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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그대 영혼의 아궁이에 첫 불을 당겨라/고진하 목사>(2015.1.5.월)/국립중앙박물관 가락바퀴 등 6장

 

그대 영혼의 아궁이에 첫 불을 당겨라

[중앙일보] 입력 2015.01.05 00:21 / 수정 2015.01.05 00:35

 

묵은 기억의 짐 탈탈 털고 길 떠나는 새해 아침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성스러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맘때면 이웃종교의 스님들은 깊은 설산에서 ‘동안거’에 들어 깨달음을 구하고 계시겠지요. 저는 새해 첫 주를 홀로 묵언에 들어 하루하루를 신명나게 살아갈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아내와 얼굴을 마주쳤는데, 습관처럼 움찔하는 내 입 모양을 보았던지 ‘ㅋㅋㅋ’ 웃습니다. 흰 눈을 머리에 인 명봉산 위로 떠오른 해님도 덩달아 활짝 웃어줍니다.

 밤새 식어버린 구들을 덥히려 장작을 가져다가 아궁이 앞에 앉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새로 만든 아궁이입니다. 잘게 쪼갠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는데, 첫 불을 넣던 순간의 뭉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그래, 매일 지피는 불이지만, 사실 모든 불이 첫 불이지! 그렇다면 저 절절 끓는 구들방에 누가 들어가 지지든, 혼자 지지든 누구랑 붙어 지지든, 매일 밤이 첫날밤이지! 신혼이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을 태초의 첫날로, 매일 밤을 신혼의 첫날밤처럼 맞이할 수 있다면, ‘시간이 영원 속으로 녹아드는’ 삶의 융융한 희열을 맛볼 수 있겠지요.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런 희열을 ‘영원한 지금’이라 불렀지요.

고진하 목사

더 나아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곁님들을 ‘영혼의 동반자’(anam kara)로 다정히 팔짱 낄 수 있겠지요. 영혼의 동반자라고 하면 찰떡궁합인 연인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말은 외연이 더 넓습니다. 우리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모든 존재를 신성한 차원으로 드높여 영혼의 동반자라고 하지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서로를 ‘그리스도’로, 불자라면 서로를 ‘붓다’로 받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 우리 지구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숱한 다툼과 반목은 좁은 지구별에 사는 이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어린 시선도 자주 만납니다. 종교를 그 어원에서 보면 ‘뒤로 이어준다’는 소중한 의미가 깃들어 있죠. 이슬람 수피인 하즈라트 이나야트는 이런 종교의 속알을 “모든 사물과 존재들은 가장 깊은 중심에서는 모두 하나로 된다”고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눈을 뜨고 사물과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면 겉의 차이 때문에 반목하고 적대할 일이 없다는 거지요.

 수행자들 사이에 전해지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가 자기 영적 스승을 찾아 문안인사를 올리고 나서 예쁜 포장지에 싼 선물을 바쳤습니다. “이게 무엇인가?” “제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인데, 황금으로 만든 가위입니다.” 스승은 제자가 바친 선물을 받지 않겠다며 도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놀란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이 황금가위는 아주 값진 것인데, 받지 않으시겠다는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스승이 노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가위는 결코 받지 않겠네. 나는 찢거나 가르거나 쪼개는 사람이 아닐세. 만일 바늘이나 실 같은 선물로 가져온다면 내 기꺼이 받겠네.”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든 그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너와 나 사이를 찢거나 가르거나 쪼개는 가위의 정신이 아니라, 그렇게 찢어지고 나뉜 분열과 적대의 관계마저 하나로 꿰매고 이어주는 바늘과 실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이 아름다운 은유가 가리키는 게 뭐겠습니까. 붓다나 노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그리고 『우파니샤드』의 지혜로운 현자들 같은, 소위 축(軸)의 시대의 깨어 있는 종교의 선각자들이 누누이 강조한 ‘공감과 자비의 영성’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공감과 자비의 영성은 더 이상 어떤 특정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별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절대가치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치에 대한 우리의 자각은 자본주의적 탐욕의 위세에 짓눌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종교들 또한 이런 자각에서 멀어지며 크나큰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말하듯, 인간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초월의 차원을 발견하고, 공감과 자비라는 삶의 지혜를 선사했던 저 축(軸)의 시대의 통찰로 돌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인류는 정신적 위기 때마다 늘 축의 시대를 돌아보며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뜨겁게 밝힌 지혜의 첫 불! 오늘 우리가 그 첫 불을 기억―기억은 영혼의 중요한 기능입니다―해내고 우리 영혼의 아궁이에 첫 불!을 당긴다면, 우리가 살아갈 처소를 사랑의 온기 가득한 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종교란 삶의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는 예술입니다. 벗들이여, 부디 새해에는 숱한 집착의 무거운 멍에를 벗고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의 희열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고진하=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감리교 신학대와 동대학원 졸업. 목사이면서 힌두교 경전과 노장 사상을 오랫동안 파고 들었다. 87년『세계의 문학』 통해 시인 등단, 『거룩한 낭비』 등 시집 6권과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쿵쿵』 등 산문집을 냈다. 김달진 문학상과 강원 작가상 수상. 현재 원주 한살림교회에서 시골 목회를 하고 있다.

