리 소재 성당에 와있던 프랑스인 따께신부가 제주도에서 채집된 표본을 당시 장미과 식물의 권위자인 독일의 베르린대학 코헤네박사에게 보냄으로써 그에 의해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 후 미국의 하바드대학 윌슨박사가 일본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산벚나무와 올벚나무의 교배에서 생긴다는 잡종설을 발표하여 일본학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1993년 4월 경도제국대학 고이즈미 겐이찌박사가 한라산 남쪽 수림속에서 왕벚나무를 찾아내고 확인 발표함으로써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쟁 대상이 되었던 것을 해소시켰다. 이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는 5·16도로 수악교 남쪽 해발 5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남제주군 수악교 남쪽 해발 600m 지점 5·16도로에서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숲 속에 세 그루의 왕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은 1932년 4월 20일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 교수였던 코이즈미(小泉源一)가 왕벚나무 한 그루와 제주벚나무(P.yedoensis Matsum. var. mudiflora Koehne) 한 그루를 확인하였다고 한 지점과 거의 일치되는 곳이다. 코이즈미와 1933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왕벚나무를 확인한 타케나카(竹中)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곳은 당시 목장지대로서 계곡 등에는 잡목림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주변에 구실잣밤나무가 남아 있으나, 대부분은 수령이 오래지 않은 잡목림으로 탈바꿈되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왕벚나무는 세 그루다. 이들 중에서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10m이고 흉고(胸高) 둘레는 98㎝, 수관폭(樹冠幅)은 13m이며, 붉은색의 꽃이 핀다. 다른 나무는 높이가 9m이고, 흉고둘레는 96㎝이며, 근원부에서 1m 되는 곳에서 싹이 나와 갈라지며, 수관폭은 10m이고, 꽃잎은 백색계열이다. 가장 작은 나무는 높이가 6m이고, 흉고둘레는 30㎝, 수관폭은 3m이며, 꽃잎은 백색계열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대부분 한라산 북쪽의 관음사를 중심으로 한 산북지방에 집중되고 있으나, 이곳은 산남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왕벚나무 소집단이 발견된 곳이다. 이곳의 식생은 난대림의 구성요인들이 많으며, 특히 굴거리나무·새덕이·사스레피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뒤섞여 자라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개동의 왕벚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9)
·지 정 번 호 : 천연기념물 제159호
·지정년월일 ; 1964년 1월 31일
·소 재 지 : 제주시 봉개동 산 78-1, 78-2번지

제1횡단도로를 따라 제주시에서 서귀포 쪽으로 12km가량 되는 지점에 위치한 제주컨트리클럽이 끝나는 동쪽 도로 오른쪽에 왕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의 자생지가 있다. 이곳에는 세 그루의 왕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제주도에는 여러 종의 벚나무류가 자생,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을 두루뭉수리로 '사오기' 또는 '사옥' 이라 부르고 있다.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 무늬와 나무 색깔이 아름답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중한 가구재·기구재 또는 건축재로 쓰여왔다. 따라서 한라산에 야생하는 벚나무류 중에서 柱幹(주간)이 곧고 굵은 것은 함부로 벌채되어서 피해가 많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봉개동 왕벚나무 중 가장 크게 자란 나무도 주간이 벌채되었으며, 지금의 나무는 싹이 터서 자란 것이다. 이 나무는 근원부의 둘레가 3.4m이나 네 개의 싹이 나와서 자라고 있으며, 둘레는 각각 1.5m, 1.4m, 1.2m, 0.7m이며 최대 수관폭은 15m이며 높이는 11m로서 사방으로 안정된 수관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에서 동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높이 11m, 근원부의 둘레 2.4m, 가슴높이 둘레 1.8m, 최대수관폭은 줄기의 한쪽이 바람에 해를 입어서 16m이다. 가장 작은 나무는 가장 큰 나무의 서남쪽 50m 거리에 있는 숲 속에 있으며, 높이는 10m, 근원부 둘레 1.5m, 가슴높이 둘레 1.4m, 최대수관폭 12m이나, 樹形(수형)은 매우 좁게 자라고 있다.

