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시작되는 진짜 이유
입력 : 2015.01.02 03:04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국 사회 집단기억 '憤怒'로 요약되는 게 문제…
고난 함께 견딘 가족에게 感謝와 그리움 갖듯, 원망 대신 '고마움의 記憶' 되찾는 한 해 되길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독일 TV 주말 프로그램에서는 꼭 소프트 포르노를 틀어줬다. 독일에 처음 유학 가서 크게 놀랐던 것 중 하나다. 피 끓는 한국 청년에게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매 주말 눈이 벌게지도록 봤다. 그러나 한 달 꼬박 보고 나니 이내 심드렁해졌다. 음란함에 대처하는 아주 특이한 독일식 처방이었다. 두 번째로 놀랐던 것은 독일 TV의 '주말의 명화'였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아주 자주 보여줬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란 미군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독일군은 무조건 '나쁜 놈'으로 나오는 영화를 말한다. 그런데 독일 TV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KBS와 같은 ARD·DF와 같은 공영방송에서 독일군이 나쁜 놈으로 나오는 할리우드식 전쟁 영화를 아무 거리낌 없이 틀어주고 있었다. 내게는 포르노보다도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란 자신들의 아버지다. 아무리 나치 시대 일이라도 자신들의 아버지가 나쁜 놈으로 나오고, 온갖 흉악한 짓을 저지르다가 잘생기고 용감한 미군 총에 집단적으로 살해당하는 영화를 주말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여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걸 지켜보는 독일 사람들은 전혀 괴롭지 않을까? 독일 친구들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들은 나치 시대의 독일을 자신들의 독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히틀러의 나치는 악령에 홀린, 광기의 시대였다. 그 광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고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독일 사회의 일관된 자세다. 그러나 나치 시대의 악령과 어떠한 심리적 동일시(同一視)도 허용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 나오는 그 끔찍한 독일 군인들과 자신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주인공인 미군 관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 시대와 심리적 단절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지식인들의 역사 담론에서부터 일상에서 경험하는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홀로코스트라는 집단 기억을 철저하게 반복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끊임없이 자기 연민의 '희생자 놀이'에 몰두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독일 사회의 나치 시대 극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자랄 때 참 초라하게 자기변명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 엄마는 내게 그랬다. '너 참 너절하다'. 오늘날 아베의 일본은 '참 너절하다'. 사람이건 국가건, 너절해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경우는 없다).
-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김정운 그림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는 일은 시간의 연속성으로 설명하는 역사 서술의 기본 원리를 수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독일 문화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는 역사란 시간이 아니라 '기억',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문화적 기억(kulturelles Gedächtnis)'이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기억 이론'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mémoire collective)'에서 출발한다. 시간의 종적 흐름에 기초한 역사 서술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상호 주관적'으로 기억되는 집합적, 구성적 특징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집단 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의 수단은 역사 교과서의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그림, TV드라마, 박물관, 미술관, 동상에 이르기까지 그 매체가 다양하다(그렇게 보면, 광화문 광장에 나란히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으로 매개되는 문화적 기억은 상당히 당황스럽다. 서로 다른 장소 기억이 돼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문화적 기억이 그리 쉽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기억의 매체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종이 신문으로 집단 기억을 구성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소통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이들의 집단 기억과 초저녁 종편 TV 정치 평론가들의 하이톤에 익숙한 사람들의 집단 기억은 전혀 다르다. 집단 기억이 너무 파편화해 한 국가의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 내러티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함께 산다'는 공동체적 전제가 사라지면 안 된다. 그래서 위기인 거다. 더 큰 문제는 각각의 집단 기억이 갖는 정서적 내용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분노'다.
