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포니 대령
입력 : 2015.01.15 03:06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북 포항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니로(路)'가 있다. 6·25전쟁 때 참전했던 미(美) 10군단 참모부장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기리는 길이다. 포항은 해병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6·25 때부터 주둔하던 미 해병대 3항공사단이 1950년대 포항을 떠나게 됐다. 그때 "한국 해병대가 이 기지를 물려받아 전략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며 우리 해병 1사단이 포항에 주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포니였다. 포니는 초기 한국 해병대의 훈련·작전·편제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해 '해병대의 은인'으로 불린다.
▶그의 이름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뭉클한 인간애(人間愛)의 현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포니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과 싸웠고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도 나섰다. 서울 수복 후 거침없이 북진하던 미 10군단은 그해 겨울 개마고원에서 중공군을 만났다. 살인적 추위와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퇴각을 결정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오는 '흥남 철수'다.
▶전투 인력 10만명과 장비 35만t을 후방으로 실어 나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10만명 넘는 피란민이었다. 10군단의 한국인 군사 고문 현봉학은 "이들을 두고 가는 것은 공산당 손에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구출을 호소했다. 에드워드 아몬드 군단장은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이때 현봉학과 한목소리로 민간인 구조를 주장하고 나선 이가 포니 대령이었다.
▶"무기는 새로 만들면 되지만 사람 목숨은 다시 살릴 수 없다." 포니의 지휘에 따라 미군은 배 위 무기와 장비를 부두에 내려놓았다. 피란민도 자기들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가 전략 물자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 했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사지(死地)에 떨어졌을 것이다.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1만4000명이나 되는 피란민을 싣고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사망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 다섯이 배 안에서 탄생했다.
▶그제 서울 한 교회에서 흥남 철수 때 미군 도움으로 거제도에 피란 온 실향민의 후손들이 포니 대령의 증손자를 만났다. 십시일반 모은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전했다고 한다. 세계 역사상 전세가 불리한 군대가 10만명이나 되는 피란민과 함께 철수해 그들 목숨을 살린 예는 없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맨 먼저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언젠가 자네와 내가 함께 흥남을 가보고 해금강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날이 왔으면….' 포니가 나중에 현봉학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포니 대령]
포니 대령~ 초기 한국 해병대의 훈련·작전·편제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해 '해병대의 은인'으로 불린다. ...6·25 때부터 주둔하던 미 해병대 3항공사단이 1950년대 포항을 떠나게 됐다. 그때 "한국 해병대가 이 기지를 물려받아 전략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며 우리 해병 1사단이 포항에 주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포니였다.
경북 포항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니로(路)'가 있다. 6·25전쟁 때 참전했던 미(美) 10군단 참모부장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기리는 길이다.
흥남철수 때의 포니 대령~ 서울 수복 후 거침없이 북진하던 미 10군단은 그해 겨울 개마고원에서 중공군을 만났다. 살인적 추위와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퇴각을 결정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오는 '흥남 철수'다. 10만명 넘는 피란민이 문제였다.
10군단의 한국인 군사 고문 현봉학은 "이들을 두고 가는 것은 공산당 손에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구출을 호소했다. 에드워드 아몬드 군단장은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이때 현봉학과 한목소리로 민간인 구조를 주장하고 나선 이가 포니 대령이었다.
▶"무기는 새로 만들면 되지만 사람 목숨은 다시 살릴 수 없다." 포니의 지휘에 따라 미군은 배 위 무기와 장비를 부두에 내려놓았다. 피란민도 자기들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가 전략 물자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 했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사지(死地)에 떨어졌을 것이다.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1만4000명이나 되는 피란민을 싣고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사망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 다섯이 배 안에서 탄생했다.
그제 서울 한 교회에서 흥남 철수 때 미군 도움으로 거제도에 피란 온 실향민의 후손들이 포니 대령의 증손자를 만났다. 십시일반 모은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전했다고 한다. .... '언젠가 자네와 내가 함께 흥남을 가보고 해금강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날이 왔으면….' 포니가 나중에 현봉학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맨 먼저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멋지다! 포니 대령! ...그리고 현봉학 군사고문....ㅎㅎㅎ...
- 2015년 1월15일 목요일...오후 10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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