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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교·달 등

[탐방] 서울성곽 - 내사산과 외사산-4대문과 4소문/북한산 등

 

[탐방] 서울성곽 - '인왕산'에서 8월 짙푸른 북한산 풍경 외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2/08/26 22:54:58)

[탐방] 서울성곽 - '인왕산'에서 8월 짙푸른 북한산 풍경 외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사직공원에서 출발한 서울성곽 - '인왕산'에서 8월 북한산 풍경 외. 인왕산 아래 자리한 사직공원에는 신사임당 과 율곡 '이이(李珥)' 동상도 있다. ⓒ20120826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인 낙산(駱山 125m 동 좌청룡左靑龍), 인왕산(仁王山 338m 서 우백호右白虎), 남산(南山 262m 남 南朱雀), 북악산(北岳山 342m 북 北玄武)과 외사산(外四山)인 용마산(龍馬山 348m 東), 덕양산(德陽山 124m 西), 관악산(冠岳山 632m 南), 북한산(北漢山 836m 北)으로 둘러 싸여 있다.

▲ 사직단의 단군성전.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의 표준영정이 모셔져 있다. ⓒ서울포스트

자료검색 등 = 인왕산(仁王山 338m)은 현재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를 이루며,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 旺=日王)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 한양도성 및 4대문과 4소문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다.

서울성곽길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으로, 조선 건국 초 태조는 정도전에게 명하고 정도전은 백악(白岳)·인왕(仁旺)·목멱(木覓 남산)·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9500척(약 17㎞)의 성터를 잡고 축성했다.

이후 토축 부분을 석축으로 고치고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다. 4대문이란 동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의 돈의문(敦義門), 남의 숭례문(崇禮門), 북의 숙정문(肅靖門)을 말하고, 4소문이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소의문昭義門)을 말한다.

※ 흥인지문은 동대문-인仁, 돈의문은 신문新門, 새문 으로도 불리는 서대문-의義, 숭례문은 남대문-예禮, 숙정문은 북대문-지智. 숙정문(肅靖門)은 태조5년 축조 당시 숙청문(肅淸門)으로 불렸다가, 이후 북정문(北靖門),숙정문(肅靜門) 등의 명칭도 있었다.

4대문 중 돈의문은 현재 부재, 4소문 중 소덕문은 현재 부재. 4소문 중 홍화문은 현재 혜화문(惠化門) 터에 있었으나 창경궁을 창건하고 정문을 홍화문으로 부른다. 축조당시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소문(현재는 혜화문), 서남의 소덕문(昭德門)-서소문, 동남의 광희문(光熙門)-남소문,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북소문 을 말한다.


▲ 옛날의 한양도성. 낙산쪽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동대문?과 인왕산과 북한산 비봉이 보인다. ⓒ자료
▲ 정동쯤에서 찍은 것으로 보임. 인왕산과 북악산 뒤로 북한산 비봉능선과 보현봉이 보인다. ⓒ자료
▲ 인왕산에서 찍은 것으로 보임. 북악산 뒤로 북한산 보현봉이 보인다. ⓒ자료

복원된 성곽길은 - 북한산 백운대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 걷기 좋게 단장했으나 흰 돌을 가지런히 놔서 역사성은 떨어지고 자연과도 심하게 부조화를 이룬다. 복고스럽게 그을음이라도 줬다면 더 나았을 거란 게 나만의 생각일까?

사직공원에서 출발 창의문(자하문)에 이르는 산행은 한가한 일요일 오후 서울시내까지 아울러 기분 좋은 길이었다. (龍)