2015년, 새로운 한 해를 분노와 원망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출발하는 한 해가 잘되길 바라는 건 참으로 과한 욕심이다. 분노의 대안은 '고마움'과 '감사함'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누구 말대로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밤에 몰래 내다 버리고 싶을 때'가 자주 있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도 함께 사는 것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준 서로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온 가족이 죽어라 모이는 거다. 떨어져 지내니 너무 그리워서 그렇다. 모든 공동체의 구성 원리는 동일하다. 공유할 수 있는 감사함에 대한 집단 기억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도대체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운 것이 생기는 거다.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하고 파편화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되어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의 차이, 의견 충돌도 견뎌낼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흠, '유치한'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인 거 나도 안다. 그러나 이렇게 착한 결심 하자고 한 해가 새로 시작되는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멀쩡하게 계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일 년 단위로 끊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이토록 '유치하게' 결심할 이유가 없다. 담배나 끊자고, 살이나 빼자고 한 해가 이토록 요란하게 시작되는 거 절대 아니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요점)
독일에 처음 유학 가서 크게 놀랐던 것 하나....독일 TV 주말 프로그램에서는 꼭 소프트 포르노를 틀어줬다. 음란함에 대처하는 아주 특이한 독일식 처방...
두 번째로 놀랐던 것은 독일 TV의 '주말의 명화'...할리우드 전쟁 영화... 미군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독일군은 무조건 '나쁜 놈'으로 나오는 영화를 틀어주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나치 시대와 심리적 단절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지식인들의 역사 담론에서부터 일상에서 경험하는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홀로코스트라는 집단 기억을 철저하게 반복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끊임없이 자기 연민의 '희생자 놀이'에 몰두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독일 사회의 나치 시대 극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독일 문화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는 역사란 시간이 아니라 '기억',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문화적 기억(kulturelles Gedächtnis)'이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기억 이론'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mémoire collective)'에서 출발한다. 시간의 종적 흐름에 기초한 역사 서술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상호 주관적'으로 기억되는 집합적, 구성적 특징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문화적 기억이 그리 쉽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기억의 매체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종이 신문으로 집단 기억을 구성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소통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이들의 집단 기억과 초저녁 종편 TV 정치 평론가들의 하이톤에 익숙한 사람들의 집단 기억은 전혀 다르다. 집단 기억이 너무 파편화해 한 국가의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 내러티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공동체의 구성 원리는 동일하다. 공유할 수 있는 감사함에 대한 집단 기억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하고 파편화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되어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의 차이, 의견 충돌도 견뎌낼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日帝가 만든 ‘중국 스타 李香蘭’ 94세로 사망
입력 2014-09-15 03:00:00 수정 2014-09-15 08:30:03/
만주태생 일본인… 중국인 가정 입양… 日, 국적 속이며 선전영화 출연시켜
‘夜來香’ 부르며 中서 가수로 인기… 日 귀국후 18년간 자민 참의원 지내
일본인 신분을 속인 완벽한 중국인 여배우에서 시작해 일본 TV 진행자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일본 여배우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사진) 씨가 7일 도쿄(東京)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94세.
1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는 1920년 일본인 양친에게서 태어나 중국 만주에서 자랐다. 13세 때 부친의 중국인 친구에게 입양돼 ‘리샹란(李香蘭)’으로 개명했다. 18세 때는 중국 영화계에 배우로 입문했다. 특히 일본이 만주를 장악했던 1930, 40년대에 중국인으로 일본 선전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야래향(夜來香)’ ‘소주야곡(蘇州夜曲)’ 등 중국 대중 가요사에 남을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뒤 그는 일본에 협력한 중국인 매국노로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가까스로 호적등본을 찾아내 일본인임을 입증했지만 추방됐다. 이후 중국에서는 그의 노래가 금지됐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본명으로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영화 ‘추문’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에는 새뮤얼 풀러 감독의 ‘대나무집’을 비롯한 미국 영화와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1951년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와 결혼했다가 4년 뒤 헤어지고 1958년 일본인 외교관 오타카 히로시(大鷹弘) 씨와 결혼하면서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1969년 TV 토크쇼 진행자로 복귀했고 국민적 인기를 배경으로 1974∼92년 자민당 참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원 시절 환경성 정무차관까지 지내기도 했다.야마구치 씨는 1987년 자서전을 내고 “리샹란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부끄럽다”며 선전영화에 출연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출처]동아일보/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 조선을 팔아먹다
- 2014-09-30 11:46
-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우리가 중·고교 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운 <혈의 누>라는 작품이 있다.
