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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박물관·행복아카데미·강좌

2014 성남행복아카데미 10강 <21세기 한국사의 새로운 길>-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27장

 

 

성남시청 1층 한누리홀...<21세기 한국사의 새로운 길> 주제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부제: 주인의 역사관과 노예의 역사관(우리 안의 식민사관)

 

성남시청 1층 한누리홀...독립운동가와 식민사학자의 역사관

 

중국 고대 사서에 나온 한사군과 독립운동가 관점-  한사군(낙랑군)은 북경 아래 하북성 주변

총독부산하 조선사편수회 시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와 이병도 설-  한사군(낙랑군)은 평양 주변, 해도 수안까지 연결한 중국의 만리장성...

전라도 지역 임나일본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주장

 

낙랑군 조선현에 관한 시각들

 

1. 낙랑군 조선현: 사대주의 유학자(평양)

2. 낙랑군 조선현: 조선총독부 및 현재 한국시민사학자(대동강 남안 대성면 토성리)

3. 낙랑군 조선현: 중국 사료(하북성 노룡현)

4. 양국몽현: 기자무덤 「사기」(하남성 상구시)

 

동북아역사재단의 한사군

 

한국고대사의 한사군(한나라 영지들)

한사군을 모두 한반도 북부에 비정=동북공정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그대로 계승한 동북아역사재단

 

낙랑군유적이라는 조선총독부의 사진을 그대로 전재 / 조선총독부의 조작된 사진을 그대로 인용

 

고조선 중심지가 이동했다는 식민사학

 

"일찍부터(조선총독부 시절부터) 낙랑군 치소로 알려져 왔던 토성리 유적 대부분이 위만조선의 왕도였던

대동강 북안의 왕검성 일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동강 남안에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확대되었던 낙랑군이 고구려를 비롯한 예맥사회의 압력에 쫓겨 군현의 중심지를

방어에 보다 유리한 대동강 남안으로 옮겼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앞뒤 문장 자체가 문맥이 맞지 않음 / 허황된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을 붙인 결과...

 

조선총독부 견해를 추종하는 식민사학

 

"왕검성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평양지역인만큼 역시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이다.

평양 일대에는 B.C.3세기 이래의 유적이 연속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현의 치소는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지역으로 보인다.(조선총독부의 견해)

토성의 규모가 번성하였던 군의 수부가 있었던 것으로는 작음을 들어 히의적인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당시 낙랑군의 지배구조의 성격을 반영하는 일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견해와 일치/1차사료적 근거 전무(고고유물의 자의적 해석) / B.C.3세기는 낙랑군 아닌 고조선 시기

 

고조선 강역 축소에 나선 식민사학

 

"나는 또 요서지방이 고조선의 영역이 될 수 없음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그것은 요서 지역의 작은 현 박물관에 샇여있는 비파형 동검과 많은 청동기유물이 고조선의 것이라기 보다는  

그 일대에서 활동하던 유목민족의 유물과 함께 출토된 것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 82쪽)"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 유물이 아니라 산융, 동호 같은 유목민족의 것이라는 주장

→중국동북공정 학자들의 주장 되풀이

 

다뉴세문경~ 지름 21cm에 1만3천개 원이 새겨진 고조선 유물

 

간도를 조선땅으로 표기한 서양지도

 

조선왕국도, 1735년-프랑스의 선교사 겸 지리학자 '알드'의 1735년 『중국지리 및 역사 기술』 의 4권 422쪽에 수록된 지도

조선만 별도로 그린 최초의 지도, 당빌의 1737년 신중국지도첩에도 수록

압록강, 두만강 북쪽으로 국경 표시한 레지선 표기

 

간도를 조선영토로 표기한 프랑스 지도(이탈리아판)

 

관동, 요동, 조선지도

프랑스 지리학자 '벨렝'의 광동, 요동 및 조선지도.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다.