▲ 성곽위로 인왕산 ⓒ서울포스트
▲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로 북한산 보현봉(714m)이 우뚝 솟아있다. 그 왼편은 실지 더 높은 문수봉(724m)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바위에 자란 소나무가 이 산 가장 멋진 생명체. 종묘숲,낙산숲,용마산,예봉산이 차례로 보인다. ⓒ서울포스트
▲ 멀리 관악산 ⓒ서울포스트
▲ 338m을 나타내는 인왕산 정상 바위 와 남산 ⓒ서울포스트
▲ 북쪽으로 방벽을 이룬 북한산 비봉능선 ⓒ서울포스트
ⓒ서울포스트
▲ 우측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서울포스트
▲ 멀리 언덕같은 용마산(아차산) ⓒ서울포스트
▲ 서울의 중심이자 한국의 중심 ⓒ서울포스트
▲ 창의문(자하문) ⓒ서울포스트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알고 싶었던 내용]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인 낙산(駱山 125m 동 좌청룡左靑龍), 인왕산(仁王山 338m 서 우백호右白虎), 남산(南山 262m 남 南朱雀), 북악산(北岳山 342m 북 北玄武)과 외사산(外四山)인 용마산(龍馬山 348m 東), 덕양산(德陽山 124m 西), 관악산(冠岳山 632m 南), 북한산(北漢山 836m 北)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다.

 

서울성곽길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으로, 조선 건국 초 태조는 정도전에게 명하고 정도전은 백악(白岳)·인왕(仁旺)·목멱(木覓 남산)·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9500척(약 17㎞)의 성터를 잡고 축성했다.

이후 토축 부분을 석축으로 고치고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다. 4대문이란 동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의 돈의문(敦義門), 남의 숭례문(崇禮門), 북의 숙정문(肅靖門)을 말하고, 4소문이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소의문昭義門)을 말한다.

 

4대문 중 돈의문은 현재 부재, 4소문 중 소덕문은 현재 부재. 4소문 중 홍화문은 현재 혜화문(惠化門) 터에 있었으나 창경궁을 창건하고 정문을 홍화문으로 부른다. 축조당시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소문(현재는 혜화문), 서남의 소덕문(昭德門)-서소문, 동남의 광희문(光熙門)-남소문,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북소문 을 말한다.

 

 

 

 

[탐사] '북한산 정상부', 북한산의 명물 '인수봉'
여러 방향에서 본 북한산, 보현봉에서 인수봉까지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 동남쪽 용마산(아차산) 에서 바라 본 북한산1. (좌)보현봉부터 북한산성주능선, 정상부 북편의 인수봉. 서울경기 산야를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용마산이다.
ⓒ20090500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북한산(정상: 백운대 白雲臺 836m)은 남쪽에서의 모양과 북쪽에서의 모양이 전혀 다른 산이다. 남쪽이 햇볕을 받아 비교적 잘 양육되었다면 북쪽은 거친 원시를 간직하고 있다.

정상부를 보면 그 구분이 확연하다. 북한산의 최고 명물 인수봉을 앞에서 보면 미끈한 탄두가 하늘을 향하고 있으나, 뒤는 설교벽(雪郊壁)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능선이 악어등처럼 험하게 갈라져 있다. 백운대 북벽도 마찬가지.

▲ 애처러워 보이는 민둥산. 대남문 쯤에서 찍은 것 같다.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의 '누르베르트 베버 (노르베르트 베버 Norbert Weber) ' 신부 1911년 촬영 ⓒ자료사진

▲ 조선때의 지리도. '삼각(三角)'산으로 표시돼 있다. 개성의 '송악산'도 나오고 북악산을 백악산, 용마산을 아차산, 화악산을 화악(花岳), 남산을 목멱(木覓), 양평을 양근(楊根)이라고 불렀다. 수락산은 해룡산?, 아차산과 불암산 사이에 천보산이라고 있는데 지금의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표시상으로는 동구릉이 있는 구릉산 인것 같음 ⓒ자료사진

▲ 왕릉 표시도. 지금의 자양동은 당시 섬이었던 같다. 삼각산 일대가 '북한(北漢 - 한수 이북)'으로 표기돼 있다. ⓒ자료사진

인수봉은 - 지금도 그런 종교가 있지만, 고대 남성성기 숭배사상(토테미즘 Totemism)의 흔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민족의 명산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터부도 작용해 아무도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강하고 웅장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1억 5천만전에 거대한 바위가 융기되어 하늘로 날아오를듯한 기세를 하고있는 인수봉은 북한산의 실체이자 명물이며 세계적 자연유산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자 주관)