 

벚꽃이 피는 벚나무는 일본이 원산지인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에 선교사로 온 프랑스인 타퀘 신부
가 1908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고 1912년에는 독일의 식물학자 퀘흐네가 한라산 관음사(觀音寺) 부
근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제주도 자생지 설이 유력해졌습니다. 또한 조선 효종 때 화살
대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벚나무를 지금의 우이동 지역에 심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벚나무는 우리
나라에 원래부터 있던 나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매년 3~4월에 열리는 벚꽃 축제는 일제 식민 강점기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3·1 독립 만세 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 정책으로 식민 통치 방식을 변경하면서 창경궁에 벚나무를
심고 1924년부터 밤 벚꽃 놀이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벚꽃 축제의 유래입니다. 그 당시 창경궁 밤 벚꽃 놀이
는 우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관심을 화사한 벚꽃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창경궁 밤
벚꽃 축제는 매년 계속 되다 1984년 창경궁 복원 공사가 이루어 지면서 중단되게 되죠.

 

벚꽃 축제에도 즐겁지 않은 현대사의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은 아픔인 것 같네요. 지금이야 벚꽃
축제에 갈 때나 아니면 벚꽃 흐드런지 아무 곳에서 벚꽃 놀이를 할 때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일부러 떠
올릴 필요야 없겠지요. 벚꽃이 절정인 기간은 개화 후 1주일 정도입니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자료는 개화 시
기이기 때문에 벚꽃을 즐기기 위해서는 개화 후 1주일 내로 잡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분다든
지 비가 내린다든지 하면 벚꽃은 더 빨리 지니까 이점도 참고 하여 벚꽃 놀이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나무는 자생하는 곳이 있어야 그 나라의 나무라 할 수 있는데요,

왕벚꽃이 일본에는 자생지가 없지만 한라산에는 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다는 거죠.

거기다 우리나라 한라산 자생 왕벚나무가 일본의 것보다 유전변이가 2.5배로 더 크고 다양해요.

거기다 대부분 국내에 식재되 자생 왕벚나무는 일본 왕벚나무와 구분되는 DNA를 갖고 있어서

자생 왕 벗나무가 일본으로 도입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꽃이 아닌 일본꽃처럼 느껴지는 이유

1900년대 이후 벚꽃이 일본사이에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일본이 외교의 수단으로

수십만 그루의 묘묙을 해외로 내보내면서 자연히 일본 국화로 인식된 것에서 비롯해요.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에 벚꽃이 1900년 전에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에 인기를 끌게 된 이유가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벚꽃의 품종 중 80%이상이 왕벚꽃인데요

이 왕벚꽃이 제주도의 원산지 인거죠. 즉, 100여년 전 제주도를 오가는 일본상인들이 너무 반해서

일본 동경 우에노 공원에 그 묘목을 심은게 바로 일본 왕벚꽃의 시초인 셈이죠.

그래서 이 왕벚꽃을 본 일본인들이 반해 인기를 얻은것이고 인기를 얻음으로 인해 이 꽃이 개량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어 다시 우리나라에 이 개량나무가 들어온 셈이죠;

 

그래서 일본내에서 자국의 자생종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지만 원래 종을 찾지 못하였고

이사실이 1932년 코이즈미(小泉)박사에 의해 학계에 보고됐지만 일부 국수주의적 일본학자들에 의해

널리 채택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고 지금까지 숨겨진 진실로 내려오고 있어요.

 

진해 벚꽃은 1905년 일본인들이 군항기지와 그들의 시가지를 형성 하면서 많이 심게 되었는데 광복후 배일사상으로 일제의 잔재라 하 여 그 당시 식재되어 있던 벚꽃나무를 모두 베어 거의 종족을 감추 게 되었으나 1962년 박만규, 부종유 등 두 식물학자에 의하여 진 해에 있는 왕벚나무(일본명 소메이요시노 사꾸라)의 원산지가 일본 이 아닌 우리나라의 제주도임이 밝혀지면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하 였다.

