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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0월21일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 / 송악 2장


2016년 10월21일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라며,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고 하느님도 한 분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오늘의 묵상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이 요청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동하며 바친 첫 응답을 잃어 가는 우리를 채근하는 말씀입니다. 감동은 언제나 생의 밑바닥에서 일어납니다. 내 속된 마음이 진실함과 만나 정화될 때, 내 가볍고 천박한 생각이 혜안을 열어 주는 깊은 가르침을 만날 때, 감추고 싶던 내 상처와 죄로부터 치유와 용서를 받을 때, 나의 내적 갈증을 채워 주는 우물 같은 사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감동합니다.
하지만 이런 첫 감동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식상해지기 마련입니다. 내적 감각이나 예민했던 감수성도 사라지고, 상대를 향했던 존경심과 신뢰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주님 안에서 수인(囚人)”이라고 표현합니다.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자유를 잃은 것이지만, 주님의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흠뻑 빠져 있어 세상의 어떤 구속과 억압에도 자유롭다는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처음 체험하고, 교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세례를 받고,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부르심에 응답했던 첫 순간들은, 첫 마음의 순수함이었고, 주님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을 것이란 희망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요?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는 예수님의 훈계는, 부르심을 받을 때 가졌던 내 영의 맑음을 잃어 가면서 세상일에는 더 밝아지지만, 내 영혼을 옭아매고 어둡게 하는 시대의 징표들을 읽어 내지 못하는 우리의 우둔함을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일의 날씨는 예보하면서,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느냐!’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를 참된 식별에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세상의 뜻을 헤아리는 만큼,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외모를 가꾸려는 마음만큼, 내면의 정신을 키우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만큼,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고민하라고 하십니다.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만큼, 하늘에 보화를 쌓도록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평범한 일상이 구원입니다. 한계가 구원입니다. 한계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삶은 무수한 한계들을 통과해 가야 하는 한계의 여정입니다. 

마지막 가장 힘들고 중요한 통과해야 할 한계는 죽음일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한계를 깨달아 , 각자 제자리의 한계 안에서 겸손과 지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라 하십니다. 자신을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지요. 행려인들, 실직자들, 갑을관계의 부당하고 불평등하며 비인간적인 구조 속에서 절규하는 이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 속에 절망하는 이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들, 정치권력의 부패, 인간성을 짓밟는 자본의 횡포, 생태계 파괴 등이 던져주는 표징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남남이 결코 아닙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소중한 자녀들이지요.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아픔과 신음소리에 귀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삶을 향한 절규 앞에,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저미는 분노와 슬픔에 마음의 문을 닫아서도 안 됩니다. 다들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하는데 나 혼자만 행복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시대의 표징을 읽으며 이 땅의 아파하고 슬퍼하며 억울하고 비참함의 늪을 헤매는 이웃과 함께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길을 걸어가도록 온 마음과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0월21일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주님 안에서 수인(囚人)”이라고 표현합니다.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자유를 잃은 것이지만, 주님의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에 흠뻑 빠져 있어 세상의 어떤 구속과 억압에도 자유롭다는 고백입니다.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는 예수님의 훈계는,

부르심을 받을 때 가졌던 내 영의 맑음을 잃어 가면서 세상일에는 더 밝아지지만,

내 영혼을 옭아매고 어둡게 하는 시대의 징표들을 읽어 내지 못하는 우리의 우둔함을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라 하십니다.

자신을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지요.

행려인들, 실직자들, 갑을관계의 부당하고 불평등하며 비인간적인 구조 속에서 절규하는 이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 속에 절망하는 이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들, 정치권력의 부패, 인간성을 짓밟는 자본의 횡포, 생태계 파괴 등이 던져주는 표징을 보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표징을 읽으며 이 땅의 아파하고 슬퍼하며 억울하고 비참함의 늪을 헤매는 이웃과 함께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길을 걸어가도록 온 마음과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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