▲ 북한산의 실체이자 명물 '인수봉'. 바위 하나가 통째 봉우리로, 거대한 탄두가 날을 채비를 한 것 같다. ⓒ강바다 자료사진

▲ 내부순환로 연희동 쯤에서 본 북한산 '보현봉'. 칼을 세운듯한 숨찬 형제봉능선만큼이나 풍수적 해석은 '서울을 수호하는 진산' 또는 '역모의 산' 이라는 극과 극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둘 다 맞다. 왼쪽은 실제는 더 높은 문수봉, 가운데 완만한 곳(구기동계곡)에 '대남문'. 아래 구기동,평창동, 검을 씻었다는 세검정이다. ⓒ20110803 서울포스트

이 인수봉(仁壽峰 810m)이 북한산 북쪽의 시종이고, 보현봉(普賢峰 714m)은 북한산 남쪽의 시종이다. 그럼 보기만해도 숨이 차 올라가는 형제봉능선 끝의 보현봉과 인수봉의 실루엣, 북한산 정상부를 여러 방향에서 감상해 보자. (일부 자료사진은 넷상에서 참고했으며 상업목적이 없습니다.)

※ 아래는 지난 기사 중 일부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지구)은 서울특별시 강북구,도봉구,은평구,종로구,성북구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속하며 주소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산1-1, 정상(백운대 836m)은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근간으로 한 14정맥 중 한북정맥(漢北正脈)에 속하며, 끝에서 우뚝 솟아 대단원을 이룬듯한 보현봉부터 북한산성주능선과 산정상부 그리고 도봉산지구까지 서울의 웬만한 지역에서 그 자태가 명확히 조망된다. 하여, 생활근거지에서 언제 어디서나 통채로 조망되는 모양새와 정상부의 웅장함은 세계 제일이라고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가 있어 삼봉산(三峰山)으로도 불렸었고, 뿔모양 봉우리 세 개가 정상부에 있어 고려시대부터는 '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불려왔던 북한산은 조선조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에 나온말이라고 하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설치한 9주 5소경의 하나인 한산주(漢山州)에서 보듯, 옛부터 오늘날 서울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으며 '한산의 북쪽 지역'이라는 뜻에서 북-한산, 남쪽 지역이라는 뜻에서 남-한산이라 하던 것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산 이름(북한-산, 남한-산)으로 바뀐 것이다,는 설과 한수이북(漢水以北)의 '큰 산'(순한글-한산)이라는 설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렸는데, 당시 언어인 향찰에 '부아(負兒)'를 읽으면 '불', 즉 '불구덩-남성성기'을 가리켜 인수봉의 형태에서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고대 남성성기 숭배사상(토템신앙)의 흔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현재의 해석으로는 인수봉 사면 바위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업은 형상과 같다는 데서 기인되었다고 한다. 일제때 삼각산이란 명칭을 없애고 북한산이라고 썼든, 1983년 도봉산을 포함하여 우리나라(남한)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비로소 공공문서에 '북한산'이라는 단어가 정식 등장했고 현재 강북구청에서는 다시 '삼각산' 이름 복원운동이 한창이다.

백운대(白雲臺 836m)는 이성계가 여기에서 조선건국의 포부를 들어낸 시 등백운봉(登白雲峯)에 '一庵高臥白雲中(한 암자가 흰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네)'라는 데서 유래했다하여 백운봉으로도 불렸으며,
인수봉(仁壽峰 810m)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仁者樂山 仁者壽'에 유래되었다하고,
만경대(萬景臺 799m)는 만수봉(萬壽峰)이라고도 불렸고, 조선조 태조가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無學大師)와 함께 이곳에서 국도를 논의했다 하여 국망봉(國望峰)이란 이름 있어 망경대(望景臺)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기자 주 = 만경대는 만(萬)가지 경관을 볼 수 있는 데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기묘하고 험준하여 보는 시간과 각도에 따라서 만(萬)가지 경관도 연출한다.)