 

(요점)

그대 영혼의 아궁이에 첫 불을 당겨라

우리가 매일을 태초의 첫날로, 매일 밤을 신혼의 첫날밤처럼 맞이할 수 있다면, ‘시간이 영원 속으로 녹아드는’ 삶의 융융한 희열을 맛볼 수 있겠지요.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런 희열을 ‘영원한 지금’이라 불렀지요.

우리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모든 존재를 신성한 차원으로 드높여 영혼의 동반자라고 하지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서로를 ‘그리스도’로, 불자라면 서로를 ‘붓다’로 받드는 것이지요.

이슬람 수피인 하즈라트 이나야트는 이런 종교의 속알을 “모든 사물과 존재들은 가장 깊은 중심에서는 모두 하나로 된다”고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눈을 뜨고 사물과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면 겉의 차이 때문에 반목하고 적대할 일이 없다는 거지요.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든 그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너와 나 사이를 찢거나 가르거나 쪼개는 가위의 정신이 아니라, 그렇게 찢어지고 나뉜 분열과 적대의 관계마저 하나로 꿰매고 이어주는 바늘과 실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이 아름다운 은유가 가리키는 게 뭐겠습니까. 붓다나 노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그리고 『우파니샤드』의 지혜로운 현자들 같은, 소위 축(軸)의 시대의 깨어 있는 종교의 선각자들이 누누이 강조한 ‘공감과 자비의 영성’이 아니겠습니까.

 

 

[[중앙일보] <그대 영혼의 아궁이에 첫 불을 당겨라/고진하 목사>]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든 그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너와 나 사이를 찢거나 가르거나 쪼개는 가위의 정신이 아니라, 그렇게 찢어지고 나뉜 분열과 적대의 관계마저 하나로 꿰매고 이어주는 바늘과 실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ㅇㅇ...

 

찢고 가르는 '가위의 정신'이 아니라...꿰매고 이어주는 '바늘과 실'의 정신이 중요하다...공감가는 말이다....ㅎㅎ...

사람사는 세계란 비슷한 것 같으면서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사안을 보았는데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견을 내는 '백인백색'의 시대에 돌입한 것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ㅋㅋ... 

 

바늘과 실이라는 이 아름다운 은유가 가리키는 게 뭐겠습니까. 붓다나 노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그리고 『우파니샤드』의 지혜로운 현자들 같은, 소위 축(軸)의 시대의 깨어 있는 종교의 선각자들이 누누이 강조한 ‘공감과 자비의 영성’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는 '백인백색'의 시대에 필요한 영성은 '공감과 자비의 영성'!!...맞는 말이다...ㅎㅎ...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며...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공감도가 높아... 울고 웃고 하며 찡~ 한 감동을 느꼈는데...

'백인백색'의 시대이다 보니까...영화 <국제시장> 한편으로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연기면으로 해석하는 이...영상적으로 해석하는 이...사회적 파장을 분석하는 이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ㅎㅎ...

 

분류와 분석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가위'로 찢고 갈라냄이 너무나 지나쳐....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찢고 가르므로...뉴스를 볼 때면 지겨울 때가 많다...ㅠㅠ...

제발이지 언론에서나마... '가위의 정신'이 아닌 '바늘과 실의 정신'으로 꿰매고 이어주었으면 좋겠다...ㅎㅎ...

 

2015년 새해 부터는,

갑과 을도 이어주고...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이어주고...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이어짐이 있었으면 좋겠다...ㅎㅎ ...

바늘과 실에 해당하는 ‘공감과 자비의 영성’ 으로 이어져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ㅎㅎ... 

 

구약성경 이사야서(11장6절~9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세상이  ‘공감과 자비의 영성’ 으로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고.....표범이 어린염소와 함께 누우며...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새끼들이 함께 엎드리는 세상....ㅎㅎ...한마디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다...ㅎㅎ...

이때는 육식동물인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독사의 굴의 손을 넣는다...ㅎㅎ...

이때는 사자가 풀을 먹는다 했는데...과연 사자가 본래의 기득권, 습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풀을 먹는 것이 가능할까?...ㅠㅠ,,,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한다고 했는데...과연 독사가 그의 유일한 무기이자 특기이기도 하는 독기를 빼는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ㅎㅎ...

 

한마디로 하느님 세상...천국의 형상 일텐데...성경에 나오는 것이므로 믿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시므로... 하느님의 말씀 한마디면 가능하지 않을까?

"꿈은 이루어진다."...ㅎㅎ...

 

성경 구약 이사야서(116~9)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이나 상함도 없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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