이인직이라는 인물이 쓴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배웠다.
그 내용은 이렇다.
"1894년 청일전쟁이 평양 일대를 휩쓸었을 때, 7살 난 여주인공 옥련은 피난길에서 부모를 잃고 부상을 당하지만,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이노우에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이 소설이 <만세보>에 연재되기 시작할 때가 1906년 7월 22일이다.
그 네 달 전인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조선의 행정권을 장악했다.
이런 시기에 이인직이 '시련에 빠진 여주인공을 일본군이 구출한다'는 내용의 소설을 연재한 의도가 무엇일까?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여~ 빨리 우리를 구출해달라", "일본의 점령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라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이인직이 선각자이고, 최초의 신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다 알아도 그가 이완용과 함께 조선을 팔아먹은 주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대장이 3대 통감으로 부임하자, 총리 이완용은 비서인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에게 몰래 보낸다.
1910년 8월 4일 밤 11시였다.
조선을 팔아먹는 비밀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고마쓰는 24년 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이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연재물이다.
이 협상에서 이인직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 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이인직은 은밀하게 이완용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물었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따른 댓가였다.
고마쓰는 "병합 후 조선의 원수는 일본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언제나 그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받는다. 내각의 여러 대신은 물론 다른 대관으로서 병합 실행에 기여하거나 혹은 이에 관계하지 않은 자까지도 비위의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자는 모두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영작을 수여받고 세습 재산도 받게 된다"고 답했다.
귀가 솔깃해진 이인직은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일본 정부의 대체적인 방침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완용 총리가 걱정하는 정도의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고 고마와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대가로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주겠다고 하자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라고 좋아하고 있다.
이인직의 보고를 받은 이완용은 매국을 결심하고 데라우치를 만난다.
◈ 이완용과 이인직, 작위와 은사금을 댓가로 조선을 팔아먹다
1910년 8월 16일 노론의 영수 이완용은 통감 저택을 방문해 데라우치를 만났다.
나라를 팔아넘기는 거대한 협상이 불과 30분만에 끝났다.
중요한 사안은 이미 이인직과 고마쓰 사이에 다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악질 친일파 이인직을 해방 이후 우리 국사와 국어 교과서는 선각자로, <혈의 누>를 '자주 독립· 신교육 사상'이 담긴 신소설의 효시로 가르쳐 왔다.
이런 파렴치한 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인물들은 누구일까?
일제 하에서 식민사관을 개발하고 해방 후 이를 보급한 이병도와 신석호와 같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친일사학자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집단기억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조선닷컴에서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한해가 시작되는 진짜 이유>를 읽었다.
그가 독일에 유학 가서 크게 놀랐던 것이 두가지 라고 한다...
첫째는, 독일 TV 주말 프로그램에서는 꼭 소프트 포르노를 틀어줬다. 음란함에 대처하는 아주 특이한 독일식 처방으로 놀랐다......
두번째 더욱 놀란 것은 독일 TV의 '주말의 명화'는...미군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독일군은 무조건 '나쁜 놈'으로 나오는 헐리우드전쟁영화를 틀어주는 것이었다...
그의 칼럼에 의하면 반복된 헐리우드전쟁 영화상영으로 독일사람들이 히틀러의 나치 시대와 심리적 단절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ㅎㅎ...
끊임없이 자기 연민의 '희생자 놀이'에 몰두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독일 사회의 나치 시대 극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는데... MBC <신비한 TV 써프라이즈>에서 방영한... 日帝가 만든 ‘중국 스타 李香蘭’에 대한 내용을 시청하다가 놀란 기억이 떠오른다...