 

 그런데 이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은 1932년 일본인 코이즈미 박사에 의하여 이미 학계에 보고되었던 것이나 일부 일본의 국수주의적 학자에 의하여 이설이 제기되어 일반화 되지 않아 아는 이가 적었다.

 

 진해에 본격적으로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10년 6월 18일 도시계획을 위한 측량을 시작한 이후이고 자생수 이외에 2만본으로 조경을 하였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심어진 벚꽃나무는 개화기에 시가지를 온통 벚 꽃에 묻히게 하는 장관을 이룬다.

 

8.15광복 이후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일본 국화라 하여 냉대 하 였으나 1960년 들어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이 밝혀지고 관광도 시로서 발전적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우리나라 자생종인 벚나무를 다 시 심어 벚꽃의 고장으로 꾸미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1차로 1962년에 일본에서 왕벚나무 묘목 2천여 그루를 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구입하 여 벚꽃장 일대와 통제부 영내 그리고 제황산 공원과 시가지에 심 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향토출신 재일 교포가 이에 호응하여 1만 그루의 묘목을 기증하여 이로써 제황산 공원과 벚꽃장 일대 등 주요 관광지대와 시가지 노선도로변에 증식을 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재일교포의 지 원과 시의 노력도 계속되어 현재는 6만여 그루가 시내 일원에 심어져 있다. 벚나무는 모두 17종으로 '한국동식물도감'에 열거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순수하게 자생하는 것이 5종이라고 한다.

 

이 고장에 많이 심어져있는 것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된 한라산 자생종 왕벚나무와 벚나무였고 오늘날 시내에 널리 식재된 수종도 역시 왕벚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가로변 꽃길은 여의도 윤중로가 대표적인 명소.
국회의사당 뒤편으로 수령 30 년이 넘는 왕벚나무 1400여 그루가 10 km 구간에 걸쳐 활짝 핀다.
해마다 낮에는 물론 밤 벚꽃놀이를 나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http://www.viewkorea.co.kr/Korean/yunjung.htm 에서...(교통편도 나와있습니다.)
서울에서 벚꽃이 가장 유명한 곳은 여의도 윤중로다. 국회 의사당 뒤편으로 30~40년 된 왕벚나무 1천4백여 그루가 5.7km의 길에 봄의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벚꽃이 절정기 이르면 평일엔 10만~15만명, 주말엔 30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 해마다 벚꽃 절정기에는 서강대교 남단에서 국회 뒤편 파천교 북단에 이르는 1.5km 구간의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대신 여의도공원 좌우측에 임시 무료주차장이 마련된다. 주변엔 파천교 밑, 성모병원 앞 둔치, 서강대교 밑 등에 공공주차장(평일 오후 7시 이후와 공휴일엔 무료)이 있지만 워낙 많은 인파가 벚꽃을 감상하기 위하여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올해 윤중로 벚꽃은 날씨가 예년보다 많이 포근한 관계로 한참 절정기를 이루고 있다.(4월4일 촬영사진).

http://www.tltv.co.kr/travel_info/go_info/domestic/flower_place.jsp 에서...(전국벚꽃명소소개;;)
♣ 여의도 윤중로
윤중로에 벚나무가 심어진 것은 1960년대 여의도 개발 당시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부터. 이 때문에 윤중로는 황금기에 접어든 수령 30~40년 벚나무가 주종을 이뤄 꽃이 크고 아름답다. 한라산이 원산지인 왕벚나무를 비롯, 벚나무 1,439그루가 5.7km에 달하는 윤중로 곳곳에서 '벚꽃터널'의 장관을 연출한다. 4월 2~17일 벚꽃축제기간에는 국회의사당 뒷편(1.5km)(서강대교남단~파천교북단)이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다. 교통이 매우 혼잡하므로 자가용은 피하는 게 좋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 역에서 하차하면 가깝다.
문의 : 영등포구청 종합상황실 02-3775-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