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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1월2일 수요일[(자) 위령의 날 - 둘째 미사]매일미사 묵상 / 자작나무 5장


2016년 11월2일 수요일[(자) 위령의 날 - 둘째 미사]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또는 3,1-6.9>
제2독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7-21
복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오늘의 묵상

죽음에 대한 묵상은 삶에 대한 묵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음이 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거나 인생무상을 드러내는 표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죽음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결과이며 열매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순간과 그 결과로 따라오는 하느님과의 만남은 거꾸로 우리의 삶을 비추어 주는 참된 빛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이 순간을 기준으로 내 삶을 반추해야 하는 거울입니다. 그 빛은 우리가 겉으로만 보이는 인생의 외적 가치를 넘어서는 참진리를 드러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이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드러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제1독서인 지혜서의 말씀도 의인들이 받는 고통이 겉으로는 하느님의 벌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그들을 단련시키시고 제련하시는 지극한 사랑임을 선포합니다.
참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고통을 그분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굳건하게 견디어 내고 이겨 냄으로써만이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죽어서 가는 천국이 지옥이 연옥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천국의 삶, 지옥의 삶, 연옥의 삶입니다. 

무지의 어리석은 삶을 살 때 자초하는 지옥의 삶, 연옥의 삶입니다. 

반면 슬기롭고 겸손한 삶을 살 때 이미 지금 여기서 부터 펼쳐지는 천국의 삶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슬기로운 삶이 찬미하는 삶, 깨어 있는 삶, 때를 아는 삶입니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슬기로운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슬기로운 이들을 돌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슬기롭고 겸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정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주님 때문에 모욕을 받고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하느님께로 갈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머물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의 이웃을 상대평가하기 보다는 잘한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절대평가를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시고,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고, 상처를 입더라도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교황님께서 발표하신 복음의 기쁨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오늘 우리는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면서 삶과 죽음의 울타리를 넘어 하느님 안에 함께 살아있으며,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도 생명도 주님 손 안에 있음을 회상하고 죽은 이들과 함께 사랑 속에 살기를 희망하며 기도해야겠습니다.위령의 날은 누구든 예외 없이 맞게 되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여기서 잘 죽을 수 있기를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우리다운 응답은 ‘지금 여기서 죽으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 잘 죽는다는 것은 기꺼이 자신을 내놓으며 더 자비로워지는 것이겠지요.


죽음이 판을 치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도록 재촉하는 오늘, 우리 모두 이 땅에서 불의와 폭력을 저지르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랑 실천과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려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문화가 사라지고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정의와 기쁨이 넘치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1월2일 수요일, 위령의 날...

오늘의 복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참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고통을 그분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굳건하게 견디어 내고 이겨 냄으로써만이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고 이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위령의 날은 누구든 예외 없이 맞게 되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여기서 잘 죽을 수 있기를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우리다운 응답은 ‘지금 여기서 죽으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 잘 죽는다는 것은 기꺼이 자신을 내놓으며 더 자비로워지는 것이겠지요.

아멘.


- 2016년 11월2일 수요일, 위령의 날...수산나 -



자작나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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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