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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9월27일 화요일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우리들의 묵상 / 물박달나무 5장


2016년 9월27일 화요일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우리들의 묵상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은 1581년 프랑스의 아키타니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 그는 사제가 되어 파리에서 본당 사목자로 일했다. 빈첸시오 신부는 한때 여행 도중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 생활을 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고아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660년에 선종한 빈첸시오 드 폴 신부를 1737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이 시성하였고, 1885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자선 단체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정신과 활동을 계승하려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1833년 파리에서 설립되어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욥이 제 생일을 저주하며,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하고 탄식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리자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다른 마을로 가신다(복음).


제1독서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 3,1-3.11-17.20-23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56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 중에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의 왕림을 거부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한 번 지나가신 하느님께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실 것을 두려워하라!” 하고 권고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 중에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오는지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사마리아인들의 태도에 격분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부딪치는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구원의 진리는 때가 차면 스스로 올바름을 증명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인간의 잔꾀나 수단으로 전파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복음을 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 정도로, 앞길이 보이지 않아 죽음을 원할 정도로 괴로운 인간에게도 천상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이슬람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렸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빈첸시오 성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삶 속에 주어지는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류한영 베드로 신부)


우리들의 묵상

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되자 제자들과 함께 발걸음을 서둘러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을 때 제자들과 예수님의 주고받은 문답은 역동적 상황의 절정입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없는 무모無謀한 언행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향하는 지혜롭고 권위있는 배경의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열심한 제자들의 배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운신의 폭도 퍽이나 좁았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 크게 꾸중을 들었지만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이 중요한 순간마다 대동한 주님의 삼총사였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배경이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생명의 소통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친히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빛의 배경이심을 확인시켜 주십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불을 내릴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성서에서 불을 내린 다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불꽃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위로, 화해, 평화, 사랑을 주는 영입니다. 가난한 이, 장애인, 이방인까지도 함께 하는 일치의 영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배가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권위와 교만은 배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욕심과 분노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배가 방향을 잃게 만듭니다. 무엇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순탄하게 노를 젓게 할까요? ‘겸손과 사랑입니다. ‘용서와 자비입니다. ‘친절과 온유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삶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욥처럼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잘 태어났다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요? 욥은 하느님이 인정한 동방의 최고 의인입니다. 그렇지만 자녀와 재산, 명예와 건강까지 잃게 되자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삶의 의미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이는 누구도 구원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자만해 할 수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자신의 삶을 저주하였다가 지금은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그런 상태까지 나빠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기 전의 욥처럼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욥에게 하신 것처럼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우리가 세상 것으로부터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되어버려 그런 것들을 잃으면 자살을 해버리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삶의 의미라 믿는다고 쉽게 자만하지 맙시다. 우리는 결단코 절대로라는 말을 쓸 수 있을 만큼 완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죄에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우리 자신을 인식할 때 더 죄로부터 강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4.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길이 바로 그런 길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는 사마리아인들이 겪어온 역사적 아픔과 유다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들이 입었던 상처와 어둠을 헤아리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으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당하자 그들 안에 사랑이 뿌리내릴 여백을 남겨두신 채 묵묵히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우리의 나날의 삶이 바로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길입니다. 그 길은 안락한 길이 아니라 고난의 연속입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고, 세상의 유혹에 맞서야 하며, 밉고 싫고 피하고 싶은 자신과 이웃의 얼굴을 맞대며 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지기도 하는 길이지요.

내 인생의 길목에서 예수님처럼 나도 나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 친구, 직장동료, 교회단체 구성원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다른 이들을 대하도록 힘썼으면 좋겠습니다.(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9월27일 화요일 [(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불을 내릴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성서에서 불을 내린 다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불꽃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위로, 화해, 평화, 사랑을 주는 영입니다. 가난한 이, 장애인, 이방인까지도 함께 하는 일치의 영입니다.


내 인생의 길목에서 예수님처럼 나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 친구, 직장동료, 교회단체 구성원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다른 이들을 대하도록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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