북한산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발기한 백두대간 중 백두산,묘향산,금강산,지리산과 함께 해동오악(해동五嶽)으로 불리며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의 100대 명산 중 인기순으로는 지리산,설악산에 이어 3위에 올라 있고 그 높이에 비해 암벽과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하다. 또 산 암석노출율이 70%정도를 차지해 바위들의 웅장함은 멀리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정상부는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있고, 거기서 서해바다까지 보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龍)

▲ 방향도표. 아래 사진 순서는 0시(상장봉)에서 시계방향으로 ⓒ서울포스트

▲ 북한산 상장봉에서 본 정상부. 1000m가 채 안된 북한산은 정상부만큼은 세계 어느 산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만치 아름답고 웅장하다. 여기서는 감춰진 만경대,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숨은벽. 아래로는 북한산국립공원 최대 넓고 평탄한 분지형태의 사기막골(효자계곡) ⓒ자료사진

▲ 도봉산 오봉에서 본 북한산 ⓒ자료사진

▲ 도봉산 능선에서 본 북한산 ⓒ서울포스트

▲ 북한산 영봉에서 본 정상부 ⓒ나종화

▲ 수락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 ⓒ지구촌나들이

▲ 불암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 ⓒ자료사진

▲ 노원에서 바라 본 북한산 ⓒ서울포스트

▲ 북한산 진달래능선에서 본 정상부 ⓒ나종화

▲ 망우리고개에서 바라 본 북한산1 ⓒ서울포스트

▲ 망우리고개에서 바라 본 북한산2 ⓒ서울포스트

▲ 용마산(아차산) 에서 바라 본 북한산2 ⓒ서울포스트

▲ 제기동에서 바라 본 북한산 ⓒ서울포스트

▲ 북한산 시단봉에서 본 정상부 ⓒ나종화

▲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본 정상부. 북한산국립공원의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칼바위정상같다. ⓒ자료사진

▲ 북한산 보현봉에서 본 정상부 ⓒ자료사진

▲ 북한산 715분기점에서 본 정상부 ⓒ자료사진

▲ 북한산 용출봉에서 본 정상부 ⓒsunflare 자료사진

▲ 하늘공원에서 바라 본 북한산 ⓒ고광준 자료사진

▲ 북한산 의상봉에서 본 정상부 ⓒ자료사진

▲ 김포(가현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 ⓒ자료사진

▲ 고양(일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 ⓒ자료사진

▲ 파주에서 바라 본 북한산 ⓒ자료사진

▲ 노고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1 ⓒ나종화

▲ 노고산에서 바라 본 북한산2 ⓒ자료사진

▲ 북한산 숨은벽에서 본 정상부 ⓒ서울포스트

▲ 북한산 사기막골 상부 숨은골에서 본 정상부 ⓒ서울포스트

▲ 북한산 등산지도1 ⓒ자료사진

▲ 북한산 등산지도2 ⓒ자료사진

▲ 북한산 등산지도3 ⓒ자료사진

▲ 북한산 등산지도4 ⓒ자료사진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2014년 6월24일 화요일 현재...수산나가 알고싶었던 내용]

 

인수봉~ 북한산의 실체이자 명물 '인수봉'. 바위 하나가 통째 봉우리로, 거대한 탄두가 날을 채비를 한 것 같다.

 

 북한산 '보현봉'. 칼을 세운듯한 숨찬 형제봉능선만큼이나 풍수적 해석은 '서울을 수호하는 진산' 또는 '역모의 산' 이라는 극과 극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둘 다 맞다. 왼쪽은 실제는 더 높은 문수봉, 가운데 완만한 곳(구기동계곡)에 '대남문'. 아래 구기동,평창동, 검을 씻었다는 세검정이다.

