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24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우리들의 묵상
말씀의 초대
코헬렛은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며, 먼지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데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11,9―12,8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군중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찬사를 보내고 모두 놀라워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찬물을 뿌리듯이 수난을 이야기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고 묻기도 두려워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인정하기 싫었고, 그 상황이 실감나지도 않았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의인들의 죽음은 많았으며 그들에 대한 박해와 죽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되풀이되었습니다. 이 시대에서도 종교 간의 충돌과 증오로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난민이 되고 고통과 죽음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에 돌려 외면하고 싶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지구촌 가족인데 서로를 증오하고 피를 흘리게 하는 현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전쟁과 폭력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비규환 속에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받아들인 수난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을 기워 갚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분노에 대해 온유함을 보여 주셨고, 증오에 사랑을,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보여 주신 길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여도 우리가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길을 겪어 낸 사람만이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귀담아들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명심하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그분과의 통교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1,21).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 때가 되면 그 의미를 알아듣게 되고 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보1,22).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야고1,25). (반영억 라파엘 신부)
2. 창조주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간절히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코헬렛에게는 기도가 빠졌습니다.
하느님과의 살아있는 친교인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신학자라기 보다는 사변적인 철학자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코헬렛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계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없으면 허무의 질병은 피할 수 없습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식별을 잘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4. 비록 제자들이 아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모두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네 일상도 늘 수많은 변화와 희비애락, 고통과 슬픔, 시련과 좌절의 연속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하려면 변화무쌍한 변화와 잠시 사라져버리는 현세 물질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황이 좋든 나쁘든 "영원하신 창조주를 기억할 때" 주어지는 것이지요.
오늘도 모든 것 안에서 영원성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영혼의 어둠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겪는 고난을 견디게 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을 기억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9월24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비록 제자들이 아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모두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수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아멘.
2016년 9월24일 [(녹) 연중 제25주간 토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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