만주태생 일본인을 중국인 가정에 입양시켜… 日, 국적 속이며 선전영화 출연시켜 ...
‘夜來香’ 부르며 中서 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한 ‘중국 스타 李香蘭’...
그녀는 18세 때 중국 영화계에 배우로 입문했다. 특히 일본이 만주를 장악했던 1930, 40년대에 중국인으로 일본 선전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뒤 그는 일본에 협력한 중국인 매국노로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가까스로 호적등본을 찾아내 일본인임을 입증했지만 추방됐다.
일본인 신분을 속인 완벽한 중국인 여배우에서 시작해 일본 TV 진행자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일본 여배우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사진) 씨가 7일 도쿄(東京)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94세.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씨는 1987년 자서전을 내고 “리샹란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부끄럽다”며 선전영화에 출연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암기했던...선각자 '이인직'의 <혈의 누(피눈물)>도 일제의 선전정책의 일환이라고 한다...ㅠㅠ...
이 소설이 <만세보>에 연재되기 시작할 때가 1906년 7월 22일이다.
그 네 달 전인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조선의 행정권을 장악했다.
이런 시기에 이인직이 '시련에 빠진 여주인공을 일본군이 구출한다'는 내용의 소설을 연재한 의도가 무엇일까?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여~ 빨리 우리를 구출해달라", "일본의 점령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라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이인직이 선각자이고, 최초의 신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다 알아도 그가 이완용과 함께 조선을 팔아먹은 주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ㅠㅠ...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대장이 3대 통감으로 부임하자, 총리 이완용은 비서인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에게 몰래 보낸다. 조선을 팔아먹는 비밀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ㅠㅠ...
고마쓰는 24년 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이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연재물이다.
이 협상에서 이인직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 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이인직은 은밀하게 이완용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물었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따른 댓가였다.
고마쓰는 "병합 후 조선의 원수는 일본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언제나 그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받는다. 내각의 여러 대신은 물론 다른 대관으로서 병합 실행에 기여하거나 혹은 이에 관계하지 않은 자까지도 비위의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자는 모두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영작을 수여받고 세습 재산도 받게 된다"고 답했다.
귀가 솔깃해진 이인직은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일본 정부의 대체적인 방침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완용 총리가 걱정하는 정도의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고 고마와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대가로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주겠다고 하자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라고 좋아하고 있다.
이인직의 보고를 받은 이완용은 매국을 결심하고 데라우치를 만난다.
나라를 팔아넘기는 거대한 협상이 불과 30분만에 끝났다.
중요한 사안은 이미 이인직과 고마쓰 사이에 다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악질 친일파 이인직을 해방 이후 우리 국사와 국어 교과서는 선각자로, <혈의 누>를 '자주 독립· 신교육 사상'이 담긴 신소설의 효시로 가르쳐 왔다....ㅠㅠ...
교과서에 의해서, 언론, 영화, 소설 등에 의해서...우리 의식이 조종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오싹(?)하다.....정신 바짝 차려야겠다...ㅠㅠ...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한 해가 시작되는 진짜 이유> 칼럼으로 다시 돌아가자...그의 칼럼의 결론부분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문화적 기억이 그리 쉽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기억의 매체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종이 신문으로 집단 기억을 구성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소통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나간다. 이들의 집단 기억과 초저녁 종편 TV 정치 평론가들의 하이톤에 익숙한 사람들의 집단 기억은 전혀 다르다. 집단 기억이 너무 파편화해 한 국가의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 내러티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집단기억을 형성하여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오히려 다행아닌가 싶기도 하다...다양한 의견이 나올테니 말이다...ㅜㅜ....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진리의 길...'자비, 공감, 사랑'의 길로 수렴하는 길은 바른 길이겠지만...ㅜㅜ...그래도 속지말아야 한다...ㅠㅠ...
'세상에 속한 영'과 '하느님으로 부터 오는 영'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많이 해야할 듯 하다...ㅜㅜ...
- 2015년 1월6일 화요일...오후 6시5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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