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31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과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식사나 잔치를 베풀 때에 보답을 바라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 보답을 받으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4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오늘의 묵상
사회가 양극화될수록 쌓여 가는 불만 때문에 극단적인 사건 사고가 늘어나지만, 동시에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손길은 더 필요합니다. 근래 기부 문화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표현을 자주 쓰지만, 솔직히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희생하며 헌신하는 일은 드뭅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같은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는 선행은 일종의 거래입니다. 언젠가는 그가 나를 도울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이런 거래 형태의 선행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즘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내는 부조(扶助)가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축하나 위로가 아닌 그야말로 경제적인 품앗이로 전락한 듯싶습니다. 마음의 표현까지 자본화되어 측량이 가능해지고, 같은 대가를 상대방에게 언젠가는 지불해야 하는 채무처럼 여깁니다. 비혼(非婚)이 늘어나면서 아예 혼인 포기를 선언하고, 그동안 전해 준 축의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철저히 뿌리박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그분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신비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보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것만 돌보지 않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는 일은, 하느님께 내가 받은 은총을 되돌려 드리는 일이어야지, 내 능력을 과시하거나 훗날 보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이래야 공동체가 평화롭습니다.
‘나 중심의 공동체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로 공동체의 중심에 온유와 겸손, 기쁨과 평화, 섬김과 나눔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분의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한분은 멀리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고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그분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의 숭고한 삶과 사랑은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한분의 희생과 사랑은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깊은 의미를 생생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다른 한분은 꽃동네를 만드신 오웅진 신부님입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고 이야기하신 오 신부님은 가난한 이, 병든 이, 버려진 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따뜻한 삶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꽃동네를 후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작은 정성을 통하여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는 젊은이들이 하객들에게 축의금을 받으면서 그 축의금을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들에게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부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세계의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많은 병자들이 고통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있습니다.
동창 신부님들 중 4명이 도시빈민을 위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도시빈민을 위한 사목을 하는 친구도 있고, 작년부터 새롭게 합류한 친구도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동창들을 존경합니다. 공존의 그늘처럼 풍요로운 도시의 이면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있습니다. 병들고 지친 이들이 있습니다. 다들 성공과 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잠시 옆을 보면서 뒤를 보면서 쓰러진 이들, 방황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는 동창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과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필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리고 요구도 없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모두를 품기를 주님께서는 기대하십니다. 끼리끼리가 아니라 소외된 이를 먼저 챙김으로써 하느님을 차지하는 행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성녀 소화데레사는 “나는 무엇이든 다 하느님을 위해서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아무런 손해도 볼 수 없고, 또 남을 위해 치른 수고는 언제나 한결 좋게 하느님께서 내게 갚아주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그것을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4. 예수님의 버킷 리스트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 곧 인간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것이 그분의 유일한 열망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나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인생을 보람되게 하고 나를 돌아보고 성장시키기 위한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실천이 목록에서 빠져 있다면 세속적인 버킷 리스트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한편 예수님의 우선적 관심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육신과 영혼의 아픔을 겪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베풀 때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14,12)과 같은 잘 아는 이들과 힘이 있고 내가 도움을 받을 법한 이들이나 의인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 선택하셨지요.
나의 우선적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을 삶의 우선 순위에 두는지 정하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초점을 잃게 되고 하느님의 진리와 세상의 가치를 분간하지 못한 채 헤맬 것입니다. 또한 보잘것없고 고통받는 이들보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들이나 힘있는 이들과의 만남을 우선시 한다면 영혼의 파멸을 자초하고 말겠지요.
우리도 ‘오히려’ 관심 밖의 사람들, 곧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14,13)고 하신 예수님의 행동방식을 배워야겠습니다. 세상 권세나 재물과 명예를 첫자리에 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과 구조적 악과 도구적 악에 의해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먼저 눈길을 돌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줍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 2,4) 내 삶의 우선관심사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과 핍박 속에 힘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고 그들에게로 중심을 옮기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잠시 멈추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고, 사랑 나라의 변두리로 밀려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는 나의 멋진 우선관심사를 작성해보았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0월31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누군가를 도울 때 같은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는 선행은 일종의 거래입니다. 언젠가는 그가 나를 도울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이런 거래 형태의 선행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철저히 뿌리박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신비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보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것만 돌보지 않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는 일은,
하느님께 내가 받은 은총을 되돌려 드리는 일이어야지, 내 능력을 과시하거나 훗날 보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내 삶의 우선관심사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과 핍박 속에 힘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고 그들에게로 중심을 옮기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오늘도 잠시 멈추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고,
변두리로 밀려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는 나의 멋진 우선관심사를 작성해보았으면 합니다.
- 2016년 10월31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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