 

인수봉(仁壽峰 810m)이 북한산 북쪽의 시종이고, 보현봉(普賢峰 714m)은 북한산 남쪽의 시종이다. 그럼 보기만해도 숨이 차 올라가는 형제봉능선 끝의 보현봉과 인수봉의 실루엣, 북한산 정상부를 여러 방향에서 감상해 보자.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가 있어 삼봉산(三峰山)으로도 불렸었고, 뿔모양 봉우리 세 개가 정상부에 있어 고려시대부터는 '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불려왔던 북한산은 조선조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에 나온말이라고 하나,......

 

백운대(白雲臺 836m)는 이성계가 여기에서 조선건국의 포부를 들어낸 시 등백운봉(登白雲峯)에 '一庵高臥白雲中(한 암자가 흰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네)'라는 데서 유래했다하여 백운봉으로도 불렸으며,
인수봉(仁壽峰 810m)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仁者樂山 仁者壽'에 유래되었다하고,
만경대(萬景臺 799m)는 만수봉(萬壽峰)이라고도 불렸고, 조선조 태조가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無學大師)와 함께 이곳에서 국도를 논의했다 하여 국망봉(國望峰)이란 이름 있어 망경대(望景臺)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북한산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발기한 백두대간 중 백두산,묘향산,금강산,지리산과 함께 해동오악(해동五嶽)으로 불리며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의 100대 명산 중 인기순으로는 지리산,설악산에 이어 3위에 올라 있고 그 높이에 비해 암벽과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하다. 또 산 암석노출율이 70%정도를 차지해 바위들의 웅장함은 멀리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정상부는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있고, 거기서 서해바다까지 보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龍)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836.5m)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북한산의 특징적인 매력은 미끈하게 잘 빠진 화강암 봉우리에 있다. 최고봉 백운대, 암벽 등반의 메카 인수봉, 무속인의 성지 보현봉 등 총 32개의 봉우리가 저마다 독특한 바위미를 자랑한다. 북한산을 즐기기에 좋은 방법은 능선 산행이다. 주능선, 의상능선, 원효능선, 우이능선, 진달래능선 등 북한산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능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비봉능선이다. 이곳은 북한산 서쪽 향로봉에서 문수봉까지 약 2.5㎞에 불과하지만, 서울 시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보이고 북한산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전망이 좋고 풍광이 빼어나기에 진흥왕이 비봉(碑峰)에 순수비를 세우고 이곳이 자신의 땅임을 선포했던 것이다.

▲ 비봉을 오르는 사람들 뒤로 북한산 전경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왼쪽 상단 코뿔소를 닮은 바위 오른쪽이 백운대·노적봉·만경대이고, 오른쪽 끝이 문수봉이다.

# 순조 임금 탄생 비화가 서린 목정굴

비봉능선의 등산 코스는 구기동을 들머리로 비봉, 승가봉, 문수봉을 차례로 넘고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정석이다. 구기동 이북5도청을 지나 골목길 모퉁이를 두어 번 돌면 비봉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작고 아담한 계곡이 펼쳐진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기분 좋게 따르면 왼쪽으로 목정굴(木精窟) 안내판이 나온다. 등산로는 오른쪽이지만 목정굴을 구경하고 가는 것이 좋다.

목정굴은 순조 임금의 탄생 비화가 서린 동굴이다. 당시 고승으로 이름 높았던 농산 스님이 정조의 부탁을 받고 이 굴에서 기도를 드리다 입적해 순조 임금으로 환생했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정굴은 ‘기도발’이 잘 듣기로도 유명하다. 굴 법당 안 수월관음보살 뒤로 계곡이 통하고 있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외부의 잡음을 차단하여 삼매에 들기에 좋다.

▲ 비봉에는 한국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진흥왕순수비가 서 있다.