압록강, 두만강 북쪽 지역을 조선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왕국도와 조선(1794, 영국의 '로리와 휘틀' 제작)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을 압록강 북쪽의 산맥을 기준으로 표시

 

점점 심화되는 식민사관

 

쓰다 소키치의 임나알본부(경상남도 일부)

김현구의 임나일본부(경상남북도 일부, 충청북도, 전라남북도 대부분 차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161쪽=쓰에마쓰 야즈카즈 설과 동일

 

삼국이 일본에 군사원조를 간청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자국 주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투구를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은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군사원조를 요청하거나 적어도 상대국에게 군사원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삼국 중에서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 하는 캐스팅 보드는 일본이 쥐고 있었다.(김현구, 『백제은 일본의 기원인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에 군사원조를 요청했다는 주장

"(일본에서 )사인을 신라에 보내 사문, 지달 등을 신라국의 사인에 붙여 대당(당나라)에 보내고 싶다고 하였으나

 신라가 말을 듣지 않아 사문, 지달 등이 그대로 귀국하였다.(『일본서기』「제명 3년(657)조」)

→7세기 중엽에도 신라의 도움이 없으면 당나라까지 갈 배도 만들지 못하는 조선 수준

→운송수단 없는 군사강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군사지원을 요청하면 무엇으로 실어나르는가?

 

고대 야마토 조정이 백제를 지배했다?

 

야마또 정권은 전후 5회에 걸쳐 한반도에 원군내지는 인부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그 특징은 전부 백제를 위해 파견한 것이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년, 138쪽)

→일본이 백제를 군사원조 했다는 주장

 

당시 야마또 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던 것은 군사원조였다고 볼수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년, 138쪽)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속국이었다는 주장

→극소수 일본 극우파의 주장

 

 

천황을 섬기기 위해 백제에서 왕자 및 왕녀들을 진상했다는 주장

 

"한편 「웅략기」5년(461)조에 의하면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의다랑이나 마나군 · 사아군 등의 파견도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왕족들의 파견이 천황을 섬기기 위해서였다면 왕녀들의 파견목적과 일치하게 된다.

(김현구, 「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 『고대 한일관게사의 제문제』169쪽)"

 

야마또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여인과 혼인을 맺게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 왕가에도 일본 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186~188쪽)

 

거짓말과 논리의 파탄

 

김현구 한겨레신문 인터뷰, "내 책은 일본의 기구를 의미하는 임나일본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2014년 10월)"

김현구의 책 제목,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2002)』

 

"한국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 이라는 용어보다는

한반도 남부지배라는 본질을 담고있는 일본학계의 이른바 '남선경영론'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남선경영론'은 '남조선경영론'을 줄인 말로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남선경영론'을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바꾼다면 '한반도 남부경영론' 정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같은 책, 22쪽)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16쪽)

 

일본군의 실상

 

100명 목베기 경쟁 보도(동경일일신문, 1937년 12월) / 산사람을 매장하는 일본군(남경, 1937년)

 

세계사의 '아와 비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는 히틀러유겐트-'아' / 한국광복군 결성 때의 한중 수뇌부(1940년)- '비아'

 

해방공간의 '아와 비아'

 

해방-서대문 형무소 출옥지사들- '아' / 구속되는 반민족행위자들- '비아'

 

 

<강의 필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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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성남행복아카데미 10강 '21세기 한국사의 새로운길/이덕일 함가람 문화연구소장'> 강의 후기]

 

 

2014년 11월27일 목요일 10시30분~12시...성남시청 1층 온누리홀에서 강의를 들었다...

부제는 '주인의 역사관과 노예의 역사관(우리안의 식민사관)' 이다...

 

한마디로 강의를 들으면서...머리를 꽝~ 때리는 무언가...가슴을 쓸어내리는 무언가를 느꼈다...ㅠㅠ...

 

강의의 시작은...

"주제가 역사이다 보니까 어렵게 느껴지시죠?"...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알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알고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 없습니다. 역사는 이해해야 합니다."...ㅠㅠ...

 

"율곡 이이 선생이 임진왜란 전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고 교과서에 나왔는데...

강사는 그런 말을 율곡이 주장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ㅠㅠ...

이유인즉, 교과서에 율곡이 경연에서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하는데...경연일기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ㅠㅠ...

