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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1월20일 [(백)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 매일미사 묵상/곰솔 5장


2016년 11월20일 [(백)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 매일미사 묵상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이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26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중에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정의와 사랑으로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게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어 아드님의 발자취를 따라 형제애로 우리 목숨을 형제들을 위해 내어 놓게 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연중 마지막 주간인 이 성서 주간에 성경을 더욱더 가까이하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며 아버지께 감사드리라고 한다(제2독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복음).


제1독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3

제2독서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12-20

복음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5ㄴ-43


영성체 후 묵상

▦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한 죄수처럼, 언제나 주님을 믿고 바라며 사랑합시다. 그러면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 영도자요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보여 주듯이, 그분의 왕권은 십자가 주위에서 펼쳐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 때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명패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반대의 의미로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팻말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예수님의 왕직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의 즉위식에는 늘 두 명의 증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루카 9,28-36), 예수님의 부활 사화에서는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증인으로 등장합니다(루카 24,4). 그러나 골고타의 즉위식에는 단지 천박한 강도 둘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시시한 즉위식에 오르실 왕은 끝까지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초라한 즉위식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두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의 왕직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적들과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직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통해, 뉘우치는 강도를 아버지의 나라로 받아들이시고, 뉘우치지 않는 완강한 적들도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하시며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봉사의 직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이신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자신들과 다른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실천이 먼저라면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당시의 지도층을 인정하지 않고 ‘위선자’라며 날카로운 일침을 계속해서 던지는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들과 다른 예수님을 그들은 틀렸다라고 규정을 했고,그 결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예수님을 향해 모독하며 말합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하지만 다른 죄수는 마지막 그 순간에 예수님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규정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빠다킹 신부)


2. 오늘 복음을 보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빈정거렸습니다. 군사들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하였고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오? 당신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하며 주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런 조롱과 빈정거림, 모독은 유다인들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태평성대를 이룩하실 분으로 예수님을 기대했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기가 만든 틀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는 천덕구러기,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도 한 죄수는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그러고 나서“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의 간절한 바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죄인은 간절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온 왕국은 세상의 왕국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용서의 왕국, 화해의 왕국, 죄의 용서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왕국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칼과 폭력의 권력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당신 목숨을 내 놓으신 십자가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통치권을 행하시는 곳은 우선 우리가 마무는 외적인 땅덩어리가 아니고 우리의 내면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인간의 마음을 다스려서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마음을 다스린다면 그곳에 하느님의 왕국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에서는 내 뜻을 찾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합니다. “육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은 죽음이지만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헤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동안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 받게 되었습니다. 새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콜로새서 말씀대로 ‘암흑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죄의 사슬에서 풀려서 아드님의 나라에 속하는 하느님의 백성, 하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시민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늘시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진정한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구체적 표현은 용서를 통해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고 품어주는 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의 통치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용서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바랍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3.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하까 1,13)고 하신 주님,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도 드리오니

주님의 성전인 저희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서 편히 쉬시기에 적합한 아름다운 궁전으로 온갖 꽃들이 만발한 꽃밭으로 바꾸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김명준)


4.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그리스도 왕은 어떤 분이셨는지 생각해봅니다. 권위는 있으셨지만 권위적이지는 않으셨습니다. 힘은 있으셨지만 그 힘을 남용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실 자격이 충분하셨지만 오히려 섬기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분은 피땀을 흘리면서까지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나병환자, 중풍병자, 소경, 세리와 창녀들과도 함께 하셨고 그들을 치유해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의 힘은 사랑함에서 생겼습니다. 그분은 비록 돈과 조직, 엄청난 배경은 없으셨지만 희생과 봉사 그리고 기도의 힘으로 세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승리하셨고, 그분은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의 죄수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한명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구세주라면 당신도 살리고, 나도 살려보라고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명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과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에서 외로이 떠있는 작은 배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과 함께 지내면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도 천상의 향기를 갖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도 목적지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5. 우리 모두 이 연중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영혼의 거울인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깊이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나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들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내 삶의 중심은 무엇이며 가장 먼저 갈망하고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해보아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1월20일 [(백)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

오늘의 복음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통해, 뉘우치는 강도를 아버지의 나라로 받아들이시고,

 뉘우치지 않는 완강한 적들도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하시며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봉사의 직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늘시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진정한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구체적 표현은 용서를 통해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고 품어주는 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의 통치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용서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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