굴에서 이어진 길을 따르면 금선사가 나온다. 최근에 건물들을 세워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산세와 어우러져 분위기가 좋다. 절을 나오면 다시 등산로가 이어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찬 호젓한 숲길이 끝나면서 돌계단이 이어진다. 30분쯤 된비알을 오르면 왼쪽으로 탕춘대능선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향로봉과 비봉 사이의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일단 능선에 붙으면 길은 순하다. 10분쯤 가면 비봉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화강암들이 켜켜이 쌓인 비봉은 오르는 길이 약간 위험하지만, 두 손으로 짜릿한 바위맛을 느끼며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는 진흥왕이 555년 한강 일대를 평정하고 그 업적을 기리고자 세웠던 순수비(원형복제비)가 서 있다. 비석 앞에서는 북악산과 남산, 광화문의 빌딩들, 여의도와 63빌딩,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한강까지 한눈에 잡힌다. 저것이 산과 강이 어우러진 서울의 참모습이다.

비봉에서 내려와 5분쯤 가면 사모바위다. 이 바위는 남자들이 혼례식 때 머리에 쓰는 사모(紗帽)처럼 생겨 그렇게 부른다. 이곳은 헬기장이 넓고 주변 풍광이 좋아 휴식 장소로 인기가 좋다. 이어 승가봉을 넘으면 자연돌문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바위가 만들어낸 돌문을 통과하면 마치 신비의 세계로 입장하는 느낌이 든다.

# 자연돌문을 통과해 문수봉으로

자연돌문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은 암릉길과 우회로가 있다. 문수봉으로 직접 이어진 암릉길은 짜릿하고 경치가 빼어나지만 위험하다. 안전하게 우회로를 따르는 게 좋겠다. 암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왼쪽길을 따르는 우회로는 청수동암문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15분쯤 이어진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암문으로 들어서 오른쪽 산성길을 따르면 문수봉이 지척이다. 비봉능선은 문수봉에서 끝나지만 능선 마루금은 주능선으로 이어져 백운대까지 뻗어 나간다. 문수봉을 내려오면 북한산성 12개 성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대남문이다. 2층 망루로 올라오면 보현봉이 잘 보이고, 그 옆으로 서울 시내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하산은 성문 밖으로 나가 구기계곡을 따라 내려오게 된다. 계곡을 만나기까지 급경사가 이어지니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온다. 구기계곡은 계곡미가 빼어나고 수량이 풍부하지만 좀 험한 것이 흠이다. 30분쯤 내려와 다리를 건너면 구기약수가 나온다.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2번 더 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끝난다.

구기동 비봉통제소∼비봉∼대남문∼구기동 코스는 약 7.5㎞, 4시간쯤 걸린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212번 초록색 버스를 타고 종점인 구기동 이북5도청에 내린다.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7211번 초록색 버스를 타면 구기삼거리에서 하차한다. 구기동의 옛날민속집(02-379-6100)은 15년째 국산 콩을 직접 갈아서 만든 손두부, 콩비지, 청국장 등을 내놓는 한식집이다.

 

 

[2014년 6월24일 현재...수산나가 알고싶었던 내용]

 

 

북한산의 특징적인 매력은 미끈하게 잘 빠진 화강암 봉우리에 있다. 최고봉 백운대, 암벽 등반의 메카 인수봉, 무속인의 성지 보현봉 등 총 32개의 봉우리가 저마다 독특한 바위미를 자랑한다. 북한산을 즐기기에 좋은 방법은 능선 산행이다. 주능선, 의상능선, 원효능선, 우이능선, 진달래능선 등 북한산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능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비봉능선이다. 이곳은 북한산 서쪽 향로봉에서 문수봉까지 약 2.5㎞에 불과하지만, 서울 시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보이고 북한산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전망이 좋고 풍광이 빼어나기에 진흥왕이 비봉(碑峰)에 순수비를 세우고 이곳이 자신의 땅임을 선포했던 것이다.

 

비봉 정상에는 진흥왕이 555년 한강 일대를 평정하고 그 업적을 기리고자 세웠던 순수비(원형복제비)가 서 있다. 비석 앞에서는 북악산과 남산, 광화문의 빌딩들, 여의도와 63빌딩,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한강까지 한눈에 잡힌다. 

 

# 순조 임금 탄생 비화가 서린 목정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