율곡의 다른 글을 보아도 '양병'을 주장하는 글은 없고, 국방비 삭감을 하여 복지비 증액을 하자는 글이 나올 뿐이라고 한다...ㅠㅠ...

 

그러면 어찌하여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는가?'

임진왜란 후 전쟁에 공을 세운 영웅을 뽑을 때....무신 중 이순신, 문신 중 유성룡이 뽑혔는데...

유성룡의 위업을 깍아내리기 위하여...요즘 말로 '물타기 작전'으로...

반대파에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ㅠㅠ.....

죽은 자는 말이 없고...그리 알고 배웠던 나로서는 난감하다...ㅠㅠㅠ...ㅠㅠ...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인직의 '혈의 누'...최초의 한글 소설이라고 암기했던 '혈의 누'...

한자로 쓰면 '혈누(血淚)'...한글로 쓰면 '피눈물' 인데...

'이인직'은 노론의 마지막 당수이며 매국노인 이완용의 비서이며...나라 팔아먹은 비밀협상의 주인공이라고 한다...ㅠㅠ...

'이인직'을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선각자로 알고 있는데...소설의 내용은 대다수 사람들이 잘~ 모른다....ㅜㅜ...

소설의 내용인즉,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사가 조선 군인을 겁탈하려고 할 때 일본군인이 구해주었다."는 내용이다...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 소설이 발표되었는데...1910년 한일합방 계약을 앞에 둔 시점에서 발표한...한마디로 '정치소설'이라고 한다...

"일본이여! 빨리 우리나라를 먹어주시오!"라는 맥락의 정치소설이라고 한다...ㅠㅠㅠ....ㅠㅠ...

 

'이인직'은 이완용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매국노인데...이완용을 띄우기 위해...혹은 그의 매국을 물타기 위해...

그를 선각자로 내세운 것이라고 한다...ㅠㅠㅠ...ㅠㅠ....

진갑나이가 된 요즘에야 그 사실을 들었으니...난감하다.....ㅠㅠㅠ...ㅠㅠ...

 

식민사관이란,

심을 '식(植)'...사람을 심는 '식(植)'으로...한국인을 일본인으로 심기위해서 만들어진 사관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역사학계가 '식민사관'이 주류다...ㅠㅠ...

 

일본이 식민사관을 심은 이유가 있다...한국사람은 일본을 한수 아래로 보았다...

고대 백제가 일본에게 문화 수입을 했다...천황가계도 백제계. 가장 성공한 백제계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한수 아래로 보았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사람을 '정복당할 민족'...엽전인생 등 하급(?)민족이라는 의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ㅜㅜ...

 

고대 부터, 한반도 북부는 '한사군'이 설치되어 중국이 통치...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어 일본이 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단재 신채호'/ '정인보' 등은 한사군 위치를 한결같이 중국 '하북성' 일대라고 주장했다.....

중국 역사서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등에서도 한결같이 한사군이 중국 '하북성' 일대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해방 후 우리나라 학교에서, 한사군을 중국 하북성 일대라고 가르쳐야 하는데...그렇지 못했다.....ㅠㅠ...

교과서에 북한 대동강 주변에 한사군(낙랑/진번/임둔/현도)' 이 배치되어 있다고 가르쳤다...ㅠㅠㅠ...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웠는데...이것이 오류일 수 있다니 난감하다...ㅠㅠㅠ...ㅠㅠ...

 

이덕일 강사의 말인즉,,,

역사관의 대립인데...'식민사학자'들이 우리나라의 현재를 장악하고 있어서 수정이 힘들다고 한다...ㅠㅠ...

우리나라가,,,몸은 해방되었는지 몰라도,,,정신이 독립되었는지...의심스럽다고 한다...ㅠㅠㅠ...ㅠㅠ...

 

아직도 우리나라 '식민사관'에서 탈피 못하고 있다니 난감하다...ㅠㅠㅠ...ㅠㅠ...

이후로도 강의 내용 필기가 많지만 총총...그만 쓸까한다.....ㅎㅎㅎ...

바른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나라를 위하여...국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여주기를 기도해야 되겠다...ㅎㅎㅎ....

 

- 2014년 12월18일 오후 3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